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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컨추리우먼 Nov 21. 2022

직장생활이란

25년 차 직장인


목요일 저녁 화려한 회식이 끝나고 금요일 아침 무거운 머리를 들고 겨우 출근했다. 8시 반까지 출근하는 날인데 늦으면 안 된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직원이 벌써 앉아있다. 집이 일산인데 늘 일찍 오니 정신력은 알아준다. 팀 막내는 전날 술을 안 마셨으므로 온전히 출근했다. 다른 직원 2명은 출장이고 2명은 도저히 출근하지 못하겠다며 오전에만 지각을 달았다. 과장님도 출근을 못 하셨다.


 


컵에 물을 떠서 자리에 앉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아침이다. 그런 상태로 멍 때리고 있는데 어제 면담 내용에 대해 궁금하시다고 국장실에서 전화가 왔다. 아차 보고를 안 드렸구나. 난 노무팀에 전화해서 어제 면담 내용 보고자료를 받아 국장님께 갔다. 난 주요 면담 내용과 우리 팀에 해코지한 노조의 행태를 보고했다. 국장님은 이후에 노조에서 반응이 있었느냐고 물으셨고 간단히 보고자료를 준비해달라고 하신다. 난 자료 작성을 해서 국장님께 드렸다. 덧붙여서 노조 총파업 대비한 학교급식 대응 방안도 말씀드렸다.


 


점심은 직원들과 해물 뚝배기를 먹으러 갔다. 출장 나갔던 직원도 합류해 5명이 모였다. 한 직원은 도저히 국물도 못 먹겠다며 수저를 내려놓는다. 아이고 이제는 회식을 적당히, 아니 술을 적당히 마셔야 한다. 늘 다짐하면서도 막상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쉽지 않다. 다음에는 조금씩 마시자며 웃으며 식당을 나왔다.


 


사무실에 들어와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노사과 노무사님이 전화가 왔다. 노사 과장님이 잠시 보자고 하신다. 난 외투를 입고 노사 과로 갔다. 과장님은 혹시 내가 출근했는지, 안 했는지 메신저를 확인했다며 목요일 면담에서 얼마나 속이 상했을지 짐작한다면서 날 위로한다. 노조 측의 공식 사과를 받아 내는 것이 향후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 있으니 노사협의는 계속 이어가기를 바란다고 하신다.




난 마음 같아서는 며칠 연가를 내고 쉬고 싶지만 내 앞에 놓인 일들이 있으니 출근했다고 말했다. 공식 사과를 요구한 분은 우리 과장님이신데 난 괜찮지만, 과장님께 너무 죄송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고 했다. 노사 과장님은 우리 과장님을 목요일에 만났다면서 오히려 우리 과장님은 팀장님 걱정을 더 하고 계시더라는 말을 전했다.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쓰는 것이 쉽지 않다. 조직에서는 더욱 그러한데 과장님은 팀장을 생각하고 난 과장님께 송구한 마음이라니 더욱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사무실을 나와 조금 걸었다. 주차장 옆 잔디공원을 보니 붉은 단풍은 더욱 붉어지고 참나무는 낙엽을 하나둘씩 떨어뜨리고 있었다. 굴곡진 인생의 희로애락은 직장에서도 반복된다. 너무 힘들기만 하면 사람이 살 수 없듯이, 업무도 너무 꼬이기만 하면 진행이 안 된다. 이제는 꼬인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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