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상사는 유머가 있어야 한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 직장 만찬이 있었다. 조직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 팀장들을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처음이라 팀장들은 긴장했고 수석팀장은 건배사를 준비하라는 미션을 부여했다.
건배사라니?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MZ세대들이 가장 싫어하는 회식문화가 건배사라는데 비록 내가 그 세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청바지 오징어 같은 구닥다리 건배사를 읊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아침에 출장 나갔다가 오후 3시가 지나 사무실에 복귀했는데 건배사 준비하라는 메신저 쪽지를 보고 갑자기 편두통이 생겼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뾰족한 답이 없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가보자. 삼삼오오 팀장들이 식사 장소에 도착해서 서로 구석 자리를 먼저 차지하느라 분주했고 윗분들 좌석 주변은 늦게 오는 팀장들 차지가 되었다.
잠시 후 높으신 분이 도착했고 만찬이 시작되었다. 진행하신 고위직 분께서 세계 최초로 팀장들과 자리를 마련해 주신 윗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며 자연스럽게 본인 소개를 하고 건배 제의를 하라시더니 마지막에 타자는 이차로 맥주를 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겠다고 하신다. 이거 참 웃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서로 눈치를 보더니 맨 먼저 수석팀장이 일어난다. 아무래도 먼저 시작해야겠다며 건배사를 한다. 여기저기 팀장들이 하나둘 일어나서 건배사를 했다. 건배사 유행이 달라진 거 같았다. 세 글자 건배사는 거의 없었고 두 글자가 대세였다. 난 점점 더 초조해졌다. 도대체 어떻게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회식 자리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고 자연스럽게 나머지 팀장들도 일어섰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난 맨 마지막에 하고 이차를 쏘려 했는데 주변에서 자꾸 하라 해서 할 수 없이 일어났다고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백제시대 의자왕은 3천 궁녀가 있었다고 하는데 저에게는 3천3명의 조리실무사가 있으며 그들은 날마다 전화해서 일이 힘들다 사람 구해달라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학교 교육이 바로 서려면 급식이 우선 잘되어야 한다. 따라서 저의 건배사는 구호로 하겠다. 제가 선창 하면 여러분들은 후창해 달라.
"급식이 잘되어야 교육이 산다!"
좌중은 나의 선창을 따라 후창을 했고 잔을 비웠다.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아이고 모르겠다. 드디어 ‘내 차례도 끝났구나’ 안도했다. 회식이 끝날 무렵 진행했던 윗분이 마지막 주자가 되었고 이차는 윗분이 쏘기로 했다. 그분은 마지막 건배사를 제안하며 이전 기관에서는 외국어로 건배사를 했다며 다 같이 따라 하라고 하셨다. 난 도대체 어떤 외국어로 건배사를 하실지 내심 기대했다. 윗분께서는,
"원샷!!"
이라는 한마디를 하셨다. 헉 세상에 원샷이 외국어였구나. 윗분의 가장 큰 덕목은 유머다. 적어도 윗분은 유머가 있어야 한다. 2차에서도 윗분은 유머로 달리셨고 유쾌하게 카드를 내미셨다. 긴장했던 팀장 회식은 즐겁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