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컨추리우먼 Mar 15. 2022

선술집 이야기

25년 차 직장인


어제는 오랜만에 공직 선배님을 만났다. 만난 장소는 늘 가던 선술집이다. 지난 2월에도 선배님을 뵈었지만 그때는 다른 곳으로 갔다. 하도 자주 뵈었던 터라 단골집  사장님은 이사 간 줄 알았다며 웃으신다.


사실 난 한동안 그 단골집을 피했다.  이상하게 그 집에만 가면 온전하게 집에 온 적이 없다. 맨 처음 갔을 때부터 무슨 흥에 빠졌는지 술을 엄청 마셨고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 승진 축하 자리여서 그랬나 싶었다.


문제는 그다음에 가도 계속 부어라 마셔라 했다는 점이다. 주인장도 내가 가면 엄청 반가워하셨다. 혹시 매상을 올려주기 때문인가 생각했지만 주인장은 언제나 나를 반겼고 안주도 푸짐하게 주었다. 그렇다고 술값을 깎아 주지는 않았다. 대신 시골에서 가져왔다며 무말랭이를 주기도 했다. 난 좋아라 하며 집에 가져가서 신랑에게 주었고 요리 잘하는 신랑은 금세 맛있는 무말랭이 무침을 해주었다.


선배님과 그 집의 인연은 아파트 앞집 사이였다고 한다. 등산 모임을 했을 때 임원을 같이 했고 주변인들도 함께 어울려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 이후로 단골집이 되어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애용하고 있단다.


 때마다 만취를 해서 새해부터는 그 집 말고 다른 데로 가자고 했는데 어제 가려고 했던 집이 쉬는 날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선술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난 깊이 생각했다. 취하지 않고 멀쩡히 집에 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자리배치를 새롭게 하기로 했다. 늘 앉던 자리를 피해서 선배님 옆자리로 바꾸었다. 아무래도 선배님 옆이니 긴장할 것이고 정신줄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생각은 탁월했다.


모임이 끝날 때까지 침착하게 있었고 계산도 잘했고 택시 타고 집에 안전하게 왔다. 혹시 내가 계산하는 날이라 정신이 멀쩡했나? 설마 그건 아닐 것이다.


감정이 마음을 다스리는 건지 마음이 감정을 다스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중요한 건 굳건히 마음을 먹으면 정신줄을 바짝 차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당분간은 안심하고 그 집에 갈 수 있을 거 같다.

작가의 이전글 컨추리우먼이 추천하는 직장생활 권태기 극복 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