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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급한뭉클쟁이 Aug 10. 2021

산으로 가지 않는 연구 보고서 작성하기

지도 교수님 추천작 <산으로 가지 않는 정리법>을 읽고

“시간 되면 잠깐 오피스로 내려와 볼래?”


한 달 전 지도교수님 호출에 교수님 사무실에 다녀온 적이 있다. 무슨 일이지? 이번 주 개인 주간 회의는 이미 내 차례가 지났는데. 내가 뭘 잘못했나? 새로운 제안서가 필요하신가? 5층 실험실에서 3층 오피스로 이동하는 짧디 짧은 시간 동안 수만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났다. 학부생 때부터 알고 지냈던 지도교수님이지만 대학원생이 되고 나서는 - 특히 박사과정 학생이 되고 나서는 - 괜히 긴장하게 된다. 이젠 이곳이 바로 나의 공적 영역이 되어서인가.


무사히(?) 오피스에 도착했을 땐 교수님께선 어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계셨다. (뭐지, 괜히 더 불안해.) 잠깐 앉으라며 손짓하시던 교수님께서는 놀랍게도 나에게 책 한 권을 건네주셨다.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나는 당연한 말을 내뱉었다.


“책이네요, 교수님!”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당최 무슨 반응인지. 하지만 이런 반응에도 교수님께서는 친절하게 답변을 주셨다.


“최근에 어디서 선물 받은 책인데 너희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전달한다. 그리고 너는 특히 더 책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먼저 전해주려고.


아… 오늘도 이렇게 교수님께 파악을 당하고 만다. 논문보단 기사를, 기사보단 책 읽기를 좋아하는 대학원생인 나를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는 우리 지도교수님이다. 매번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반반씩 사이좋게 섞이는 중이다.


여하튼 교수님께서 건네주신 책은 박신영 작가의 <산으로 가지 않는 정리법>이었다. “구구절절 설명 말고 한 장 그림으로 보여주자”라는 띠지와 함께 어떻게 하면 “횡설수설” “주저리주저리”와 멀어질 수 있는지, 효과적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과 어떻게 하면 정리된 내용을 잘 도식화하여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가르쳐주는 책이었다. 연구 보고서나 발표 자료 준비, 또는 데이터 미팅에서 사용될 세미나 자료를 만들 때 도움이 될 것 같아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것이 교수님의 의견이었다. 읽어보면 당연한 내용인 것 같지만 그래도 한 번 짚어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몇 가지 실천해볼 만한 연습 거리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그동안 “산으로 가는 연구보고서를 제출해서 답답하셨나”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숨은 뜻만 가득 내포한 말씀은 피하시는 분이라 그 마음에 감동을 먹고 잘 읽어보고 연구실 동료들과 공유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랩장으로서 연구실 동료들에게 교수님 추천작(?) 독서를 권유했고 관심을 표한 연구실 동료들이 이 책을 완독 한 후에 나 역시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교수님께서 건네주신 박신영 작가의 <산으로 가지 않는 정리법>. 뒤 커버에 중요한 내용이 이해하기 쉽게 시각화되어있다.
주저리주저리하지 말아야지… 횡설수설한 리포트가 아니라 간단명료하고 섹시한 발표자료를 만들어보겠어!

나 역시 여름휴가를 마무리하는 날, 카페에 와서 <산으로 가지 않는 정리법>이라는 책을 읽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보통 단편 소설이나 에세이집, 또는 환경, 인권, 국제 정세 등의 문제를 다루는 인문사회학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자기 계발서를 즐겨 읽기도 했는데 그것은 완전히 십 대 소녀의 허세에 불과한 독서 취미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무 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이렇게 사는 게 좋다, 저렇게 살면 안 된다”라는 잔소리적 선언들과 주장을 접한 것 같다. 어렸을 땐 그냥 내가 탐험하고 경험하는 대로 느끼며 자아를 굳건하게 단련하는 편이 더 건강할 텐데 말이다. 물론 <산으로 가지 않는 정리법>은 이런 종류의 자기 계발서는 아니지만. 휴가가 끝나고 내일부터 또다시 열심히 달리며 어떤 박사가 되고 싶은지 열심히 고민하고 노력할 것이기에! (그리고 교수님의 의도를 파악하고 싶은 마음에) 시간이 난 김에 이 책을 한 번 읽어 보기로 했다. 교수님 말씀대로 쉽고 빠르게 납득하며 속독할 수 있는 책이었고 생각보다 도움이 되고 앞으로 실천해보면 좋겠다는 조언도 여러 개 접할 수 있었다.


박신영 작가는 뇌가 글보다 그림을 좋아하는 세 가지 이유와 함께 정보 나열보다는 포인트가 각인되어 있는 도표 한 장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과 함께 이 책을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정리하고픈, 전달하고픈 내용을 바탕으로 구조, 관계 그리고 변화에 대해 나눠서 생각해보고 이 내용을 시각화할 수 있는 방법들과 실전 사례를 여러 개 보여주며 독자를 연습시킨다. 나 역시 논문 공부법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는데 박신영 작가의 조언을 읽고 공부한 내용을 시각적으로 정리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원노트만 (One Note) 사용하고 있는데 아무리 공부해도 머릿속에 오래 남지 않고 아카이브 (archive) 형태로 보관하는데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아홉 가지 방법을 소개하는데 그중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될 것 같은 방법은 “쪼개기”와 “흐름” 그리고 “공식”이었다. 첫 번째 “쪼개기”는 구구절절한 글을 정리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내용이다. 나의 경우 (내가 속한 그룹의 평균보다) 다소 “문과적인” 성향을 갖고 있어서 한 번 글을 쓰기 시작하면 굉장히 장황해진다. 하고 싶은 말도 너무 많고 전달하고 싶은 아이디어도 많고, 무언가 제대로 이해하기엔 필요하지 않은 부연설명이 없는 것 같아 결국 다 써내고 다 전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그럴만한 시간도 없고, 서로의 시간을 소중하기 때문에 최대한 구구절절한 콘텐츠로부터 몇 가지 포인트를 정리하고 그 사이에서 어떤 키워드로 정리해서 정돈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지 설명을 읽고 실전 연습을 통해 그 방법론을 익힐 수 있었다. 앞으로 내가 읽은 논문 내용을 바탕으로 동료나 지도교수님께 설명할 때 꼭 기억해야 할 습관이다.


두 번째는 “흐름” 세 번째는 “공식”인데 이 둘은 아무래도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분야와 관심이 있지 않나 싶다. 면역학이나 질병의 발병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복잡한 기작에 대해서 익숙해져야 할 때가 굉장히 많다. 특히 수식으로 명확히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학과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1+1”이 “2”가 아니고 수많은 답과 변수를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복잡한 기작을 공부하는 게 굉장히 어렵게 느껴진다. 이 과정에서 보다 더 간단한 플로 차트로 (flow chart) 표현하거나 공식화하여 각 요소들의 관계를 이해하는 일이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인터페론 생성 및 시그널링 관련 기작을 보여주는 도표. 너무 많은 관계가 얽혀있어서 단 하나의 요소를 살펴보기에도 어려움이 많다. (Invivogen, 2021)

생각 시각화를 위한 방법론 외에도 예상치 못한 작가님과의 연대감에 미소를 짓게 된 부분도 있었다. <고흐의 편지>를 읽고 느낀 작가님의 “현타”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작가님이 인용한 고흐의 편지는 다음과 같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고흐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정진국 옮김, 펭귄클래식 코리아, 2011


 부분을 읽고 작가님은  가지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번째, 세기의 천재도 갈팔  팡하는구나 (삽질).  번째, 세기의 천재도 주저리주저리 하는구나 (정리). 그리고  번째, 세기의 천재도 진로 고민하는구나 (진로) 대한 위로 말이다.  번째 위로는 작가님의 직업병에 영향을 받으신  같고, 나의 경우  번째와  번째 위로에 대해 공감할  있었다. 위대한 화가로 인정받는 빈센트  고흐 역시 하고 있는 일에서 롤러코스터와 같은 자존감의 파동을 느끼며 어렵지만 어렵기 때문에 그가 걷고 있는 여정이 의미 있고 재미있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  같다. 마지막 킬링 포인트는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그의 깨달음이다.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 대해  역시  동기와 위로를 얻게 되었다. 연구가 어렵고,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따져볼 겨를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래야 끝을   있을 테니 말이다.


박신영 작가는 “ 장으로 그리다 보면 내용이 명확하게 정리될 때가 많다. 진짜 필요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가 분류되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무엇을 어떻게 바꾸는지 차분히  장으로 정리해보시라라고 조언한다. 너무 많은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상대방에게 토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내용들을 충분히 소화하고 가공하는 일이 우선시되어야   같다. 앞으로 교수님과 미팅할 때도 “구름처럼 떠다니는 모호한 생각들을 가시화해서 장의 도표를 준비해 가는 일도 도움이   같다. 엔지니어의 시각적 사고와 표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내가 공부한 내용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이를 동료들과 토론하며 아이디어를 개발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조언은 내가 브런치 글을 쓰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보통 내가 생각나는 대로 글을 적는 편인데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가공해보는 연습을 해도 좋을  같다. 소통하고자 노력하되 장황함과 싸워야 한다.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앞으로도 내가 연구한 내용을 다른 과학자, 그리고 대중에게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연구자가  것이다. 이런 꿈의 일부를 실현하기 위해서  열심히 정리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있는 소통방법을 연마해야겠다. 처음엔 어렵더라고 습관이 되면 조금씩 나아지겠지 라는 기대감을 안고 앞으로도  정리하고  전달하는 연구자로 성장해야겠다. 이렇게 나는 휴가 마지막 날에도 교수님의 가르침을 얻어가는 대학원생이 되었다. 연구 실무 현장에서  활용할  있도록  열심히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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