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급한뭉클쟁이 Apr 24. 2021

플랜 B와 가방끈 욕심

공감 가득했던 전선영 작가의 <어쩌다 가방끈이 길어졌습니다만> 독서 후기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좋아했다. 아들러 심리학자가 들으면 기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미움받을 용기도 없었고 인정 욕구가 강한 편이었기 때문에 어린아이로서 공부에 대한 욕심이 강했다. 그렇다고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한 기억은 없으니 어찌 보면 나름 건강한(?) 원동력을 바탕으로 ‘열공’ 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막연하게 공부를 좋아하다 보니 나는 막연하게 공부를 오래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었다. “오래” 공부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하는 건지, 또 “오래”라면 얼마나 긴 시간을 칭하는 것인지 잘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냥 그럴 것 같았다. 어렴풋이 느껴오던 예감은 현실이 됐고 뼈 아픈 진로 고민을 거치고 결심을 내려 생명공학 분야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이공계 쪽에서는 대학원 진학률이 다소 높은 편이라 주변에 대학원생 친구들이 참 많다. 같은 자대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은 셀 수 없이 많고 멀리 유학가 있는 친구들도 많은데 나름 연구와 취미를 똑 부러지게 병행하는 친구들도 있어서 서로 읽은 책을 추천하고 빌려주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몇몇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그중 제목부터 확 눈길이 가는, 전선영 작가의 <어쩌다 가방끈이 길어졌습니다만> 책을 추천받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방끈”이라 하면 학력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이 되고, 그렇다면 분명 작가님께서 대학원 생활 꽤나 오래 하셨을 것 같은 생각에 뒷 표지를 읽어보게 되었는데, 맙소사 - “방송국 PD가 꿈이었으나 어쩌다 미국 유학생이 되어 대학만 10년 넘게 다녔다”는 작가님의 “가. 방. 끈. 스. 토. 리!” 뒷 표지의 책 소개글을 읽자마자 나는 이 책을 읽지 아니할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방속국 PD가 꿈이었다는 작가 소개글에 마음을 빼앗기게 됐는데 long story short, 말이 또 길어지기 전에 짧게 그 이유를 설명해보자면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방송국 PD 또는 기자가 꿈이었었다. 글 쓰는 걸 좋아했고 그다지 창의적이지 않았던 내가 유일하게 창의적인 활동에 재미를 느끼게 해준건 글 쓰기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었다. 고등학교 땐 각종 잡지와 CD커버, 그리고 광고 샘플을 분석하고 에세이를 써서 발표하는 미디어학 수업을 가장 재밌게 공부했고 교내와 지역사회 학생기자 활동도 꾸준히 했었다. 언어 공부를 좋아하고 문과생 기질이(?) 강했던 나는 당연히 그쪽 계열을 공부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생명공학 박사과정생이 되어있군... 역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인 것 같다. 게다가 작년까지만 해도 유학 공부가 너무너무 하고 싶어 발버둥 쳤던 터라 더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니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유학 공부를 어떻게 하면 “어쩌다” 갈 수 있는 거지? 그렇게 책을 구매했고 작가님의 “가방끈 스토리”를 읽게 되었다.


자이든 타이든 공부의 길을 걷게 되면서 작가님 역시 길고 긴 불안의 순간들을 겪은 것 같았다. “원하는 것들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 시간들과 주변 사람들은 다 그들만의 목표점에 가까워져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는커녕, 오히려 길을 잘못 들어섰나 의심하며 목표로부터 더 멀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런 마음이 계속되다 보면 한 사람으로부터 여유가 증발되어 버리는 일상이 오래 지속되는 불행이 찾아오고 만다.


그 무렵엔 돈뿐만 아니라 시간을 쓰는 것에서도 여유가 없었다. 노는 것에 대한 죄책감,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성격도 점점 날카로워졌다. 남을 도와주는 데 인색해졌고, 사정이 있어 약속을 늦추거나 취소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모질게 굴었다. - p. 65


조급한 사람이 “진다”는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머리로만 알고 있는 그 답답함.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아니 눈으로 볼 수 있는 성취가 없으니 내가 시간 낭비, 돈 낭비, 에너지 낭비, 온갖 자원 낭비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쯤 많은 대학원생들을 여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여유를 잃고 나면 성취와도 더 멀어지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마음만 바쁘고 아무리 책상 앞에 앉아도 당최 집중할 수가 없는 나날이 길어지면 또 그렇게 자괴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런 시기들을 겪은 경험이 있다. 석사 과정 2년 동안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나에게 꼭 맞는, 아니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자주 품었고 끊임없는 자기 의심은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확신이 없기 때문에 최선을 다 하지 않고 있다는 건 본인을 납득시킬만한 타당한 이유가 되지 못했고 (왜냐면 항상 그렇듯이 자신을 속이는 일이 가장 어려우니까) 그렇게 몰입하고 싶지만 몰입할 수 없는 시기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작년에 질풍노도의 진로 고민을 겪고 박사 과정에 입학하기로 결정을 내린 후 한 가지 굳건한 목표가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몰입”이었다 - 실제로 2021년 다이어리의 맨 첫 장에 “몰입”이라고 크게 써두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작가님이 공유해준 “몰입”의 미학에 대해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신경전, 고영성 선생님의 <완벽한 공부법>에는 몰입의 위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자기 일에 몰입한 사람들은 나아감이 강해지고, 과업 수행을 통해 자기 성장을 느끼기 때문에 행복해진다는 이야기... 자신이 하는 일에 완벽하게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은 굳이 수원지인가 명함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할 필요가 없을 터였다... 내 정체성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무엇이라고 부르는지도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몰두한 시간이 쌓여 나라는 사람을 만들고 내 자존감이 된다... 자존감이 깨지면서 다시 쌓으면 되는 것이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몰입함으로써 행복하게. - p. 152


몰입이 부재한 일상을 다소 길게 겪다 보니 나도 집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작가님 역시 “몰입” 그 자체를 행복의 원천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생각에 깊은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또 한 번 다짐했다. 나도 몰입함으로써 더 행복해져야지. 그리고 그 몰입하면서 “통찰력 있고 날카롭고 유머와 지성을 겸비하고도 섹시한” 생명공학 연구자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했다.


대학원 생활은 마치 길고 긴 터널 같아서 끝도 잘 보이지 않고, 이미 들어선 길이라 되돌아 갈 수도 없는데 중간마다 내가 알맞은 길을 잘 가고 있다는 지정표 마저 없어서 사람을 불안함에 피 말리게 하는 것 같다. (게다가 “월급”도 “월급”이라 부르기 애매한 액수와 명목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 경제적 활동에 참여하는 대신 내 욕심을 위해 계속 공부해도 괜찮을 걸까 라는 생각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그래서 일 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자기 관리가 참 중요하고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될 공부에 대해 진심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대학원”이라는 싸움을 잘 해내려면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아직도 마찬가지지만 개인적으로 연구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무조건 시간을 많이 쏟는 것? 엉덩이 힘을 길러 누가누가 오래 앉아서 버티나 시합하는 것? 그 누구와의 경쟁도 아닌, 본인과의 경쟁이지만, 결국 나와 싸우며 허벅지를 꼬집고라도 집에 가고 싶다는 욕망과 싸우는 것이 “최선”인가?라는 의문을 품은 지 좀 되었는데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처럼 균형 잡힌 생활을 하되, 한 번쯤은 본인에게도 떳떳한 “최선”의 순간을 경험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매일 하는 게 딱히 공부밖에 없는데도 실력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때마다 ‘최선’이 대체 얼마만큼 인지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새벽마다 도서관에 1등으로 가는 게 최선일까? 아니면 친구들이랑 술 같은 거 마시지 않고 늘 책상에만 붙어 있는 게 최선일까?... 그렇게 매일매일 공부하는 동안 꼬박꼬박 시간이 흘렀다. 생활 패턴은 조금씩 습관으로 굳어졌다. 시험을 본 다음날에도 가장 먼저 출근을 했다. 성적은 그대로였지만, 늦게까지 책상 앞에 붙어 앉아 있는 것은 한결 수월해졌다. 어떤 날은 수업이 조금 쉽게 느껴졌다고, 이내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했다. — p. 85


나도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면, 그 믿음이 자신감의 자양분이 되어 건강한 열정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본인에게 엄격한 만큼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최선”을 경험하기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꼭 몰입해서 “최선”의 맛을 맛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오히려 학교 공부를 끝마치고 돌아와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내 정체성을 정의한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했다. 누구는 지친 몸으로 돌아와 요리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을 테고, 누구는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 테고, 누구는 정원을 가꾸며 화를 다스릴 테고, 누구는 책을 읽으며 걱정을 잊을 것이다. - p. 117


하지만 역시 “균형”도 중요하다는 위로(?)를 얻게 되어 다행이다. 이전 글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듯이 나는 쉬는 시간도 너무 중요하다. 나란 사람은 “대학원생”이라는 단어로 정의될 수 없기 때문에. 자취를 통해 얻게 된 쉬는 시간과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들이 - 즉, 장을 보고, 반찬을 만들고,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고 친구들을 초대하고, 다이어리를 쓰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는 그 모든 시간들이 - 너무 중요한데 연구실에서의 “최선”을 위해 그토록 소중한 시간을 많이 포기해야 한다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았다. 하지만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 역시 “나”라는 것을, 무라카미 하루키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 (그러고 보니 그가 바로 “미라클 모닝”의 선구자 인지도?!) 4시간 동안 소설을 쓰고 나머지 시간 동안은 재즈 음악을 듣고, 위스키를 마시고 달리기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처럼, 나 역시 건강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선 똑 부러지게 쉬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대학원생이 되고 항상 느끼고 있던 딜레마에 대해 속 시원한 위로와 열정을 위한 격려의 말을 동시에 들은 것 같아서,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어 작가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작년에 진로 고민도 많이 하고 잠깐이나마 취업 시장을 관찰하면서 얻게 된 깨달음은 대학원에서 얻을 수 있는 “학위 (degree)” 그 자체가 많은 것을 약속해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억울하기도 하지만 내가 연구를 잘할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려면 “실적”을 쌓아 (편협하지만) 한 장의 종이에 그 내용을 담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때부터 연구 실력은 “실적 농사”와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당장은 열매를 맺기 어려워도 결국 나중에 색깔이 예쁘고 당도가 높은 과일을 재배하고 맛보기 위해서는 공부도 많이 하고, 여러 밭에 다양한 씨앗을 뿌리고, 선후배와 협업하며 나중을 기약한 만큼 속이 넓고 참을성이 깊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가님 역시 연구의 일부를 “정원에 씨앗을 심는 일”로 묘사한 구절을 읽고 굉장히 반갑다는 생각을 했다.


노력한다는 건 마치 정원에 씨앗을 심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뭔가를 계속 열심히 하는데,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어 보일 때. 실망감 때문에 ‘뭐, 이런 삽질이... 이걸 계속해 말아?라고 내 노력에 대해 의심을 하기도 한다. 그런 막연한 날이 계속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온도가 알맞고, 볕이 적당한 하루가 선물처럼 찾아온다. 그러자면 그 언젠가 내가 심어 두고도 까맣게 잊고 있던 씨앗들이 여기저기서 움트기 시작한다. 손톱처럼 자기장은 새싹들이 여기저기서 움트기 시작한다. 손톱처럼 자디 작은 새싹들이 자라서 결국 내 삶의 꽃이 되고 나무가 된다. - p. 92


당장은 내가 느린 것 같아도, 열심히 물을 주고 가꾸고 온 힘을 다해도 열매가 열리지 않는 답답함을 느끼게 되더라고, 인내의 시간을 거쳐 나중에 그 새싹들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꽃과 나무의 푸름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묵묵히 노력하며 추후 결실을 기대할 줄 아는 연구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급한 성격을 고려했을 땐, 정말 어려운 일이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나 역시 비슷한 분야 사이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있던 경험을 떠올렸을 때 작가님의 솔직함이 정말 좋았다. 작가님이 처음 언론고시를 준비할 때 “바닥부터 시작하는 것 말고 좀 수월한 길은 없을까. 한 번에 공중파 프로듀서로 폼나게 입사할 수는 없을까.”하고 생각했던 때. “원하는 건 있는데 실패하는 건 무서워서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핑계로 계속 뒷걸음칠 쳤던” 그때. 나 역시 처음부터 빛나고 싶었고 “간지 나는” 직업을 갖고 싶었고 내 상상 속 영화의 주인공처럼 멋진 일상과 사랑받는 삶, 주변 사람의 인정과 존경, 그리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주인공의 모습을 처음부터 상상했던지라 곧바로 그런 삶을 얻지 못한다는 현실을 마주했을 때 다소 충격을 받기도, 상처를 받기도 했다. (삶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게야...) 그리고 작가님이 인정했듯이 나 역시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가끔은 인생을 스케치북이라고 생각하고 망친 그림을 찢어내고 싶은 욕심이 들기도 했다. “그때 그 삶을 택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다이내믹하고 멋지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부질없는 생각들 말이다. 이런 마음을 인정하고 공유함으로써 “못생긴 생각”을 나무라지 않고 앞으로 내게 주어진 것을 낭비하지 않고 살아보겠다는 다짐과 결국엔 그렇게 새롭게 얻게 된 본인의 꿈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고 노력하게 되었다는 작가님의 스토리를 읽으며 기쁜 마음이 들었고 나 역시 꼭 그런 순간을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삶도 의미가 있다는 억지스러운 합리화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고 하루하루 몰입하며 살아가는 그런 삶 말이다.


처음 석사 과정을 시작할 땐 2년도 길거라고 생각했고 박사 공부를 어떻게 4-5년이나 하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때가 많다. “ROI (return on investment)” 계산이 어긋난다며 취직 준비를 권했던 선배들의 말을 들으며 박사 공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나 정도의 열정만으론 감히 해서는 안 되는 게 박사 공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전문성을 기대하고 대체 불가한 인력이 되고 싶은 꿈나무로서 박사 학위는 “증명서나 자격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알람 장치 같다”는 작가님의 말이 큰 위로가 되었다.


박사 학위는 증명서나 자격증이라고보다는 오히려 일종의 알람 장치 같았다. 앞으로의 삶을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알람 장치. 학위를 하는 동안 보고 배웠던 것처럼. 끊임없이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경계선에 스스로를 올려 좋을 것. 스스로의 테두리를 계속 바깥으로 밀면서 더 많은 이야기와 사람들과 지식을 끌어안을 것. 어쩌다 길어진 가방끈이지만, 그 가방끈에 부끄럽지 않도록 일생 노력할 것. - p. 120


불확실하지만 나의 도전에 대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점. 그 시간 와 에너지를 투자하여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배우고자 하는 태도와 내가 아는 것보다는 아직 잘 모르는 것에 더 집중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일하고 삶을 살겠다는 마음 가짐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스스로 직접 내린 결정이더라도 의심이 드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 같으니... 내가 열심히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내가 제출한 답안이 존재하니 어느 정도 스스로의 생각 회로를 믿고 열심히 노력해보겠다는 다짐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매 순간 조금이라도 나은 나를 찾기 위해 시도하고 애썼으니까” 말이다. 후회의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다시 도전할 내 삶이 훨씬 크니까 괜찮을 거라는 자가님의 말이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빈 공간을 꽉 채우고 난 후에야 비로소 삶이 시작될 것 같아서 많이 조급해했던 7년 전, 실은 채웠다는 그 모든 순간이 삶이었음을 이 연구실에서 배웠다. - p. 133


내 삶을 이미 시작되었다. 내가 준비가 된 것 같다고 감히 자신할 수 있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 같다. 목표 지점 자체보다도 거기까지의 여정을 즐기고 소중히 할 수 있는 사람, 그 모든 순간, 즉 내가 매일 연구실에 출근하며 공부하고 고민하고 실험하는 모든 순간이 이미 내 삶임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설사 “호수에 닿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의 여행이 우울하거나 재미없기만 했던 건 아니다.” 매끼 밥도 해 먹고, 마시멜로도 먹고, 친구들과 늦은 새벽까지 수다도 떨고, 이렇게 소중한 책을 만나 큰 공감과 위로를 얻은 것처럼 행복의 순간들은 중간에도 계속될 것이고 참 많을 것이다. 내가 가는 길을 있는 힘껏 받아들이고 일과 여과 모두 똑 부러지게 몰입할 수 있는 슬기로운 대학원 생활이 계속되기를 한 번 더 바라본다.


붙이는 말 - 전선영 작가님도 독서를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다. 많은 챕터에서 (아마 거의 모든 챕터에서) 인상 깊게 읽은 책과 구절을 꼭 언급해주신다. 다독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언어로 생각을 정리해서 내뱉곤 하는데 작가님의 경우엔 블로그의 글이 모여 책이 된 것 같다. 나도 언젠가는 내 생각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정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 추억 돋고 좋을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