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지 말고 환기시키자, 나의 마음을.
집안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음식을 조리하고, 돌린 빨래를 널고, 화장실 청소 등 부산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환기를 위해 창문을 활짝 연다. 더운 날엔 더운 공기를 집 밖으로 내쫓고 조금이라도 상쾌한 일말의 바람을 집 안으로 들이기 위해 창문을 열고, 반대로 추운 날엔 차가운 공기를 무릅쓰고 공기 정화를 위해 잠깐씩이라도 창문을 열고 있는다. 요즘엔 안타깝게도 미세먼지가 기승인 날이 많아 스마트폰 어플로 그날의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지 않고는 실컷 창문을 열기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탁해진 공기를 맑은 공기로 정화하는 일은 심신의 건강과 안정을 위해서 내가 매일 꼭 해내는 일과 중 하나다.
집안 공간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도 환기를 요구한다. 미세먼지처럼 바깥에 더 자극적이고 위험한 요소가 많다면 환기하는 횟수를 줄이며 조심스럽게 마음 환기를 도모해야겠다. 하지만 내면에 부정적인 에너지가 쌓이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느껴질 때는 주저하지 않고 분위기 전환과 마음의 창문을 열어 에너지 순환을 이끌어내는 것이 좋다. 개인적으로 마음 환기를 자주 필요로 하는 성향이고 그 필요를 머리와 가슴으로 잘 인지하는 편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매번 실천이 제일 어려운 것 같다.
최근에도 마음의 ‘리프레쉬 (refresh)’ 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유 없는 짜증과 부담감이 늘어났고 지금 내 인생과 라이프 스타일의 기반이 된 수많은 선택들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 그리고 이렇게 예민해진 스스로의 언행에 대한 죄책감과 자기반성의 시간이 잦아졌음을 느꼈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빠르고 효과적인 마음 환기에 ‘실패’했을 경우 스스로 불편한 마음을 안고 지내야 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까지 폐를 끼칠 수 있다는 크리티컬 한 (critical) 단점이 있다. 마음이 어둡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방전되었을 땐 주변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한다. 좋은 말을 들어도 내 마음이 삐뚤어져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유독 방어적인 자세에 돌입하게 된다. 지나가는 말들도 나에 대한 공격이라는 생각에 온 몸의 촉각이 예민해지고 이는 결국 주위 사람들, 한 술 더 떠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못생긴 언행으로 상처를 입히게 된다. 완벽한 악순환이다. 마치 환기가 필요한 자취방에서 창문을 꼭 닫고 ‘죄책감’이라는 삼겹살을 굽는 일과 비슷하다.
마음 환기가 안되면 소중한 충전의 시간을 허비하기 일도 더 많아진다. 예민해진 마음을 안고 경계하는 일상을 지내다 보면 당장의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다른 주의 산만 거리를 찾게 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마음의 안정과 일상의 뭉클함 그리고 뿌듯함을 채우기 위해 평상시에 책을 가까이하려고 노력한다. 영상을 시청하는 일보다 책을 읽는 일이 훨씬 더 주체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유튜브가 추천해주는 콘텐츠와 정해준 속도에 맞춰 수많은 영상을 주입받는 일보다 내가 준비된 시간에 나의 속도에 맞추어 책을 읽으며 생각에 잠기고, 나에게 어떤 의미와 교훈을 주었는지 곱씹어 보는 일이 더 큰 뭉클함을 선사한다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마음이 불안할 때면 손에 책도 잡히지 않는다. 그저 쉽게 나의 스트레스 원천을 잊어버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고 이는 바로 영상 테크놀로지, 즉 유튜브나 넷플릭스다. 가장 편리하고 재미있지만 궁극적으로 아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는 인터넷 상의 수많은 콘텐츠에 내 모든 시간을 빼앗겨버리는 것이다. 내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속수무책으로 빼앗기고 나면 눈도 뻑뻑하고, 자극적인 콘텐츠 홍수에 머리는 더 채워져서 잠을 청하기 어렵고. 이런 주의 산만 거리는 또 다른 악순환으로 연결되고 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음 순환이 꼭 필요한 이유는 건강을 위해서다. 즉, 마음 순환이 잘 안되면 심신의 건강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앞서 논의했던 ‘유튜브’라는 피난처는 수면의 질을 악화시킨다. 잠을 청하려고 “영상 하나만 더 봐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정신 차려보면 이미 한두 시간이 지난 경험은 21세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봤을 것이다. 무엇보다 수면의 질이 나빠지고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면 만성 염증 질환의 위험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비만이 될 확률도 높아진다! (맙소사!) 우리 몸은 급성 스트레스에 반응해 코르티솔 (cortisol)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이는 특히 여성으로부터 체지방 축적과 높은 연관성을 보였다. 심지어 복부 지방 말이다! 스트레스로 인해 잠을 설치는 일도 억울한데 뱃살까지 더 늘어날 예정이라니. 분하고 답답해서라도 안 되겠다. 반드시 마음 환기를 수행하여 건강한 일상을 되찾아야 한다.
마음 환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크게 나누어 보자면 1) 혼자 할 수 있는 방법과 2) 누군가와 함께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사실 당장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이나 인간관계에서 유래된 스트레스로 인해 마음 환기가 필요한 경우라면 누군가를 찾아서 귀중한 시간을 (quality time) 보내는 일이 어려울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도 주변 사람들과 계속해서 멀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마음이 어려웠던 적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대학원생이 되고 자취를 시작한 후 계속해서 느꼈던 감정이지만 주변 친구들과 물리적으로 떨어지게 되고, 각자의 바쁜 일상 속에서 점점 더 우선순위에서 밀리다는 점, 안타깝지만 밀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당시 나를 속상하게 했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다 보면 나를 제외한 모두가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는 비극적인 결론에 까지 이르게 되는데 이때는 적색경보다. 마음 환기가 시급하다는 신호다.
지금까지 나에게는 가족과 그리고 친구와 보낼 수 있는 시간들이 마음 환기를 도모할 수 있는 해결책이자 방법이었다. 다니고 있는 학교와 본가는 두 시간 정도 떨어져 있으니 당장의 스트레스를 느끼는 공간에서 벗어나 리프레쉬할 수도 있고, 나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면 그만큼 공감은 덜하겠지만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주 주말 집에 가기도 어렵고, 나도 내 주변 환경에서 더 효과적으로 마음을 돌볼 수 있는 방법과 사람들을 더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적어도 3년은 여기서 박사 학위를 수여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나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공허함과 고민거리를 무작정 공유하며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야 하나? 하지만 나는 스스로의 결함을 인정하는 일에 굉장히 큰 두려움을 느껴서 이런 방법이 가능이나 할지 모르겠다. 어찌 보면 나의 결함을 인정하는 이 일이야 말로 마음 환기를 위해 가장 필요한 용기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현재 읽고 있는 다니엘 튜더의 <고독한 이방인의 산책>에서 저자는 이와 같이 말을 했다.
인간은 스스로를 웃어넘기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런데 대외적 이미지나 타인과 차별화된 지위를 사수하려고 방어적인 자세로 살아간다면 그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별해야 한다는, 상대적인 지위를 획득해야 한다는 욕구를 버림으로써 우리 자신을 해방시켜야 한다.
오히려 자존감이 (self-esteem)이 유독 높아서, 자존심 (self-respect) 상하는 일들, 즉 다른 사람들 시선 속에서 창피한 일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나를 숨기고 방어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경향도 있을 것이다. 물론 창피당하는 일을 즐기는 자가 몇이나 될까 싶지만 상처 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계속해서 나 자신을 과보호하다가는 오히려 더 상처 받기 쉬운 사람이 되어있을 것 같다.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일들의 원인을 본인으로부터 찾지 않고 모든 것을 심각하게 문제화하지 않는 것이 마음 환기의 첫 번째 단계 아닐까. 그럴 수도 있다고, 괜찮다고 웃어넘기며 스스로 실수나 연약했던 모습까지 인정하는 태도야말로 우리를 해방시켜줄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해보지는 않아서 겁이 나지만 심신의 건강, 마음속 쾨쾨한 공기를 정화시키기 위해선 조금은 가볍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연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