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연말을 보내고 돌아보는 나의 첫 크리스마스트리 구매기
어딜 가든 인사성이 밝으면 반이라도 간다고 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항상 브런치에 더 많은 글을 업로드하는 게 '투 두 리스트 (To-do list)'인데 매번 실행이 어려운 것 같다. 연말엔 연말이라 더 바쁜 것도 있었고, 12월 초에 준비했던 논문이 또(!) 리젝트를 받는 바람에 멘털 붕괴 현상이 다소 오래 지속되었다. 그래서 이왕 연말인 김에 실적과 진도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말고 아예 놀자(?)라는 결론에 도달해서 나름 실컷 놀고 쉬어가는 연말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할 일은 하면서 놀았다. 생명공학 전공 대학원생으로서 실험만 왕창하고 논문 스터디는 왕창 미루는 정도의 "실컷 놀기"이다.)
원래부터 연말을 참 좋아한다. 2020년 마지막 날에는 혼자 한 해를 마무리하다가 뭉클해지는 바람에 <나에게 쓰는 연말 편지>라는 글을 업로드했다. (글 링크: https://brunch.co.kr/@hastysentiment/58) 그때도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건 공부도, 연구도, 실험도, 발표도, 노래도 아닌 그냥 "내가 나 하는 일"이다"라고 당차게 다짐하며 한 해를 마무리했었는데. 역시나 브런치 글을 자주 업로드하는 일만큼이나 모든 다짐은 결국 실천이 어렵다. 20201년에도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의구심이 가득 찬 채로 한 해를 마무리한 것 같아 마음이 다소 무거웠는데, 2020년을 마무리하며 직접 쓴 나의 브런치 글을 다시 읽어보니, 스스로 제자리걸음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도 생기는 것 같다. 어딜 가든 장점을 살려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잘 해내는 게 가장 현명한 일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는데, 항상 실천이 어렵지 뭐. (그걸 잘 해내는 사람들이 "찐" 실력자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올해 연말은 뭔가 하나 확실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만했다는 점이다! 크리스마스트리는 나의 오랜 소망이자 로망, 그리고 판타지였다. 이유는 모르겠다. 내가 특별히 더 감성적이고, 사소한 일, 작은 물건에도 감동을 느끼는 편이라 주변 것들에 의미부여를 많이 하곤 하는데 확실히 반짝반짝 빛나고, 집에서도 그 예쁜 모습을 간직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어렸을 때부터 나만의 크리스마스트리를 꼭 갖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문화가 없었고, 어른이 되어 대학생이 되었을 땐 오랜 기숙사 생활 때문에 나만의 공간을 꾸미거나 크리스마스트리를 장만하는 일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2021년 초 인생 첫 자취를 하면서 세상 다양한 뭉클함을 온전히 느끼며 살다 보니 날이 추워지자 나의 자취 버킷리스트에 자연스럽게 "크리스마스트리"가 추가되었다.
처음엔 무리이려나 싶기도 했다. 작지 않은 공간이지만 그렇다고 넉넉한 공간도 아니었다. 1인 가구에 딱 적합한 1.5룸 정도의 공간인데 이미 살림살이에 대한 욕심이 많아 1년 동안 많은 물건들과 가구들(!)이 추가된 후였다. 자취를 시작할 때부터 나의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책장이 꼭 필요했고, 건강하고 취향대로 끼니를 챙겨 먹을 수 있는 식탁도 꼭 필요했다. 그리고 여름엔 매일같이 딱딱한 의자에 앉아 티브이를 보는 것이 낭만을 파괴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노란색 1인용 소파를 구매하기도 했다. 그래서 트리를 둘 공간이 부족하려나 싶어 근심이 들기도 했다. 요즘 "예쁜 쓰레기"라는 말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예쁘기만 하고 쓸모는 없는 물건"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나의 인생 첫 트리 역시 "예쁜 쓰레기"가 되려나? 싶어 화끈하게 구매 버튼을 누르지 못했던 것 같다. 사이즈는 어떤 사이즈가 좋으며, 디자인은 어떻게 골라야 하지? 오너먼트를 따로 사는 게 예쁘려나, 같이 세트로 판매하는 상품이 나으려나? 등 나의 고민은 끝이 나지 않았다...
어떤 트리가 적합할지, 사이즈를 고민해보고 배치 구도를 상상해보는 동안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이러다가 12월 25일 후에 트리가 도착하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29CM에서 [스페셜 오더]로 트리 풀 세트를 아주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다른 사람들의 후기 글을 기다렸다가 살펴보니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그렇게 큰 공간을 차지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오너먼트도 하나씩 직접 골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꾸밀 수 있는 적당량을 함께 보내주는 상품이었다. 트리 초보자에게 딱 좋은 선택지였다. 그리고 예쁜 후기 사진을 보면서 깨달았다. "예쁘면" 이미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예쁜 쓰레기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인생 첫 크리스마스트리를 구매했다! 생각보다 배송도 빨라서 주중에 시키고 도착 문자를 받은 날엔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서 트리를 꾸미기 시작했다. 처음 조립해보는 거였지만 (나름 공대생이라 이런 거 또 되게 좋아하고 잘하면 뿌듯해하는데) 손쉽게 설치하고 오너먼트도 꾸밀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나만의 센스를 발휘해서 친구가 선물 준 킨더 (Kinder) 어드벤트 캘린더의 초콜릿을 더 달아주기도 했다. 훨씬 더 개성이 생긴 느낌이랄까. 스스로의 센스에 감탄하고 자아도취하며 퇴근하고 잠들기 전까진 반짝거리는 조명을 켜 두기도 했다. 아~ 정말 느낌 있어.
트리를 장만하고 나니 자연스럽게도(?) 내 트리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그래서 올 12월 나의 모든 연말 약속 장소는 "우리 집"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호스팅 하는 게 힘들진 않냐고 반문했지만 솔직히 나는 "내 사람들"이면 다 상관없었다. 프로페셔널한 인간관계가 아니라면 꽤나 선택적인 인간관계를 (personal relationship) 유지하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나는 내 사람들에게 쏟을 에너지는 충분한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워낙 집안일을 좋아하는 편이라 뒷정리를 꽤나 즐기는 편이다. (설거지가 재밌다고 하면 살짝 변태 같이 보이려나..?) 메뉴를 정해서 미리 장을 보고, 치느님이 방문하시는 날에도 항상 사이드 메뉴를 준비하다 보니 은근 자신 있는 메뉴도 생겼다. (미리 자랑하자면 트러플 마요 감자 샐러드다!) 여기에 평소에 마셔보고 싶어 미리 사둔 와인을 친구들과 함께 까면(?) 기쁨은 두 배가 되더라. 그래서 올해는 친구들을 불러 연말 파티를 실컷 했다. 선물 증정식도 하고, 카드도 써서 나눠주고, 디저트를 만들어서 나눠 먹기도 했다. 새로운 만남이 함께 하는 홈파티도 있었고, 마냥 익숙한 친구들끼리 오랜만에 마주하고 앉아 연말 분위기를 즐기는 모임도 있었다. 마냥 연말 분위기를 즐기며 하하호호 웃고 떠들다가도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는 진로 고민, 사람 고민, 각자 겪고 있는 스트레스의 무게를 덜기 위해 깊은 속마음을 털어놓는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여러모로 치유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게 다 크리스마스트리 덕분인 것 같다.
다양한 연말 모임을 가지며 의도한, 그리고 의도치 않은 선물 교환식도 많았다. 카드를 쓰면서 뭐라도 함께 주고 싶은 마음에 선물을 준비하면 그런 정성이 통했는지 친구도 가방에서 선물을 주섬주섬 꺼내곤 했다. (정말 못 말려.) 올해는 유독 양말 선물이 많았는데 양말 패션에 도전해보고 싶은 나에게 꼭 맞는 선물이라 너무 마음에 들었다. 검은색 캐시미어 양말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새겨진 양말은 그중에서도 나의 최애 양말이 되었는데 올블랙 운동화랑도 진짜 잘 어울린다.
앞서 언급했듯이 2021년 연말 모임을 준비하면서 새롭게 음식을 준비할 기회도 더 많았다. (그럴 리 없겠지만) 치킨이 심심하지 않도록 감자 샐러드, 부라타 치즈, 또는 카프레제 샐러드와 같은 사이드 메뉴를 준비했고, 친구들이 각자 준비한 메뉴 덕분에 식탁이 더 풍성해지기도 했다. 연말 모임에 맞춰 케이크를 사전 예약해준 친구도 있었고,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멀리서(?) 그 누구보다 멋지게 치킨 쿠폰을 보내준 고마운 인연도 있었다. 올해 새롭게 도전해본 메뉴 중에는 브리치즈 구이가 있는데 말 그대로 브리 치즈에 올리브유를 뿌리고 토마토와 견과류 토핑에 꿀을 더해 오븐에 구워내는 요리다. 여기에 통밀 크래커나 흔한 참 크래커를 함께 곁들여 먹으면 웬만한 와인바 부럽지 않은 안주 메뉴가 탄생하는데 덕분에(?) 1월 초인 지금 허리가 아주 부풀어 올라있다. 즐거움뿐만 아니라 연말 뱃살까지도 기꺼이 허락할 수 있는 아주 맛있는 메뉴다. 비주얼을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크리스마스트리 덕분에 올해 새로 생긴 나만의 공간에 친구들을 더 초대해서 아주 소중한 시간을 더 많이 보낼 수 있었다. 그 수많은 대화들과 연대의 시간, 그리고 마냥 웃기고 재밌었던 각자의 인생 썰에 대해서도 글을 써보고 싶지만 올해 느끼는 점들이 많아질 때마다 글을 써보려고 한다. 그렇게 나의 12월은 "논문 거절 (reject)"라는 처참한 소식과 함께 시작되어 정신 차리기 어려운 순간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돌이켜보니 내 주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따뜻한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다행이다. 오히려 슬럼프를 인정하고 나니 더 솔직하게 나눌 수 있었고,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겪은 고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세워가는 가치관에 대해 논의하고, 서로 어떤 부분에서 동의하는지, 그리고 다르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곱씹어보며 나 역시 한층 더 성숙해지고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 것 같다. 올해도 연말 시즌 크리스마스트리가 나에게 준 선물 같은 뭉클함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더 자주 음미할 수 있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 너무 앞서 걱정하지 않고 "하루씩 열심히 살다 보면 내 인생이 쌓이겠지 뭐"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이 자리를 빌려 나의 12월, 연말을 함께 해준 모든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우리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