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의 자본력보단 뉴욕의 아기자기한 라이프 스타일을 느끼고 싶다면
"뉴욕 여행"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곳들이 있다. 센트럴 파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브로드웨이 공연, 타임스퀘어 등이 있는데 이런 곳들의 특징은 혼잡하고, 인구밀도가 유독 높다는 점이고, 전 세계 곳곳에서 뉴욕을 찾은 여행객들이 줄지어 관광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뉴욕"의 라이프 스타일과 일상생활 그 자체를 느끼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브루클린, 그중에서도 윌리엄스버그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이전 글에서도 소개한 대로 윌리엄스버그는 젊음이 가득한 동네로서 가장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틈새시장을 노리는 뉴요커들을 가장 반겨주는 동네로 꼽을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수많은 이색적인 베이커리 카페나 커피 원두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로스터리 카페들 모두 브루클린에서 먼저 장사를 시작하고 큰 성공을 거두는 대로 맨해튼, 즉 뉴욕의 자본이 몰리는 본진으로 확장 이전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전 글에서 소개한 장바구니 브랜드 "바쿠 (BAGGU)" 역시 브루클린에서 시작했고 지금은 맨해튼 소호 (SoHo)에서 아주 큰 아뜰리에 매장을 운영 중이다.
뉴욕에 방문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또는 여러 차례 방문한 덕분에 대표적인 투어 패키지 속 액티비티는 이미 다 타파했다면(!) 맨해튼에서 오래 머무는 대신 윌리엄스버그의 구석구석을 천천히 살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다른 동네에 비해 덜 붐비고 로컬 뉴요커들의 주말 (또는 주중) 일상을 엿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 바로 윌리엄스버그라고 생각한다. 이곳에는 대형 체인점 대신 지역 상권이 굉장히 발달되어 있고, 누구나 들어가서 구경하기 좋은 귀여운 상점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문구류를 판매하는 문방구 역시 종류가 여러 가지인데 "문구"하면 떠오르는 일본식 브랜드를 대거 취급하는 Yoseka Stationery가 대표적인 예다. 벽면을 가득 채운 공책 종류부터 가운데 진열되어 있는 형형색색의 형광펜, 볼펜, 젤펜, 만년필까지, 게다가 친절하게도 모든 필기구를 하나씩 다 체험해 볼 수 있어서 더 좋다. 색깔은 마음에 드는지, 내 취향에 맞는 필기감인지, 쉽게 번지지는 않는지 등을 꼼꼼하게 테스트해 볼 수 있어 굉장히 좋다. 게다가 입구부터 진열되어 있는 자체 굿즈도 굉장히 귀여운데 실컷 구경하고 빈손으로 나서기 굉장히 어려운 곳이다. 한국인으로서 일본의 통화단위인 "엔(Yen)"의 가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 달러($)로 적혀있는 가격표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구하기 어려운 일본식 문구류를 구매하고 싶다면 꼭 들려볼 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선물 상점 (gift shop)"이라는 분류 하에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는 상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런 곳에서는 귀엽고 독특한, 개성 있는 소품들을 구경하기 좋다. 첫 장부터 마지막 한 장까지 디자인이 다채로운 다이어리 플래너부터 양말, 모자, 헤어밴드 등, 말 그대로 친구 생일에 "선물"하기 좋은 아이템들이 예쁘게 진열되어 있다. 또한 뉴욕 특색의 기념품스러운 물건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귀국 후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좋고, 뉴욕 여행을 기억하기 위한 나만의 선물로서도 손색이 없는 아이템을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작고 귀엽고 소중한 소품들을 잔뜩(!) 구매할 수 있는 상점 외에도 윌리엄스버그에는 체험형 카페 또는 스튜디오가 여러 곳 자리 잡고 있다. 입구 쪽에 진열된 도자기 디자인이 인상 깊어 방문했던 곳은 도자기 스튜디오로서 원데이 클래스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곳이었는데 수업 종류에 따라 화병을 만들 수도 있고, 머그잔을 만들 수도 있고, 접시를 만들 수도 있었다. 작은 스튜디오형 카페를 운영하는 분은 직접 도자기 공예를 전공한 예술가 (느낌을 물씬 풍기는) 사장님이셨는데 특별한 날에 직접 와서 도자기 공예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는 자신이 없다면 완제품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인 것 같다.) 그 외에도 Happy Medium라는 몇 달째 구글맵에 저장해 둔 "아트 카페"가 있는데 이곳은 음료 메뉴 대신 "경험"에 대한 메뉴가 있는 곳이다. 예를 들어 "Paint a pot"이라는 메뉴를 선택하면 구워진 도자기에 원하는 그림이나 패턴에 색감을 입혀 나만의 디자인을 만들 수 있고, "Fresh Watercolors"를 선택하면 수채화를 그릴 수 있는 물감과 종이를 받아 여유롭게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 외에도 오일 파스텔, 우정 팔찌 만들기, 크레파스, 지점토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데 본인의 미적 실력과 허용된 자원 (시간과 예산 모두 포함된다.)을 고려해서 가장 마음에 드는 메뉴를 선택하면 된다. 낭만 있는 기념일 또는 데이트 액티비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만간 꼭 가봐야지 :)
여러 차례 윌리엄스버그를 방문하며 관찰한 또 한 가지 특징은 바로 꽃이 많다는 점이다. 플로리스트가 예쁜 꽃다발을 만들어주는 꽃집도 많고, 화분이나 씨앗을 구매할 수 있는 화원 같은 상점도 많다. 뿐만 아니라 "꽃"을 테마로 한 카페도 있는데 이곳은 커피 한 잔을 주문하면 작은 꽃 한 송이를 받거나, 디저트를 고르던 와중에 예쁘게 꽃꽂이가 되어있는 미니 꽃다발을 발견하게 되면 또 한 번 지갑이 열리게 된다. (소소하게 구경하려고 노력하지만 뉴욕에서는 참 지갑이 쉽게도 잘 열린다. 각자의 위치에서 브랜딩과 마케팅을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사장님들 "덕분"이라고 생각하자! 지역 상권도(?) 살리고 말이다.) 사실 뉴욕에서 지내는 동안 예산 문제로 원하는 만큼 꽃을 구매하지는 못했다. 대전에서는 로컬 파머스 마켓에서 꽃다발을 저렴하게 구매하거나 간혹 어여쁜 꽃다발을 선물 받게 되면 화병에 꽂아 놓고 일주일 내내 예쁜 자태를 바라보는 게 참 좋았는데 아무래도 한 다발에 3-40불 하는 꽃을 자주 사기에는 망설여진다. 하지만 카페에서 판매하는 "쁘띠 (petit)" 꽃다발이나 선물 받는 한 송이 꽃다발은 집에 돌아와서 와인 병에 꽂아두기도 제격인 인테리어 소품 아이템이 되어준다.
꽃구경도 실컷 마쳤으면 또 발걸음을 움직여야 한다. 윌리엄스버그에는 유독 아기자기한 소품샵이 많은데 "Brooklyn Charm"이라는 DIY (Do It Yourself) 팔찌를 판매하는 곳도 인상 깊었다. 나에게 의미 있는 장신구 핀을 찾아 직원에게 "제출"하면 예쁜 팔찌로 만들어준다. 내가 태어난 달을 상징하는 탄생석 (birthstone) 비즈를 넣어도 예쁘고 (마침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인 노란색이 11월 탄생석이라는 점을 발견하고 유독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니셜부터 좋아하는 음식, 물건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서 말 그대로 "나만의" 팔찌를 만들기 좋은 곳이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빈티지 샵과 로컬 아티스트들이 직접 그리거나 만든, 디자인한 물건들은 챙겨 와서 판매하는 벼룩시작, 또는 "플리마켓 (flea marker)"이 주말마다 열리는데 갈 때마다 달라지는 물건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유독 내 마음을 사로잡는 엽서나 키링, 또는 빈티지 니트를 발견하는 날에는 한 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를 위한 선물"을 사기 가장 좋은 곳이 바로 윌리엄스버그의 고유한 장터라고 생각한다.
이만큼 동네 탐방을 했으면 슬슬 배가 고파올 수도 있는데 지난 글에서 소개한 베이커리 카페 외에도 맛있고 (비교적) 저렴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로컬 레스토랑과 음식점이 다수 자리 잡고 있다. 먼저 소개하고 싶은 곳은 식료품과 생활 용품을 함께 취급하는 편집샵인 Upstate Stock이다. 구글맵에는 "커피숍"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사실 메인은 그 외 가정용 제품인데 특히 이곳에 특별하게 입점되어 판매되고 있는 "Big Spoon" 피넛버터가 정말 맛이 좋다. (근처에 들릴 일이 있다면, 아니 피넛버터를 구매하기 위에 방문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장 기본적인 땅콩버터 외에도 독특한 맛의 견과류 잼을 다양하게 구매할 수 있는데 인상 깊었던 것들은 피스타치오맛과 코코넛 맛 외에도 "당근 케이크"맛이 있었다. 일반 마트보다는 훨씬 비싼 수제 땅콩버터이기 때문에 아직 종류별로 맛을 보지는 못했지만 (땅콩버터 기준 한 병에 $12이고 다른 특별한 맛, 또는 값 비싼 견과류를 사용한 버터의 경우 한 병에 $18까지 한다.) 유독 당근 케이크를 좋아하는 언니를 위해 귀국 전 꼭 한 병 사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는 식료품점이 아닌 제대로 음식을 판매하는 곳들도 다양한데 그중에서 유명한 곳은 L'industrie Pizzeria 피자가 아닐까 싶다. 물론 Joe's Pizza, Roberta's Pizza, Grimaldi's Pizza 등 전통적인 뉴욕의 피자 맛집도 많지만 L'industrie Pizzeria는 최근 들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서 가장 긴 줄을 자랑하는 곳이다. 부라타 치즈를 곁들여 먹는 피자가 유독 유명한데 얇고 바삭한 뉴욕 스타일 피자에 이탈리안 풍미를 더해서인지 정말 인기가 좋은 곳이다. 웨스트 빌리지에도 지점이 있지만 윌리엄스버그 지점이 비교적(!) 한산하기 때문에 윌리엄스버그에 들렸을 때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 외에 가본 곳 중에는 터키 스타일 브런치 메뉴를 판매하는 "Pally"인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도미노파크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서 음식을 포장해서 강가에서 샌드위치를 즐기기에도 좋고, 또는 날씨가 좋은 날에는 테라스에서 점심을 먹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엄마가 나한테 "양계장으로 시집가라"라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실 만큼 나는 계란과 계란을 재료로 삼은 모든 모든 요리를 좋아하는데 Pally에서도 역시 가장 유명한 시그니처 메뉴인 Turkish Egg를 주문했다. 녹진하고 부드러운 그릭요구르트와 약간의 마늘향, 그리고 알맞게 익혀진 시금치와 칠리오일이 아주 잘 어우러지는 건강한 메뉴였다. 함께 제공된 사워도우도 정말 쫀득하고 쿰쿰하니 내 스타일이었고 말이다.
혼자서 또는 친구들과 함께 윌리엄스버그에 방문하는 날이면 디저트는 꼭 Caffe Panna에 가서 젤라토를 먹게 되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는 유명한 모델인 Kendall Jenner (켄들 제너)가 수많은 파파라치 사진에서 카페 판나의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어서 화제가 된 곳인데 다행히도 소문난 잔치집에서 유독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었다. 여기도 유명세를 탄 곳이라 대기 줄이 없진 않지만 회전율이 좋아 금방 아이스크림을 받을 수도 있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맛뿐만 아니라 더할 수 있는 토핑의 종류가 정말 인상 깊었다. 느끼할 수 있는 휘핑크림은 신선해서인지 젤라토와도 잘 어울렸고, 특히 바닐라 맛을 품고 있는 젤라토를 선택한다면 올리브유와 바다 소금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진한 재료의 맛을 더욱 끌어올려주는 토핑과 다양한 맛, 그리고 친절한 서비스 덕분에 잠깐 화제성 인기가 아닌 오랜 시간 두터운 고객층을 유지하는 것 같다.
지난 글에서 다룬 윌리엄스버그 빵지순례와 더불어 이쪽 동네는 어떻게 살펴보는 게 좋을지에 대해 나만의 취향이 담긴 곳곳을 소개하고 싶었다. 너무 호화롭거나 너무 낡았거나, 당최 중간 지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맨해튼 보다는 차분한 듯 인기 있고, 유행을 좇는 듯 하지만 자신만의 틈새 (niche) 매력이 확실한 상권의 윌리엄스버그 동네가 내 취향과 잘 맞다고 느껴졌다. 무엇보다 내가 뉴욕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원인 도미노 파크 (Domino Park)가 윌리엄스버그의 강가에 자리 잡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여기서 보는 맨해튼 풍경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다. "브루클린"하면 생각나는 덤보 (Dumbo, 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도 상징적인 뷰를 자랑하는 훌륭한 명소지만 언제 방문해도 북적이는 탓에 관광 온 친구나 가족과 함께 동행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찾게 되는 곳은 아니다. 좀 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쨍한 이스트 강가 (East River) 풍경을 즐기며 쉬어갈 수 있는, 윌리엄스버그가 선물하는 낮과 밤의 맨해튼 뷰를 즐기면 더할 나위 없이 예쁜 뉴욕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뉴욕의 자본력보다는 아기자기한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꼭 맨해튼 다리를 건너 윌리엄스버그에 방문하기를 권하는 바이다.
맨해튼의 자본력보단 뉴욕의 아기자한 라이프 스타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