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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포닥이 꿈꾸는 미래

포닥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하여

by 성급한뭉클쟁이

이번 글은 여전히 "뉴욕"에 대한 글로 분류할 수 있을까 싶은 의구심도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트북을 열었다. 지난 6개월간의 포닥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논평" 같은 글을 작성하기 위해서다.


뉴욕에 온 지 벌써 190일이 지났다. 출근을 시작한 지는 183일이 지났으니까 이제 컬럼비아 대학에서 만 6개월 근무한 포닥이 되었다. 여느 때처럼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다행히 크게 외롭지 않은 시간이었다. 지난번 플로리다에서의 교환 경험과는 다르게 도시 문명의 최전선에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냈기 때문이다. 간단한 수치만 비교해 봐도 얼마나 극단적으로 정반대인 곳인지 알 수 있는데 플로리다 게인즈빌은 인구 14만의 "도시"인 반면, 이번에는 850만 명 사람들이 모여사는 뉴욕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내 주변 연구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도 뉴욕에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흘러넘쳤다. 기회가 닿을 때는 학교 동문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고, 국적 불문 한국 또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이 뉴욕으로 여행 오는 일이 잦다 보니 내가 굳이 먼 길을 떠나지 않아도 반갑게 얼굴 볼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뉴욕 맨해튼의 윗자락 116번가에 위치하고 있는 컬럼비아 대학 본캠퍼스와 사자 마스코트.
대부분의 의생명과학 분야 연구실은 116번가 본캠이 아닌 훨씬 더 윗동네인 168번가의 Irvine Medical Center 어바인 메디컨 센터에 위치하고 있다.

뉴욕에서 지내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앞서 말한 대로 뉴욕은 도시 문명의 최전선이라는 점이다. 어렸을 때부터 상하이라는 중국의 최대도시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 필자는 드높은 건물 숲과 다채로운 문화생활, 국제적인 분위기와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여 사람들과 교류하는 일을 좋아했다. (꼭 안타까운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하지만 학부 과정부터 대학원 과정을 대전광역시의 한 구석에 갇혀 지내다 보니 알게 모르게 답답함이 많이 쌓였는데 뉴욕 도심 한 복판으로 포닥을 나오게 되면서 이전의 갑갑함이 단번에 해소된 것 같다. 어딜 가든 유명한 박물관과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고 (심지어 지역 주민들은 주소가 적힌 ID 카드나 학생증을 제시하면 입장료를 면제받을 수도 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쇼, 오페라 공연, 유명한 카페나 레스토랑, 그리고 도심 곳곳에 위치한 공원의 푸른 광경을 즐기며 자전거를 타든 피크닉을 하든 당장 연주 중인 버스킹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국제 도시"의 정의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상하이에서 지냈다. 그 때의 경험들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뉴욕시의 문화와 자랑거리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던 New York City Museum. 자본, 다양성, 밀도 그리고 창의력이 이 도시를 이토록 매력있게 만든다.

안타깝게도 포닥 월급으로 뉴욕의 모든 문화생활을 실컷 즐길 만큼 예산이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 찾아보면 무료이거나 형편에 맞는,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급 퀄리티의 이벤트를 즐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컬럼비아에서 학생과 임직원을 대상으로 브로드웨이, 오페라, 오케스트라, 발레 등 공연 티켓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는데 같은 건물 포닥 친구와 알람 설정을 해두고 "위키드" 브로드웨이 쇼 티켓팅에 성공했다! 또한 이전 글에서 소개한 대로 한참 도심 속을 걷다가 공원에서 쉬어가려는데 냅다 카네기홀에서 마련한 무료 오페라 공연 이벤트를 할 때도 있고, 여행자들은 각 잡고 방문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또는 뉴욕 현대미술관을 내 집 드나들듯이 구경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52번가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나왔는데 갑자기 집중 호우가 쏟아져서 실내로 피신한 곳이 MoMA였다. 얼마나 낭만적인가?


이렇게 뉴욕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만 이야기하다 보면 문득 주변 사람들의 (그리고 나 스스로 역시) 질문을 받게 된다. 그럼 연구는 언제 하는지? 에 대한 질문인데 물론 놀기만 한다는 것은 아니고 주중에는 실험과 미팅 그리고 다양한 연구활동으로 꽤 많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핑계 대는 것이 아니고 평소에는 워낙 윗동네에 위치한 컬럼비아 대학의 (그중에서도 메디컬 센터는 116번가의 본캠보다 50 블록 정도 더 위에 위치한 168가에 자리 잡고 있다. 맨해튼과는 정말 분위기가 달라서 최대한 걸어서 퇴근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지리적 특성 때문에 "다운타운"에 가기도 어렵고, 한 주의 흐름에 맞게 시간을 알차게 사용하려면 주중에는 집중하고 주말에 하루 정도를 투자해서 열감을 식히는 루틴이 나에게 가장 적합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지만 굵직한, 뉴욕 한 복판에서 주말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 나를 참 기쁘게 한다. 무엇보다 이곳의 수많은 입력값 (input)을 바탕으로 나를 다시 글 쓰게 한 곳이니, 내가 사랑하는 뉴욕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뉴욕에서 지내며 도시 생활을 실컷 즐기고 있지만 놀랍게도 나름(?) 연구도 열심히 하는 모습. 최근 들어서는 논문 작업 때문에 퇴근이 더욱 늦어졌다. 역시 체력 관리는 필수다!

그렇다면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뉴욕에 평생 살 수는 없는 걸까? 아예 눌러앉을 수는(?) 없나?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일지를 고민하며 나의 고용주, 비자 상황, 새로운 정부의 이민정책, 미국과 한국의 지정학적 분위기 등을 고려해 보았고 그런 선택을 강행했을 때 내가 잃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해 봤다. 당장의 결론은 한국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나는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어지러울 만큼 다채로운 뉴욕의 모든 측면을 사랑하지만 내가 한국에 두고 온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그릴 미래, 무엇보다 커리어만을 위해 혼자서 길고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기엔 어려움이 따른다고 판단했다. 여전히 참 아이러니한 것이 박사학위를 받고 포닥으로 연구 생활을 이어가면서마저 마음이 한 방향으로 좁혀지지 않는 것 같다. 연구는 하면 할수록 즐겁지만 지루하기도 하고,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약간의 당근에도 쉽게 자극을 받지만 또 쉽게 지쳐버리는 나를 발견한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오로지 연구 실적만을 위해 나 홀로 기나긴 미국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싶은 걱정도 드는 게 사실이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독립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나임에도 불구하고 보장되는 것 없이 이제 막 시작될 30대의 절반 이상을 투자하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물론 상황에 맞게 나와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훌륭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법을 잘 알기에 걱정만 앞서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좀 더 안정적이고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많이 웃으면서 지낼 수 있는 미래가 더 기대되는 것 같다. 만약 "좋은 직장" (이라고 함은 포닥이 아닌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에서 안정적으로 미국에서 지낼 수 있는 취업비자와 지금보다 더 높은 연봉, 결국 한 달치 월세를 지불하고도 나름 여유로운 지갑 사정을 부여해 주는 곳)과 "가족"이 "미국 생활"이라는 방정식의 해가 된다면 당연히 이야기가 달라질 법도 하다. 해외 생활과 국제적인 업무 환경에서 자유롭게 끊임없이 탐구할 때 더 큰 성취와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은 눈에 보이는 해결책이 없으니 그저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 속 다양한 기회들에 충실하며 뉴욕에서 뜻깊은 포닥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뉴욕에서 지내다 보니 하루하루가 아쉬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주말이 되면 열심히 시내로 내려가 다양한 빵집과 맛집을 쏘다니며 나만의 뉴욕 라이프를 즐기고, 주중에는 최대한 열심히 다양한 정보에 나를 노출시키려 노력한다. "02화 뉴욕에서 연구하기" 글에서도 (https://brunch.co.kr/@hastysentiment/184) 언급한 대로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양한 설명회나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신임교원 채용 세미나에 참석해서 정보를 얻거나 교수님들께 미리 내 연구 주제를 소개하며 혹시 모를(!) 기회를 대비하여 연습 발표를 이어간다. 개인적으로 꼭 학계 (academia)에서 자리 잡는 것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라 한인 과학자들 모임에 나의 전공과 관련된 회사 부스가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참석하여 정보를 수집하기도 한다. 얼마 전 다녀온 학회장에서도 다양한 연구자들과 소통하며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세미나는 바로 "편집자와의 점심식사"라는 제목의 세미나였다. 우리 분야에서는 Cell Press라는 출판사가 여러 가지 저명한 학술지를 발행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의 학술지인 "Molecular Cell"의 부편집장이 컬럼비아 대학 메디컬 센터를 직접 방문한 적이 있다. "에디터와의 만남"이라는 부제를 갖고 대학원생과 포닥들을 초대하여 "학술지 편집자"라는 커리어 선택지에 대한 정보를 얻고 이후 점심 샌드위치를 나눠먹으며 캐주얼하게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자리였는데 개인적으로 유용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사실 저널 에디터라는 직업을 아주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에 기반을 둔 학술지 출판사 오피스 많지 않아 쉽게 목표 삼을 수 있는 직장은 아니었고, 개인적으로 기회가 닿을 때까지는 좀 더 최전선에서 연구에 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발행되지도 않는 내용의 논문을 가장 먼저,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상태로 읽어볼 수 있는 매력적인 직업이지만 그와 동시에 직접 실험하고 분석하고 연구하는 업은 아니라는 점에 다소 망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캠퍼스에 방문한 에디터와 이야기를 나누며 이 직업이 왜 매력적인지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마침 최근에 같은 학교 출신의 박사님이 다른 분야 출판사에 편집자로 취직한 경우가 있어서 더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연구 그 자체에 대한 (몸과 마음의) 고생은 덜하되 학계에 남아 연구 커뮤니티에 기여할 수 있다는 뿌듯함이 크다고 전해 들었다. 무엇보다 지리적 그리고 시간적으로 유연한 편집 업무 역시 큰 장점이라고 했는데 개인적인 시간을 중요시하고 읽고 쓰는 공부를 좋아하는, 게다가 연구는 적성에 안 맞지만(?) 연구하는 사람들이 좋아 끝내 학교를 떠나지 못한 나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다. 포닥 이후의 커리어 골로서 "저널 편집자"를 최종 선택했다는 선언은 아니지만 뉴욕에서 포닥으로 지내며 새롭게 알게 된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꿈을 꾸게 된 것 같아 좋았다.

구글 Gemini 인공지능 서비스가 만들어준 학술지 에디터의 직무와 업무 환경. 가장 최신 연구 결과에 대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소통해야 한다는 점이 나에게 큰 장점으로 느껴졌다.

세상만사, 일장일단 (世上萬事, 一長一短). 세상 모든 일에는 일면의 장점과 다른 일면의 단점이 있다. 포닥 6개월 차로서 매일같이 영감을 받고 있지만, 또 답답한 점도 느끼게 되었는데 이는 바로 "성공 단일화"에 대한 부분이다. (뉴욕의 특성이라기보다는 해외에서 포닥 생활 중인 집단에 대한 특징일 수도 있다.) 이곳에서 많은 박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 "바닥"에서는 아무래도 "국내 교수 임용"이 궁극의 성공이라고 정의되는 것 같아서다. 학계 실적을 향해 투자하는 앞으로의 2-3년 (분야에 따라 4-5년, 길게는 7-8년이 걸리기도 한다. 결국 "실적"이라 함은 1 저자로서 "논문"을 써내야 하기 때문이다.) 포닥생활을 바탕으로 임용 사이클에 도전하고 성공하는 경우 드디어 신임교원이 되어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다른 박사님들로부터 굉장히 흥미로운 비유 (analogy)도 들었는데 포닥은 결국 아이돌 연습생과도 같다고 하신다. "데뷔"라는 원대한 목표를 향해 매일 수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연습"해도 데뷔는 보장되지 않는 데다가 애석하게도 반드시 실력에 따라 줄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운과, 기획력 그리고 매력에 따라 데뷔에 성공하거나 실패할 수도 있다. 심지어 데뷔에 성공한다고 승자로서 게임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기획사의 아이돌들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교원이 되면 더 이상 논문 맨 앞의 1 저자가 아닌 맨 뒤의 교신저자로서 실적을 내고, 연구비를 따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거듭나야 한다. 관련 학회에 참석하며 입지를 다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실제로 비교해 보면 비슷한 점이 많구나 싶어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게다가 계속해서 연구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단계의 도전들이 굉장히 의미 있는 과학자로서의 발돋움이기도 하다. 임용에 성공하여 꿈꿔왔던 독립적인 연구자로서의 커리어 하이를 경험하며 빛나는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게 될 수도 있지만 내가 속상했던 점은 포닥의 끝이 반드시 임용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두 다 그렇게 할 수도 없고 말이다.) 각자의 적성에 맞게, 살고 싶은 삶에 맞게, 주변에 어떤 사람과 함께 할 수 있고,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에 따라 아무리 박사 학위를 받았고 포닥 경력을 쌓으면서 내가 잘하는 분야가 좁아질 대로 좁아졌다고 한들, 원하는 삶을 위해 아예 새로운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거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생명공학 분야 박사로서의 커리어가 아닌 작가로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삶을 더 밀도 있게 느끼고 이에 대해 글을 쓰고 소통하며 개인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과학 커뮤니케이션까지 아우를 수 있는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얼마나 실현 가능성 있는 이야기 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또한 "산업 (Industry)"라는 선택지도 분명 존재하는데 포닥 생활 초반부터 회사 취직 이야기를 꺼내면 굉장히 쉽게 생각하는 여론이 있어 적지 않게 당혹스러웠다. (내가 예민했을 수도 있지만 "임용 준비"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열심히 할 필요 없지 않냐는 누군가의 말에 조금은 화가 났었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포닥들도, 포닥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꿈을 꿀 수 있다는 말이다. 성공의 길을 하나라고 단정 짓고 싶지 않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그다음 챕터는 어떤 무대에서 시작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지내고 싶다. 나에게 주어진 수많은 정보와 대화의 기회들, 그리고 안목을 넓힐 수 있는 당장의 시간을 십분 활용하면서 말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학위를 받고 이미 30대가 되어 불안정한 타지 생활을 시작하다 보니 마음이 많이 복잡해지는 시기라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지난 반 년동안 느낀 것은 나에게 소중한 게 무엇인지가 제일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을 잘 파악하려면 결국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알아야 한다.

역시나 구글 Gemini가 만들어준 "학계"와 "산업"간의 딜레마. 오른쪽 Industry에는 큼직하게 달러 ($) 사인이 있는 반면 왼쪽에는 그저 학사모뿐인 점이 흥미롭다.

그래서 포닥 이후의 삶에 대해 관조하며 이번 글을 남기게 되었다. 오랜 대학원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학위, 즉 졸업장을 받게 되는데, 내가 포닥 생활을 마치게 되면 무엇이 나에게 남을지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시기인 것 같다. 또한 "끝"은 있는 건지, "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지, 그건 누가 정해주는 건지 생각해 보다가 결국 답은 "나"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흔들리며 내가 원하는 미래의 삶을 그리기 위한, 나에게 의미 있는 포닥 생활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을 담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문구로 이번 글을 마치기로 한다.


손석희 아나운서, “흔들리는 것은 올바른 길을 찾는 몸짓."
저녁 장을 보고 예쁜 해바라기 한 다발을 사서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가는 삶. 커리어에 대해 실컷 욕심나면서도 사실상 이보다 더 완벽한 라이프 스타일이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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