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만 나이 서른을 맞이하며 기록하는 뭉클한 사유
일 년 중 나에게 가장 큰 의미를 갖는 11월을 보내며,
따뜻하고 사랑 가득했던 생일 월간의 마음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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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에서 서른 하나 사이를 지나,
이제 약국 처방전에도 (만) 30세가 찍히는 내가 되었다.
나는 시대착오적 이게도 음력 생일을 챙겨 왔는데,
주변 사람들 입장에서는 참 불편했을 텐데 오랜 시간 내 옆에서 때맞춰 축하 인사를 건네준 사람들이 있었다.
역시 생일은 그래서 좋다, 괜히 오랜만에 안부 인사를 나누기 참 훌륭한 구실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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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른이 되어보니 분명 내 주변에 예전만큼 많은 사람들이 남아있지 않다는 게 또렷이 느껴진다.
특히나 나 역시 올해 봄부터 해외생활을 시작해서 그런지, 물리적인 만남은커녕, 각자의 바쁜 일상생활을 소화하려다 보니 직접 연락을 주고받기도 어려워진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어릴 적 친구들과의 거리감에 슬프기도 하고 대상 없는 원망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존경하는 빨간 안경을 쓴 한 평론가가 이런 말을 했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그저 사람들 간 시간이 흘렀을 뿐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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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큰 위로가 되었던 깨달음은 바로 물리적으로 닿지 않아도 서로의 중력이 느껴지는 거리에서 각자의 궤도를 돌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우정도 있다는 점이다. 마치 하루키 무라카미의 소설집 제목에 나오는 (아니 60여 년 전 소련이 우주로 쏘아 올린) 스푸트니크처럼 말이다. 직접 닿지는 못해도 멀리서 서로를 믿고 응원하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는 우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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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대가 되었으니 앞으로 이런 우정의 형태에 더 익숙해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각자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더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응원하고, 나 역시 가까운 내 주변 사람들을 돌보고, 내 눈앞에 놓인 길에 집중해서 발걸음을 옮겨야겠지.
그래도 세월과 현실에 체질되어 그 모습을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 작아져도 분명 존재하는 입자로서 나에게 남을 추억들을 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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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1월, 나는 서른이 되었고, 찬란했던 나의 이십 대와 영영 이별을 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처럼 무작정 아련하거나 슬프지만은 않다. 지난 십 년 동안 내가 겪은 시간들을 자양분 삼아 더 당차게 앞으로 나아갈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예전보다 나 자신을 더 예뻐하게 되었고, 나만이 나를 견딜 수 있다는 깨달음과 함께 스스로에게 더 큰 친절을 베풀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흔들림에 아파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고, 오히려 그 흔들림은 그저 스스로가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라고 여길 마음의 여유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앞으로는 좁아져도 더 깊고 진해질, 나의 여정들도 기대가 된다. 무한한 가능성도 좋았지만 하나씩 답을 찾아가며 느끼게 될 안락함을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내 인생에 맞이한 소중한 사람과 함께, 인생의 빈칸들을 묵직하게 하나씩 하나씩 채워나가며,
더 지혜롭고 차분한, 총명하고 친절한 버전 3의 나로 거듭날 수 있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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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웠던 나의 이십 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