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급한뭉클쟁이 Feb 14. 2021

2년 만에 다시 마시는 커피

다시 마시는 커피, 연구실 생활, 그리고 설 연휴를 마무리하며

지난 2년 동안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아니 선택적으로 마시지 않았다. 20대 초반, 아니 고등학생 때부터 즐겨 마시던 커피를 포기하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 2년 전 나는 잘 자고 싶었다.


내가 커피를 끊게 된 날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2019년 1월 17일, 나는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강원도 용평의 한 학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아직 내로라할 연구 실적은커녕 간단한 실험 결과 조차 없을 시기였다. 입학하기도 전이니 당연한 일일 테고 지도교수님께서 배려해주신 덕분에 나는 입학 전 연구실 사람들을 만나고 ‘학회’란 무엇인지 관찰하고 체험하기 위해 겨울날 한 학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당시엔 코로나 없이 자유롭게 교류하고 본인의 연구 주제에 대해 신나게 자랑하고 보여줄 수 있던 때라 대면으로 포스터 세션을 구경하고 분야에서 훌륭한 연구 실적을 쌓고 계신 교수님 및 많은 기조연설자를 직접 만나볼 수 있었다. 그땐 기조강연 내용 자체를 이해 못해서 떠오르는 질문도 없었지만, 그래도 누군가 이토록 열정적으로 하나의 연구주제에 대해서 발표하고 그에 대한 건설적이고 똑똑한(?) 질의응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수많은 연구자들의 ‘짬’에 혼자 감탄하고 있었다. (사실 주눅 들기도 했었다. 나 역시 학회 참석자들 만큼 열정적으로 연구가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만큼 연구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이전 글에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나는 나의 진로와 성향을 ‘시험 (test)’해보기 위해 석사과정에 입학한 경우였기 때문에 이 길이 내 길이라는 열정도, 자신감도, 확신도 없었었다.) 그렇게 나의 첫 학회는 감탄과 주눅 들기 사이를 오가며 평온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사건은 학회 둘째 날에 일어났다. 강원도 용평의 한 스키장 리조트 연회장에서 개최된 학회였기 때문에 강연이나 포스터 발표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자유시간 동안에는 학회 참가자 모두 스키장을 이용할 수 있었다. 연구실 선배 모두 가져온 스키 고글과 (goggles) 스키복을 대여하여 리프트권을 구매했고 지도 교수님 역시 즐겁게 스키를 타신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스키를 타본 적은 있었지만 “높은 곳에서 얇고 긴 두 짝의 막대기에 내 몸을 맡기고 내려오는 스릴”을 크게 즐기는 사람이 못되었다... 그렇다 보니 스키장 이용을 위한 모든 단계가 다소 번거롭게 느껴졌고 마침 리프트 옆에 운영하고 있는 관광 곤돌라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을 마시고 내려오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많은 친구들이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정상에서의 커피타임이야말로 용평 스키 리조트를 즐기는 가장 나다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곤돌라 왕복 이용권을 끊고 오후 시간에 맞춰 곤돌라에 탑승했다. 당시 함께 학회에 참석한 연구실 선배와 친구들 모두 스키를 타러 갔기 때문에 나는 혼자 곤돌라에 탑승했다. 고소공포증을 앓고 있다고 진단받은 적은 없어도 높은 곳을 매우 무서워하긴 하지만 별일 있으려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강원도 산맥을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나 홀로 휴식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 없이 곤돌라에 내 몸을 실었다.


곤돌라가 출발하고 눈으로 하얗게 물든 숲 속과 발 밑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스키장 이용객이 계속해서 보이기 시작했다. 슬슬 높은 곳으로 향하며 스키를 타는 관광객 역시 작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출발한 지 약 15분 정도 지났을 무렵 갑자기 덜-커! 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곤돌라는 아무 안내 방송 없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원래 스키장 이용객이 타고 내리면서 잠깐의 지연 (lag)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작은 곤돌라 안에 혼자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적지 않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냥 내리기엔 너무 높은 곳까지 와버렸고 곤돌라가 편도 25분인 것을 고려했을 때 나는 이미 중간 지점에 도달했을 때였다. 결국 꼼짝달싹 못하고 그저 안내 방송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안내센터와 전화연결이 어려운 상황이었고 어렵게 연결이 되었을 땐 우선 기다리라는 차가운 답변만 되돌아왔다. 그렇게 강원도 산맥의 허공에서 나 홀로 곤돌라가 다시 움직이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선 생각이 깊어지면 절대 안 된다. (하지만 필자는 없는 고민도 만들어하는 타입이다...) 케이블카를 다시 되감아주시려나? 갑자기 속도가 빨라지면 어떡하지? 줄이 끊어지면 어떡하지? 등의 생각은 혼자서 허공의 곤돌라 속에 격리된 상황에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앞뒤 곤돌라엔 아무도 탑승하고 있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 외롭게 느껴졌다. 나는 정상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었을 뿐인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아무리 재미없어도 그냥 동료들과 함께 리조트에서 대기하는 게 답이었을까? 등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이 나를 감싸 안았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다행히도 곤돌라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모든 사람들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쿨하게 탈 것에서 내리고 다시 올라타기 시작했다. 아니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나만 겁쟁이라고? 사실 굉장히 불쾌했지만 정상 위 안내원의 진심 어린 사과에 더 이상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나는 그저 카페에 가서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카페 라테를 주문했다. 책을 읽는 동안 커피를 마셨고 긴 시간 동안 정상에 머물지는 않았다. 빨리 내려가서 따뜻한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싶었고 빨리 친구들과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내가 적지 않게 놀랐던 것 같다.

강원도 용평 발왕산 정상에서 마신 카페라테. 그 땐 이 커피가 석사 생활동안 마지막 커피일지는 꿈에도 몰랐지.

그리고 그 날 나는 잠을 거의 한 숨도 잘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계속해서 어디론가 떨어지는 느낌이 났다. 어렸을 때 소위 어른들이 말하는 “키 크는 꿈”과 비슷했다. 나 역시 키가 작지 않은 편이라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찰나의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는 “키 크는 꿈”을 자주 경험했었는데 잠들지 않아도 불을 꾸고 눈을 감으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새벽 3-4시까지 잠을 못 이루고 있었는데 다음날은 학회 마지막 날이라 아침 일찍 식사를 하고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하는 날이었다. 두 시간 정도 뒤척이다가 아침 식사 자리에 갔고 나의 “곤돌라 사건”은 하나의 ‘썰’이 된 채 기억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그 날 잠을 못 이뤘던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는지 나는 그 날 이후로 커피를 멀리하게 되었고 기억나는 다짐 없이 커피를 끊게 되었다. 피곤하지만 온 몸의 세포가 깨어있는 듯한 각성상태가 유지되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좀 더 푹 잠을 청하며 쉬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다. 애꿎은 커피에 화풀이(?)를 하게 된 경우 같지만 나는 그렇게 커피와 멀어졌고 2019년도 봄에 입학하여 작년 2020년 12월 학위 논문 심사를 거친 2년 동안 커피 없이 대학원 생활을 하게 되었다.


대학원생으로서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말을 전하면 많은 사람들은 걱정 어린(?) 말투로 나에게 얘기한다 — “대학원 생활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 (사실 걱정이라기 보단 장난기 섞인 ‘꼰대적’ 발언이지만.) 한창 공부하고 실험하고 논문 쓰느라 잠이 부족할 텐데 커피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하냐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커피를 대신하여 다양한 종류의 ‘차 (tea)’의 매력에 푹 빠진 상황이었고 카페인을 전혀 섭취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크게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어찌 보면 나는 잠과 휴식을 모두 챙기며 균형 잡힌 생활을 이어가는 대학원생이라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학부 생활을 하면서 커피를 멀리하기엔 분명히 더 힘들었을 것 같긴 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활동적으로 수업을 오갔고 친구들을 만났으며 많이 공부했다. (사실 나는 도서관이 12시에 닫을 때까지만 공부하고 기숙사로 돌아갔는데 다른 친구들은 24시간 운영하는 학습공간에서 밤을 지세며 공부하기도 했다. 이런 친구들을 보며 나는 “노오오력”이 부족한 건지 자책한 적도 많았었다.) 워낙 활동적인 학부 생활을 보내서 그런지 나에게 커피는 필수였고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함께 주고받는 휴식의 시간을 정말 좋아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랜 기숙사 생활이 지속되면서 아침을 걸렀을 땐 고소한 우유와 함께 마시는 카페라테를 참 좋아하기도 했다. 빈속에 우유와 커피를 마시는 것이 건강에는 좋지 않았겠지만 커피를 마시며 수업에 집중하고 필기를 하며 질문을 던지는 그 모든 시간들이 참 행복했었다. (역시 아무리 고생을 했어도 지난 시간은 다 미화되나 보다. 지금은 돌아오지 않은 이십 대 초반 학부생 시절이 너무 찬란하게 기억된다. 아, 그리워!)


지난 2년 동안 석사과정 생활을 이어가면서 육체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힘든 날들이 참 많았었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내가 잘하고 싶은 일이 과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연구가 맞는 건지, 그리고 도대체 슬기로운 대학원 생활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지. 개인의 성향에 따라, 그리고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가치관에 따라 답은 하나가 아니겠지만 그래도 답답했다. 열심히만 했던 시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많은 일들이 나의 결심과 책임을 요구했다. 그리고 야속하게도 반쪽짜리 마음으로 임한 일은 하나같이 다 티가 났다. 온 마음을 다하지 않고는 상대방도, 그리고 나도 속일 수 없었고 그렇게 연구실 생활 적응 방법에 대해 고민하며 2년을 보냈다. 이렇게 고민이 계속되다 보니 몸과 마음은 더 피로해졌고 그래서 나는 더 잘 자고 싶었다 — 그리고 그래서 커피라도 꼭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좋아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2021년 2월 14일, 커피를 다시 마셨다. 설 연휴 마지막 날 커피가 맛있다는 카페를 찾아 드라이브를 나왔다.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브런치 글을 쓸 수 있는 아이패드를 들고 말이다. “카 찔이 (카페인 찌질이)”를 위해 사장님께서 에스프레소 샷을 한 잔만 넣어주셨고 부드러운 우유 맛이 정말 고소한 카페라테를 마실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맛엔 나의 이십 대 초반, 학부생활 동안의 추억이 담겨있었다. 수업 중간에 마시던 카페라테, 밥 약속 이후 입가심을 위해 조각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마셨던 아메리카노, 그리고 도서관 공사 시절 공부할 곳을 찾아 동네 카페를 누비던 2017년 렉쳐 노트 한 편에 한 잔씩 마시던 카푸치노 맛이 담겨있었다.

대전 관평동의 카페 알베로에서 주문한 카페라테. 클래식 음악과 개성있는 커피잔, 연두색 포인트 벽지가 마음에 드는 카페다. 자주 놀러와야지.

왜 2년 동안 꾹 참다가 오늘은 커피를 주문했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젠 준비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달 자취 생활을 시작하며 양질의 잠을 청할 수 있는 나의 공간도 생겼고 앞서 발행했던 글에서 언급했듯이 나에게 공적인 (professional) 그리고 사적인 (personal)한 영역이 잘 나뉘어 마련되었으니 앞으로는 잘 챙겨 먹고 수면할 수 있는 시기가 찾아온 건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고민이 끝이 난 것은 아니다. 인생은 종착지가 아니라 매 순간 그 단계를 잘 겪어내야 하는 여정과도 같아서 어떤 선택을 했든 그 줄기로부터 또 여러 개의 줄기가 자라나는 것 같다. 어떤 결정이든 마음을 정하는 단계가 어려워 오랜 시간 고민했는데 하나의 결심은 고민의 끝을 의미하지 않더라. 그는 또다시 여러 가지 선택지들 사이로 나를 데려가 준다. 그래서 앞으로는 결심의 순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매 단계에서 어떤 결정을 할 수 있을지 내 사람들과 고민하고 모든 결정으로부터 배움을 얻으면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설 연휴 전 연구실에서 살짝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1월엔 안정감을 주는 공간을 새롭게 가꾸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었는데 슬슬 변화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앞으로도 내가 해오던 데로 하면 되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아 자기 의심의 일주일을 보내게 되었다. 그래도 연휴 동안 물리적으로 내 공적 영역 (professional sphere)에서 벗어나 생각을 비우고 몸을 잘 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민에 대한 해답과 전략을 빨리 찾아낼 수는 없겠지만 이 시기를 잘 겪어내려면 섬세하게 고민하고 더 많이 소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하고 싶어서, 폐 끼치고 싶지 않아서 혼자 고민하는 대신 도움이 필요할 땐 이야기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겐 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세상 모든 일엔 협업이 필요하듯이, 존 돈 (John Donne)의 “No man is an Island”라는 말을 기억하고 좀 더 용기를 내어 소통해보아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번 연휴를 마무리한다.


연휴 동안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저격당한 대사가 있었다.

“Sometimes, all you need is 20 seconds of insane courage, just literally 20 seconds of embarrassing bravery, and I promise you, something great will come of it.” — Benjamin Mee

20초 동안 앞뒤 생각하지 않고 용기를 내보라는 벤자민의 조언은 앞으로 2021년 동안 또 색다른 변화를 맞이하게 될 나에게도 중요한 말이 될 것 같다. 미리 상대방의 반응에 대해 걱정하는 대신 우선 말을 걸자. 미안함보다는 함께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가득한 2021년의 봄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호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