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를 나와 친구들과 독립했다

가족보다 친구와의 독립이 더 마음 아픈 독립 일기

by 성급한뭉클쟁이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뻔하디 뻔한 말이 있다. 사람 간 거리가 멀어지면 공감도 줄어든다는 맥락의 클리셰적 속담인데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기 때문에 이런 속담이 생겨난 거겠지. 요즘은 어쩔 수 없이 주변 친구들과 몸의 멀어짐을 인지하고 이에 수반되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쿨하게) 허락해야 함의 슬픔에 대해서 글을 써보려고 한다. 기숙사를 나와 독립한 지 삼 개월 만에 약간의(?) 적막함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올해 초 기숙사를 나와서 독립한 지 삼 개월 정도가 지났다. 기숙사 생활을 원체 오래 한지라 얼른 내 공간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깊게 했었다. 작년엔 마음고생도 심했어서 심신의 건강을 보다 더 잘 보살필 수 있는 나의 개인적 영역을 꾸리고 싶었고 운이 좋게 곧바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기숙사 생활의 어쩔 수 없는 불편함 들을 인내했던 게 무색할 만큼 자취방은 금방 구해졌고 자취를 결심한 지 일주일 만에 이사하게 되었다.


자취 로망은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지라 자취의 현실화를 겪으며 낯설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자취를 결심하기부터 실제로 이사하기까지, 이 모든 일이 너무 빨리 일어났나 보다. (아니면 처음엔 너무 기쁜 나머지 나의 깊은 마음속까지 돌보지 못한 걸 수도 있고.) 아직도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재밌는 일들이 많고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는 모든 순간이 정말 소중하지만 독립과 함께 같은 캠퍼스를 공유하는 친구들과 그만큼 거리가 생겼음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 학교는 학부생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게 필수라 정말 어린 나이의 - 스무 살, 또는 때에 따라 열아홉 살의 -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학교에서 지내야 했다. 너무 모여 살다 보니 불편한 점도 있었다. 어딜 가나 아는 사람이 보이고, 누가 어디서 누구랑 뭘 했는지가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듯한 나날도 있었다. 익명이 보장되는 사회와는 거리가 멀었고 사회 구성원이 특정 동네에 모여 서로의 영역에 개입하고 관심을 보이며 살아가는 작은 커뮤니티 같았다. 주변에 뭐가 많은 것도 아니라 딱 교내 캠퍼스에서 오순도순 모여 살아가는, 약간 스머프 빌리지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이런 점이 참 불편하다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쉬다 오고 싶다고 친구들에게 투덜 된 적이 참 많았는데, 자취를 시작하게 되면서 우리 학교의 이런 “스머프마을”스러움을 가장 즐겼던 사람은 바로 나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살짝 자존심 상하는 모먼트...)


“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 즉 한 독립력을 자랑하는 본인이라고 나름 자부하며 살았는데, 이런 적막함을 느껴버리다니. 내가 충분히 더 표현 못했을 수도 있지만 내 친구들이 나한테 많이 소중하긴 한가보다. 오히려 집을 나와 자취를 시작했다는 느낌보다는 기숙사를 나와 자취를 시작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고 첫 자취를 맞이하는 나의 느낌을 더 잘 나타내는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대로 기숙사 생활이 필수인 데다 학교 캠퍼스 자체가 대전이라 스무 살 때부터 학교에서 살았는데 그래서 집에 가는 횟수나 부모님을 뵐 수 있는 빈도수에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다만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서로의 매일 (everyday)을 공유하며 진지하든 시시콜콜 시답잖은 이야기든, 대화를 나누며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급격히 줄어버렸다. 이런 시간을 메꾸기 위해 집들이를 마련하고 친구들을 초대하며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보았지만 나도 대학원생이고 주변 친구들도 죄다 박사과정 대학원생들이니 서로 바쁘기도 하고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듯하다. (다들 행복한 연애 중이라 그런가!?)


물론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해야만 스스로가 온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 정반대이다.) 하지만 정말 솔직하게 내 마음을 고백하자면 정말 오랜 시간 가까운 거리에서 가족과도 같은 우정 관계를 이어오다 보니 나의 첫 자취에서는 가족과의 독립보다 친구들과의 독립이 더 힘겹게 느껴진다. (우리 엄마가 읽으면 서운해하실 대목이지만 그만큼 “찐”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는 뜻이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뿌듯해해주시길...)


독립심 하나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자기 주도적이고 혼자 놀기의 고수인 내가 친구들의 빈자리를 더욱 크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소중한 친구들을 주변에 둘 수 있었다는 의미이기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친구들과 늦은 시간까지 함께 공부하고 과제 제출에 허우적거리던 시간들. 대신 힘겹게 과제를 마무리한 후 맥주 한잔을 기울이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던 순간들과 아무리 늦게 귀”방”한 날이어도 함께 이야기 나누며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고 서로에게 응원의 말을 건네줄 수 있던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지고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5평짜리 기숙사 방이 둘에게 넉넉한 공간은 아니었으니까, 모든 생활이 편안하고 아쉬운 점이 없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기숙사에서 나의 이십 대 초반과 중반을 보내며 친구들과 함께 쌓을 수 있었던 추억의 양과 깊이는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으며 시간을 돌리더라도 그 어떤 대안과도 바꾸지도 않을 것이다.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임을 매해 실감케 했던 4월의 캠퍼스 풍경. 저학년 땐 언제라도 부르면 함께할 수 있는 친구들이 가득한 캠퍼스 생활을 했었다. 다들 참 어리고 즐거웠다.
친구랑 방술도 참 자주 했는데 해가 거듭할 수록 퀄리티가 높아졌었다. 캔맥주로 끝나는게 아니라 캔들을 켜고 와인 잔에 종류별로 시음회를 열기 시작했으며 안주고 고급이 되어갔다.
시원한 생맥주도 참 좋아했고, 비오는 날 마라탕 먹으러 갔다가 계획에 없던(?) 맥주 짠을 했을 때도 기분이 너무 좋았던거, 너는 알거야!
날이 좋으면 연구실에 있기 싫어서 뭐라도 사서 밖에서 먹는 시간을 좋아했던 우리. 옥상에서든 벤치에서든 햇빛을 받으며 나눠 먹었던건 메뉴불문 다 즐겁고 맛있었다
신상 흑임자 싸만코를 발견한 날엔 2+1 행사 상품을 사서 두 가지 맛을 한 번에 나눠 먹을 수 있다는 기쁨에 뿌듯해 했었다. 역시 한국인은 반반이 진리다.

그리고 내가 요즘 느끼는 이런 쓸쓸함은 아마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면해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구하다고 믿고 삶의 단계를 “~하기 좋을 때”로 구분 짓는 일에는 절대 반대하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는, 친구들과 어느 정도의 거리감은 허락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라고 느껴졌다.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돌봐야 할 영역이 생겨나고 그 모든 과정을 함께 할 수는 없기에. 그래도 조금은 먼 곳에서라도 서로를 항상, 온 마음 다해 응원하고 만날 때마다 어제 만난 것 같은 친구들이 있음에 감사한다. 그 들은 내 친구가 맞고, 나 역시 그들의 “베스트 프렌드”이기에. 이젠 어른이 되었기에 함께 보내는 시간만이 우정의 척도나 통화 (currency)가 될 수는 없나 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주엔 친구들한테 같이 점심 먹자고 연락이라도 해봐야겠다. 조금 더 그리운 사람이 먼저 연락하고 보러 가지 뭐. 혹시 바쁠까 봐, 나의 연락이 민폐가 될까 봐 라는 바보 같은 걱정은 안 해야겠다. (그렇게 걱정하는 게 더 어색해 보임.) 그리고 친구들 생각을 하니 내가 그리 독립적이었던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그저 주변 친구들에게 (나도 모르게) 극심히 의존적인 일상생활을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마음이 살랑살랑하는 것이 확실히 봄이 오긴 했나 보다. 친구들도 더 자주 보고, 나 역시 좋은 인연들을 내 삶에 초대할 수 있도록 좋은 기운을 유지해야겠다.

(작년 통틀어 가장 많이 울었던 날) 서울에서 땅콩버터도넛을 들고 내 앞에 나타나 위로의 말을 건내준 나의 베프. 역시 난 친구 없인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