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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나라에선 뱃살공주가 되어도 괜찮아

풍미 짙은 치즈에 진심입니다

by 성급한뭉클쟁이

“치즈~!”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대가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영국인이든, “치즈 (cheese)”를 입가에 머금는 순간 미소가 활짝 필 것이다.


필자의 경우 입가뿐만 아니라 치즈를 입 안에 담아도 마찬가지다. 고소하고 풍미 짙은 치즈, 열을 가했을 때 유연하게 늘어나는 고귀한 자태, 담백하면서도 짭조름하고 심지어 영양소까지 풍부한 치즈를 정말 좋아한다.


“치즈를 좋아한다”라고 선언하기엔 그 종류가 정말 다양해서 좀 더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 고다, 체다, 모차렐라, 리코타부터 요즘 유행하는 부라타 치즈도 있고, 또 편의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스트링 치즈와 피자 위에 양껏 뿌려 먹던 파마산 치즈, 그리고 어렸을 때 즐겨먹던 아기치즈도 있다. 모든 것이 다 그렇듯 치즈도 깊게 파고들자면 끝도 없고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내가 모르는 것들만 많아질 것 같다. 어찌 되었든 핵심은 내가 치즈를 좋아한다는 것, 아니 아주 많이 좋아한다는 점이다.


한 음식 블로그를 보니 “인간이 신에게 받은 식품 중 가장 완전한 식품”이 바로 치즈라고 한다. 칼슘과 미네랄, 비타민이랑 단백질뿐만 아니라 양질의 지방까지 함유하고 있으니, 치즈만 먹어도 충분히 연명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체다 치즈나 미국 치즈(?)와 같이 고열량에 높은 나트륨량을 갖고 있는 치즈 종류도 많지만 결국 고단백에 필수 아미노산을 듬뿍 포함하고 있으니 적당히 지혜롭게 섭취한다면 분명 건강에도 이로운 식재료일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치즈여도 “과유불급”의 진리를 피해 갈 수 없나 보다.) 하지만 “완전식품”이기 때문에 치즈를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결국 인간이, 우리가, 내가 치즈를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풍미 때문일 것이다. 발효시간과 번거로운 생산 과정을 거쳐 쫀득하고 부드러운 질감의 치즈가 완성되는데 오랜 시간의 고생이 어여쁜 열매를 맺듯이 맛 좋고 식감 좋은 치즈가 완성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선물을 맛있게 즐기면 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치즈를 어떻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가? 우선 빵과 곁들이거나 안주로 먹을 수 있는 치즈를 좋아한다. 앞서 치즈는 “완전식품”이기 때문에 치즈만 섭취해도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고 했으나 치즈는 그 어떤 음식과도 훌륭한 “케미 (chemistry)”를 자랑한다. 동양에선 김치볶음밥에 치즈를 녹여 먹고, 서양에선 노릇하게 구워진 베이글 위에 크림치즈를 펴 발라 먹는다. 밥도 밥이지만 치즈는 빵과 확실히 잘 어울리는데 바게트 빵이나 사워도우 같은 발효 빵이 확실히 그 풍미를 더해준다.


빵이나 밥과 같은 탄수화물 외에도 치즈와 정말 어울리는 식재료가 많은데 그중 1등은 토마토라고 생각한다. 카프레제 샐러드를 만들어 바질 페스토나 발사믹 식초와 함께 먹어도 맛있고, 짭조름한 대저토마토에 올리브유를 드레싱 해서 함께 먹어도 정말 맛이 좋다. 사실 토마토와 치즈의 조합은 나폴리 스타일 화덕피자가 대표적인데 피자뿐만 아니라 모차렐라와 토마토를 샐러드로도 가볍게 즐길 수 있으니, 많이 먹어도 더부룩함이 적어 아주 좋다.

와인 페어링 클래스에 참석했을 때 만들어 먹은 카프레제 샐러드와 바게트 빵. 특히나 화이트 와인의 산뜻함과 잘 어울리는 안주였다.
집에서도 쉽게 카프레제 샐러드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단, 반드시 올리브유를 아끼지 않고 알이 굵은 후추로 고소함을 더해줄 것!
짭조름한 대저토마토로 만든 카프레제 샐러드

모차렐라 외에도 빵과 잘 어울리는 치즈를 고르라면 고다 치즈를 다음으로 꼽을 것이다. 치즈 토스트를 해 먹을 때 고다 치즈가 가장 맛있기 때문. 치즈 토스트를 맛있게 해 먹을 수 있는 이유도 요즘 필자의 브런치 글에서 매우 자주 등장하고 있는 발뮤다 토스트기 덕분인데 위에서 열을 세게 가해 치즈가 잘 녹아나 더 부드럽고 맛 좋은 토스트를 먹을 수 있다. 고다 치즈는 우유를 써서 압착한 후 숙성시킨 네덜란드의 세미 하드 치즈라고 하는데 딱딱한 치즈가 부드럽게 녹아내렸을 때 드러나는 우유 향이 일품인 것 같다.

고다 치즈를 식빵에 올려 구워 먹으면 정말 맛이 좋다. 그 위에 베이컨/햄이랑 반숙한 계란 후라이를 올려먹으면 비싼 브런치 맛집 부럽지 않다.

아이스크림과도 같은 질감을 자랑하는 리코타 치즈 역시 샐러드로 먹거나 제철과일과 함께 먹을 때 그 매력이 배가 된다. 브런치 글을 쓰면서 조사해보니 리코타는 특히나 지방 함량이 적고 단백질이 많아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에겐 더 좋다고 한다! (근손실까지 예방해주는 건가...) 집에서도 블루베리나 체리, 또는 딸기와 같은 베리류와 함께 먹거나 사과와 함께 섞어 그래놀라를 뿌려먹어도 맛이 좋다. 단 맛을 더하고 싶다면 꿀을 뿌려 디저트로 먹어도 제격이다, 역시 인간은 단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리코타 치즈와 베리류, 그리고 사과랑 그래놀라를 섞어 디저트 볼을 만들었다. (원래는 아침으로 먹으려 했으나 입맛을 확 돋구어주는 바람에 간식이 되었다는건 안비밀...)

요즘엔 치즈볼이나 임실치즈같이 그대로 구워 먹을 수 있는 치즈 종류도 다양하게 보인다. 얼마 전에 운동을 열심히 하는 친구가 치즈볼 칼로리를 보여주어 충격을 받았던 일을 빼고는 치즈볼도 아주 좋아한다 - 특히 뿌링 소스가 뿌려져 있는 그 치즈볼 말이다! 역시 치즈는 와인과 잘 어울리고, 브리치즈처럼 우유 향이 강하고 부드러운 치즈는 견과류나 청포도와 같이 담백하거나 신 맛이 일품인 과일과 곁들여 먹어도 아주 좋은 안주가 완성된다. 살짝 출출했다면 비스킷도 빼먹을 수 없고 말이다.

친구가 집들이 때 구워준 임실 치즈와 에어프라이기로 튀겨낸 치즈볼!
비스켓과 청포도, 그리고 브리 치즈의 조합은 말해뭐해...

치즈는 또 든든해서 든든하다(?). 출출할 때 간단히 배를 채울 수 있는 훌륭한 식재료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외여행 중 끼니를 챙겨 먹기 어렵거나 이동 중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고 싶을 때 로컬 마트에서 비스킷과 크림치즈를 사서 여행을 다닌 적이 있다. 다행히 덥지 않은 날씨라 크림치즈가 녹을 걱정은 없었고 월넛이 들어간 비스킷과 크림치즈, 그리고 아보카도의 조합은 정말 훌륭했다.

살구가 알알이 박혀 있는 크림치즈와 월넛의 고소함이 강한 비스켓의 조화가 정말 맛있었다!

필자는 다양한 치즈를 맛보고 좋아하지만 많고 많은 치즈 중 나의 최애를 하나 골라보자면 단연코 부라타 치즈다. 사실 부라타 치즈의 원재료는 모차렐라와 크림이기 때문에 모차렐라와 나누어 구분 짓기 애매할 수도 있지만 분명 차이가 있다. 부라타의 겉껍질(?)은 단단한 고체로 이루어져 있지만 속은 부드러운 우유 치즈와 크림이 들어있기 때문에 터트려 먹는 재미가 있다. 이 것은 마치 에그 베네딕트 위에 올라가 있는 수란을 깨트려 노른자가 분수처럼 흘러내리는 것과도 비슷한데 치즈기 때문에 더 맛있다. (물론 계란도 나의 최애 식재료 중 하나지만 말이다.)

한남동 슈퍼에서 발견한 안 살 수 없는 비주얼의 부라타 치즈... 페인트 통에 담겨있는 듯한 부라타가 너무 귀여워서 집에 돌아와 먹방을 찍었다.
자취 후 엄마한테 선물 받은 벨지오소 부라타치즈! 자취 첫 날 밤엔 식탁도, 제대로 된 식기도 없었지만 부라타 치즈를 꺼내 토마토랑 바게트 빵을 곁들여 먹었다. 치즈에 진심이다.

나의 부라타 치즈 사랑은 자취 후 더 증폭된 것 같다. 다른 치즈에 비해 더 비싸고 유통기한도 길지 않아 열심히 먹어야 하고 많이 먹기엔 비용이 다소 부담될 수 있지만 엄마가 매번 부라타 치즈를 선사해주시는(?) 덕분에 감사한 마음으로 다짐하며 부라타 치즈를 맛있게 먹고 있다. 샐러드랑 먹어도 맛있고, 그냥 올리브랑 토마토를 곁들여 먹어도 정말 맛있다. “맛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진심이다. 부라타 치즈는 정말 맛있다.

여유있는 주말 아침, 먹고 싶던 잼을 전부 다 꺼내놓고 빵을 취향에 맞게 구워낸 후 부라타 치즈를 올려 먹으면 정말 기분이 좋다.
한 없이 부라타 치즈를 먹을 수 있을만큼 열심히 살아야겠다. 치즈를 양껏 먹기 위해 연구하는 삶이라니...

자주 말하고, 자주 해 먹고, 자주 자랑하다 보니 부라타 치즈에 대한 나의 사랑을 친구들도 모를 리가 없다. 얼마 전 자취를 시작한 14년 지기 친구의 집들이에선 친구가 치킨과 파스타, 그리고 부라타 치즈를 준비해줬다. (이러니 내가 널 14년 넘게 좋아했구나...) 그리고 이탤리언 음식점에 가도 부라타 치즈가 옵션이라면 꼭 주문하게 된다. 직접 사 먹는 것도 맛있지만 레스토랑 만의 소스가 더해진 메뉴라면 그 풍미가 더 깊어져 맛이 더 좋은 것 같다.

감성 넘치는 친구네 집 집들이에서 대접 받은 치킨과 파스타, 도넛, 그리고 부라타 치즈! 여기에 루꼴라와 프로슈토를 곁들이 훨씬 더 맛이 좋았다.
대전 궁동의 화덕피자 집 “누오보 나폴리”에서 주문한 “프로슈토 꼬또 부팔라” 부팔라는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모짜렐라로 물소의 우유로 만들어진 “우유의 꽃”이라고 한다.

내가 언제부터 부라타 치즈의 매력에 이토록 빠지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니 한남동 <치즈 플로>에서 시작된 것 같다. 부라타 치즈는 꽤 최근까지도 그렇게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식재료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2019년 연말 친언니랑 함께 방문했던 한남동의 <치즈 플로>에서 디너 코스를 주문해서 먹게 되었는데 복주머니를 연상시키는 부라타 치즈의 비주얼에 한 번, 그리고 칼로 잘랐을 때 톡 하고 터지는 질감에 두 번, 마지막으로 버터로 구워낸 빵과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풍미에 세 번 놀랐던 기억이 난다. 비주얼로 보면 선물 보타리를 보자기에 싸서 졸라맨 모양인데 너무 귀여워서 심쿵했다.

한남동 치즈 플로의 부라타 치즈 샐러드.

꼭 코스요리가 아니더라도 부라타 치즈 샐러드와 염소 치즈 샐러드를 주문해서 와인과 함께 마셔도 정말 완벽한 식사를 할 수 있다. 염소 치즈를 얼려 달게 절여진 배와 함께 섞어 먹는 메뉴인데 마치 구슬 아이스크림을 연상시키는 식감이다. 차갑고 고소한 맛이 배어나는 샐러드가 아이스크림과 같다!

부라타 치즈는 복이 가득 담긴 복주머니의 자태를 자랑한다.
크림치즈와 얼린 염소치즈와 배를 곁들인 샐러드
치즈 맛집 답게 마스카포네 치즈로 만든 티라미수가 정말 맛이 좋았다.

치즈는 그 다양함이 압도적이라 진입장벽이 높은 듯하면서도 일상생활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치즈도 많아서 좋은 것 같다. 사실 국내에선 맛있고 제대로 된(?) 치즈를 쉽게 구할 수도 없고 값이 비싸서 아쉬운 감이 있는데 더 다양하고 “익스트림 (extreme)”한 치즈에 대한 궁금증은 유튜브로 풀어가고 있다. 유튜브 채널 중 좋아하는 채널인 영국 남자의 두 번째 채널 “JOLLY”에서 가장 냄새가 지독한 치즈 리뷰 영상을 만들었는데 영국인 특유의 장황하지만 위트 있고 격식 있지만 장난기 가득한 리뷰 영상을 재밌게 감상할 수 있었다. 영상을 보고 있기만 해도 치즈의 발 냄새(?)가 맡아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아직까진 냄새난다고 표현되는 치즈 중엔 “블루치즈”만 먹어봤는데 (물론 반감 없이 맛있게 먹긴 했다) 기회가 된다면 해외여행 중 맛볼 수 있는 “익스트림”치즈와 와인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JOLLY 채널의 치즈 리뷰 영상. 올리의 재치와 올리 아버님 헨리의 신사적 표현이 너무 재밌다! (출처: Jolly (Youtube))

영양가도 풍부하고 맛도 좋지만 알면 알수록 더 알아갈게 많다는 점이 치즈 세계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연구와도 비슷하군...) 익숙하지만 신비롭고, 미묘하지만 차이가 확실히 느껴지는 다양한 종류의 치즈를 더 많이, 그리도 더 자주 (내 뱃살 눈 감아) 느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나는 일상에서 섬세함을 연습할 수 있는 치즈가 정말 좋다. 체지방 걱정은 나중에 하고, 치즈만큼은 실컷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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