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대학원생은 행복하면 안 되나요?

대학원생이어도 인생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잖아요

by 성급한뭉클쟁이

글을 너무 오랜만에 쓰는 느낌적 느낌. 그만큼 일상생활의 본진에서 굉장히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석사과정 동안 준비한 연구 내용을 정리해서 여러 저널에 (Journal) 논문 투고를 준비한 지 벌써 4개월 정도 지났는데 아직 좋은 소식은 없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생각보다 서운하지 않다는 점? 대학원 입학 후 오랜 시간 동안 진로 고민을 겪으면서 내가 하는 ‘일’ 그 자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detached) 그저 매일매일 성실하게 살아가자고 다짐했었는데 생각해보면 내가 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 일희일비하는 롤러코스터 같은 생활보다는 지금이 더 좋은 것 같다. 오히려 더 건강하고, 다양한 종류의(?) 자아를 돌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어찌 되었든 굉장히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수십 번 오탈자 검사 후 논문을 투고하고 나면 기다림의 시간이 찾아온다. 물론 그동안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기다리는 시간에도 추가로 요청될 실험이나 후속 연구 주제를 구상하기 위한 논문 공부, 그리고 학술지에 논문을 발행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동료 심사 (peer review) 과정에서 예상되는 비판 (criticism)에 대한 방어 (defense) 준비를 해야 한다. 또는 쿨하게(?) 본인 논문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추가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는 포부를 밝혀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학술지 편집장 입장에서 내 논문을 받아줄 기미를 발견하고 재고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수차례는 아니지만 논문 투고 과정을 거치며 느낀 건 아무리 새로운 과학지식을 만들어내는 학술분야라고 해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서로 최대한 예의를 지키며 연구자의 양심에 찔리지 않도록, 각자의 이해관계를 조심스럽지만 자신감 있게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나중에 논문이 accept 되어 발행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 이 과정에 대해서 더 자세히 써봐야지.)


그리고 예상 가능하듯이 추가 실험이 굉장히 많이 생겼다. 동료 심사 및 피드백을 읽다 보면 나 역시 미처 생각지 못했던 내 논문의 부족한 점이 속속히 드러나곤 하는데 생명공학 연구를 하고 있는 필자의 연구 내용에서는 생체내 실험 결과가 부족하다는 피드백을 받아 교외 대학병원 연구실과 협업하여 추가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것 때문에 컨디션도 안 좋은데 서울 출장을 다녀오는 등 몸이 고생을 좀 했는데 덕분에(?) 일주일은 금방 갔지만 그만큼 주말에 더 살펴봐야 할 일이 생기기도 했다. 잔병치레와 실험 출장, 주말 아침 도착해있는 지도교수님 이메일과 집밥의 빈도가 줄어가는 요즘 본인 생활을 돌아보니, 이제야(!) 비로소(!) ‘찐’ 대학원생이 된 건가 싶기도 한다. 이제야말로 본격적으로 부릉부릉 시동 걸고 있는 시기다.


많이 바빴고, 앞으로도 여름휴가 계획은 세우기 어려울 만큼 바쁠 예정이지만 그렇다고 한들 내 에너지의 100%를 연구에 쏟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라는 사람은 “대학원생”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될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 (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것은 오랜 시간 내가 갖고 있는 진심 담긴 가치관이다.) 일이 바쁘기 때문에, 시간을 더 쏟으면 더 빨리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하루 종일 연구실 일을 붙잡고 스트레스에 힘겨운 일상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굉장히 자기 방어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충분히 집중하며 지내고 있고, 무엇보다 그게 나라는 사람과 맞는 대학원 생활방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얼마 전부터 본격적으로 박사과정을 시작한 만큼 나 역시 절대적인 연구 시간을 좀 더 늘리고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대학원 생활도 결국엔 다 습관 싸움이기 때문에 연구생활 습관 성형(!)을 시도하고 있는 것인데 첫 번째 시도는 “연구 타이머”다. 학부생 때 교양 분관이나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면 스톱워치를 갖고 다니면서 공부하는 친구들을 종종 마주할 때가 있었다. 시간 싸움 유형인 시험을 준비하나 싶어서 그 용도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고3 수험생 때부터 요긴하게 사용해오던 “스터디 타이머”라고 했다. 폰 보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친구랑 잠깐 수다 떠는 시간을 제외하고 본인이 절대적으로 “공부”에 몰입하는 시간이 얼만큼인지 측정해보고 이에 따라 공부량을 조정하며 더 현실적이거나 공격적인 공부 계획을 세워 준수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당시엔 “와 빡세다”라고 생각을 하고 넘겼는데 요즘엔 나도 연구실에서 “연구 타이머”를 사용해보고 있다. 어차피 생물공학 분야에서는 시간 준수가 정말 중요한 실험이 많아 개인당 스톱워치를 사용하고 있어서 이를 사용하고 있는데 출근 시간부터 타이머를 시작해서 내가 실험하는 시간, 논문 공부를 하는 시간 등을 측정한다. 점심시간이나 중간 커피타임 등을 제외하고 말이다. 직접 측정해보고 나니 충격이 꽤 컸는데 하루 기본 “노동시간”이라고 일컬어지는 8시간이 생각보다 꽤 긴 시간이며 채우기 어렵다는 깨달음도 있었고, 약간의 자기반성을 경험하기도 했다, 더 열심히 연구실에 붙어 있어야겠다고 말이다.

“연구 타이머”를 사용하고 있는 요즘! 기본 7-8시간은 찍고 퇴근하면 그 날은 뿌듯하기도 하고 :) 오른쪽은 약간의 치트키로(?) 랩세미나가 있는 출근 날이었다

두 번째 노력은 핸드폰 스크린 타임 줄이기다. 이건 현대인이라면 모두가 겪고 있는 딜레마겠지만, 나는 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게 너무너무 싫음에도 너무 많은 시간을 화면만 주시하며 보내게 된다. 스크린 타임을 측정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리포트를 받을 수 있도록 설정해둔 게 무색할 정도로 정말 어마하게 긴 시간을 핸드폰을 보면서 보내게 되는데 이걸 꼭 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지도 교수님께 연락이 올 수도 있으니까” 핸드폰을 곁에 둔다는 건 핑계고... 메신저로 친구들이나 가족과 이야기하다 보면 또 재밌는 기사를 접하게 되고, 읽다 보면 인터넷 브라우징을 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또 사고 싶은 물건이 보이고 생각나고, 결국 네이버 쇼핑, 쿠팡 등으로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 정신 차리고 다시 집중해야 하지 하다 보면 인스타그램에서 정말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던 연예인 컴백 소식부터 다이어트 전략, 나라별 귀여운 아기와 동물 영상까지... 물론 흐뭇하게 보고 있지만 정신 차려보면 “내가 애초에 왜 이걸 보고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 삶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느낌이랄까. 그래서 폰을 실험대에 두거나 가방 속에 넣어두는 등 스크린 타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가하고 있는데 역시 쉽지 않다. 스마트폰 중독이 심각하게 의심되는 부분이다.


또 하나의 노력은 아침 시간에 논문 읽기다. 첫 번째 노력에서 이야기했듯이 “연구 타이머”를 사용하다 보니 연구실에 출근해 있는 1분 1초가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리고 나는 극심한 아침형 인간이기 때문에 점심시간 전까지의 집중력을 오후나 저녁시간에 따라 할 수가 없다. 문득 그 시간의 에너지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머리가 가장 잘 돌아가는 시간에 실험 노동을 하는 일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정말 급한 실험이 아니라면 오후에 점심 먹고 졸릴 때쯤 하거나, 일주일의 열정과 텐션이 모두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칠 때쯤 실험을 몰아서 한다. 주말 전에 데이터 정리를 하며 다음 주 실험 계획도 세우고, 어차피 우리 연구실에서는 한 달에 두 번씩 Biweekly 리포트를 제출해서 교수님과 데이터 미팅을 갖기 때문에 계획적인 실험실 생활을 하기에도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앞으로는 읽었던 논문을 다시 한번 읽어서 놓쳤던 부분을 발견하거나 이제는 “상식”이라고 여길만한 논문 지식을 이 머리에 쌓여 작지만 소중한 데이터 베이스를 만들고 싶은데 이건 좀 더 시간을 투자하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훌륭한 박사님이 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슬슬 또 생활에 규율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다섯 시간 동안 원고를 쓰고 남은 시간엔 요리를 해 먹고 러닝을 하고 와인이나 위스키를 즐기고 저녁 무렵엔 소설을 읽으며 재즈 음악을 듣는 규칙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나 역시 조금씩 습관을 만들어가다 보면 좋은 연구자로 성장해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하게 된다. (훌륭한 최애 작가를 만나는 일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여러분.)

묵직한 빵대신 건강한 아침을 챙겨먹는 요즘. 통상적인 점심시간에 맞춰 배꼽시계가 울리려면 샐러드식 아침도 좋은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 플레이팅에 진심인 사람 나야나…!
대학원생이지만 평균 7시간 반 정도의 수면 시간을 유지하고 있다. 7시쯤 일어나거 스트레칭도 하고 이르면 8시에서 8시 반 사이에 출근하는데 고요한 연구실 분위기가 너무 좋다.

나도 항상 내 나름의 노력을 하며 열심히 지내고 있어서 그런지, 가끔씩 “대학원생 치고” 내 삶이 편안해 보인다고, 배부른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면 기분이... 정말... 좋지 않다. 내가 떳떳하기 때문에 넘겨 들을 수도 있지만 겉으로 봤을 때 시간이 많아 보이고 어느 정도 취미 생활을 갖고 있는 내 라이프 스타일을 보며 쉽게 던지는 말이지만, 그래도 신경이 안 쓰일 수 없다. 박사과정에 입학하면 취미로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아직 책을 읽고 있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라는 조언이나, 집에서 밥을 지어먹을 시간이 있냐는 질문은 전혀 반갑지 않다. 내 나름 일의 균형을 고려하며 재밌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거라고요! 나는 취미로는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고, 아직도 좋은 책을 만났을 때의 설렘에 감사하며 건강을 위해선 스트레칭과 요가, 그리고 최근엔 플라잉 요가를 시작해서 매주 세 번씩 운동을 다니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은 날엔 몸을 쓰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다는 옛말엔 틀린 게 하나도 없다. 해먹에 거꾸로 매달려 복근 운동을 하거나 따라 하려야 따라 할 수가 없는 선생님의 우아한 몸동작을 보고 있으면 자괴감과 오기가 동시에 생겨 평소의 근심들을 말끔히 잊게 된다. 그리고 난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친구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 대화 나누는 일을 정말 좋아하는데 이 역시 결코 “시간 낭비”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과학에서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데!?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풀고 해결하려면 다양한 경험 후 모인 사람들이 열심히 토론하여 다양한 시각으로부터 문제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근시적으로 상황을 판단한다면 다양성의 중요성을 간과할 위험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연구 “도” 잘하는 박사가 되고 싶은 게 나의 꿈이다.

(부끄럽고 실례가 될까 해서 해먹 사진만 찍었지만) 플라잉요가 너무 재밌다. 코어 근육을 단련해서 더 우아하게 줄을 타고 싶다는 목표도 생기고, 멍도 들고 팔도 아프지만 재밌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대학원생의 기본 값은 불행”이라는 뉘앙스의 발언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갖고 있다. 물론 나 역시 100% 열정과 온 마음을 다해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인생에서 짧지 않은 부분을 차지할 대학원 생활 동안 모두가 의미 있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불행으로 낭비되는 청춘이 너무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더욱 행복하려고 노력해야지.) 대학원 생활은 마라톤과 같지 않은가. 명확한 ‘마일스톤 (milestone)’은 없지만 그래도 긴 시간을 잘 이겨내고 “박사”라는 “나비”로 변태 하려면 중간에 물도 몇 모금 마시고, 주변 참가자들과 천천히 페이스를 조절하며 대화도 나누고, 뛰면서 경치도 감상하는 편이 이 생활에 쉽게 지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지혜로운 생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공유하고 싶은 나의 습관 개선 노력 중 하나는 바로 ‘콜드 메일 (cold mail)’을 보내는 일이다. 명확한 사전적 정의가 없지만 ‘콜드 메일’은 이전 교류나 연고가 없는 상황에서 본인을 소개하며 도움이나 조언을 얻고 싶을 때 연락을 취하는 메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작년에도 해외 대학이나 기업체에 있는 선배님들께 콜드 메일을 보내며 많은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많이 받았었는데 올해는 이후 포닥 (post-doctoral) 프로그램으로 연구를 하러 가고 싶거나, 비슷한 분야에서 연구실을 꾸려가고 계신 연구자, 교수님들께 연락을 드려보고 있다. 감사하게도 팬데믹 덕분인지(?) 다들 집이나 사무실에서 흔쾌히 영상통화를 제안해주시곤 하는데 나에게 동기부여를 주기에 가장 효과 좋은 방법을 마련한 것 같다. 비슷한 상황 속에서 넘쳐나는 유대감과 나도 저런 모습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존경심, 그리고 인생관을 공유할 때의 그 뭉클한 대화들이 내가 앞으로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가장 최근에 얻은 조언 중에는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연구자가 될 수 있다는 조언이었다. 너무 먼 미래를 예측하며 절대적인 계획을 세워두고 연구실 생활을 하기에도 어려움이 따를 것이고, 그저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며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이자 연구자로 성장하려는 목표가 가장 이상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은 팀 스포트 (team sports)처럼 혼자 할 수 있는 게 극히 적기 때문에 그저 다양한 경험에 본인을 노출시키며 폭넓은 견해와 재주 (skill set)을 얻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다.


무엇보다 언젠가는 이루게 될 나의 “덕업 일치” 꿈을 위해 - “덕질과 직업이 일치했다”는 의미로서 자신의 관심사를 직업으로 삼았다는 의미이다 - 항상 나의 고유한 매력이자 장점들을 살릴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연구에만 몰두하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것들, 좋아할 만한 것들 등 새로 맞이하게 될 다양한 기회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내 삶을 채우고 주어진 환경에서 끊임없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지혜로운 박사과정생으로 성장하고 싶다. 이제야 시작했지만 박사 졸업 후가 더더욱 기대된다.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내가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 어디서 살게 될지, 그리고 누구와 함께 살게 될지 미리 내다볼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내가 나를 믿고, 내가 나답게 사는 인생이 중요한 것 같다. 인생은 마라톤이니까!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오래오래 잘 달릴 수 있는 마라토너와도 같은 행복한 대학원생이 되어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정(情)의 부재 속 넘쳐나는 억울한 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