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외식 - (어쩌다 보니) 대전 파스타 맛집 총정리
평소에 영양 균형이 훌륭한 ‘클린 한’ 식사를 좋아해서 별 탈이 없이 잘 지내고 있었는데 지난 주말엔 예상치 못한 급성 장염으로 고생을 했다. 자취하면서 혼자 아프면 서럽다는 말은 익히 들어왔는데 이렇게 몸소 깨닫게 될 줄이야...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고민해봤는데 확실히 이번 달엔 바쁘다는 이유로 “밥식”보단 “빵식”이 잦았고,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평소에 지도 어플에만 저장해뒀던 맛집에서 외식을 자주 했다. 사진첩을 들춰보니 아무리 파스타를 좋아하는 나라지만, 이렇게까지 이탤리언 비스트로만 찾아다녔을 줄이야 하고 다소 놀라기도 했다. 사진으로 남겨두었더니 이제야 반성 모드로 접어들었고, 앞으로는 유지방이 너무 많이 들어간 밀가루 음식은 피해야겠다는 어려운 다짐을 하게 됐다.
그래도 예쁘게 담긴 파스타 사진이 아쉽기도 하고, 나름 당시에는 맛있게 먹은 음식이니 몇 군데 기록해두고 싶어서 이번 글을 쓰게 됐다. 먼저 이번 달 (6월) 외식 장소 중 대전의 파스타집 몇 군데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대전 탄방동에 위치한 ‘스웨이 (Sway Artisan Bistro)’다. 오래 알고 지냈지만 자주는 보기 어려웠던 친구가 석사 졸업 후 미국으로 박사 유학을 가게 되었다 해서 축하도 해주고 근황도 따라잡을 겸 저녁 약속을 잡게 되었다. 올해부터 차가 생긴 이후로는 자처해서 운전기사 역할을 도맡고 있는데 막힌 시간을 피했더니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생활양식에 있어서 철저한 사전 계획을 중요시하는 ‘판단형 (J)’라 습관처럼 음식점 예약을 해뒀는데 알고 보니 예약 우선 매장이었다. (이미 꽉 차있었어서 그냥 갔으면 헛수고할 뻔... 이래서 주변의 J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물론 나 포함해서 말이다.) 도착해서 주문한 음식은 “트러플 크림소스와 감자 뇨끼” 그리고 “4가지 치즈를 이용한 라비올리”다. 메뉴를 내어주실 때 재료 설명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 등 친절하게 안내해주셔서 감사했다. 라비올리랑 뇨끼는 집에서 만들어 먹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서 외식할 때 자주 시도해보는 메뉴인데 쉽게 생각해서 라비올리는 “이탈리아 물만두”고 뇨끼는 “이탈리아 감자 수제비”라고 생각하면 딱 비유가 맞아떨어질 것 같다. 쫀득한 식감도 맛있고, 하나는 크림, 다른 하나는 토마토 베이스 소스로 균형 있게 시킨 메뉴가 조화로웠다. 대부분의 외식이 그렇듯 간이 세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메뉴의 풍미가 느껴져 맛있게 먹었다.
두 번째 파스타 집은 대전 도룡동에 위치하고 있는 “플랙스 다이너 (Flex Diner)”다. 여기도 내추럴 와인과 파스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인데 역시나 차를 갖고 가서 알코올은 어쩔 수가 없었다. 와인바에서 친구들과 편하게 즐길 수 있으려면 여러모로 돈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우선 와인은 다른 주종에 비해 비싸기도 하고, 와인바에선 안주도 양으로 승부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고, 무엇보다 차를 갖고 가려면 대리운전을 부르거나 또는 택시비를 감수해야 한다. 이렇게 또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다짐을 이상하게(?) 하게 된다. “이탈리안 토마토 치즈 볶음밥 튀김”으로 이해하고 있는 “아란치니 (aranchini)”를 굉장히 좋아해서 궁금했지만 함께 간 일행이 아보카도 찐 팬인 바람에 “아보카도 무스와 토마토 세비체” 그리고 파스타는 생면 “라구 파스타 & 수란”과 “초리조 까르보나라”를 주문했다. “초리조 (chorizo)”는 돼지고기와 파프리카를 넣고 만든 소시지 종류인데 베이컨보다는 덜 짜고 도톰하게 조리되어 씹는 맛이 아주 좋다. 난 계란 노른자 특유의 비린 맛을 아주 좋아하고 펜네 (penne) 또는 리가토니 (rigatoni)와 같이 속이 비어있거나 페투치니 (fettuccine)처럼 굵은 파스타 면을 좋아하는데 둘 다 맛볼 수 있어서 식감이 참 좋았다. 꾸덕한 크림소스는 말할 것도 없고, 라구 소스 위에 올라간 수란을 터트려 먹으니 금상첨화였다! (쓰다 보니 또 배고파지는 군...)
세 번째 파스타 맛집은 대전 갈마동의 “무드 (Mood)”다. 금요일 점심시간에 라자냐 맛집으로 유명한 무드에 방문했다. 여기는 딱 네 종류의 파스타에만 집중해서 판매하고 있는데 1) 라자냐 2) 푸타네스카 3) 카치오에 페페 그리고 4) 비스큐 새우 파스타 중 라자냐와 비스큐 새우 파스타를 주문해서 먹었다. 비스큐 소스는 새우과 같은 갑각류 껍질을 그대로 푹 우려내어 만든 소스라고 했는데 확실히 새우의 고소한 맛이 강한 파스타였다. 라자냐도 위에 얹어있는 하얀 크림소스가 궁금했지만 역시나 전통에 충실한 볼로네제 소스가 밑에 숨어있었다. 가격도 13,000원에서 15,000원대라 아주 비싼 편은 아닌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양이다. 나도 외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과식하게 되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라자냐 사이즈가 너무 작았다. 너무 맛있어서 아쉬웠어요 사장님...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라고 하면 대전 어은동의 “비스트로 퍼블릭”이 생각나지만 아쉽게도 6월엔 간 적이 없으니 우선 제외하자면) 대전의 파스타 맛집은 신성동의 “음식 있는 풍경”이다. 음식점 이름부터 벌써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가? 음식 있는 풍경은 다른 음식점과는 다르게 굉장히 조용한 동네의 초등학교 근처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교수님들께서 회식으로 자주 가신다고 하는데 나 역시 처음으로 “음식 있는 풍경”을 알게 된 건 조교로 일하고 있는 교양과목 교수님께서 회식으로 데려가 주셨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가 대전에 방문하실 때나 (엄카 찬스!) 언니가 대전에 놀러 올 때 (상품권 찬스!) 큰 맘먹고 꼭 들리게 되는 파스타 레스토랑이다. 왜 큰 맘을 먹냐 하면 파스타를 코스요리로 먹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단품으로도 판매하시지만 결국 스타터인 아란치니와 버섯 수란, 시저 샐러드도 꼭 먹고 싶고, 여기 레스토랑의 가장 큰 유종의 미인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고급 올리브 오일과 함께 곁들여 먹을 수 있다. 너무 맛있어... 꼭 파스타 코스가 아니더라도 통 우럭구이나 농어구이를 먹을 수도 있지만 평소에는 파스타 한 그릇에 집중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무려 한우 채끝 스테이트를 맛볼 수 있었다! 양은 정말 아쉬웠지만 그만큼 소중한 재료라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꼭 파스타가 아니더라도 코스요리를 좋아하는 편인데 너무 급하게 먹지 않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나름 요리사님께서 하나의 여정 (Journey)를 계획해서 여행에 다녀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평소에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있으면 먹는 속도가 너무 빨라지는 안 좋은 습관이 있는데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된 것 같아 더 마음 편하게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도 있다. 여기서도 아란치니는 기본으로 꼭 같이 먹었고 파스타는 라비올리와 트러플 파스타를 선택했다. 면까지 두꺼운 페투치니 면에 꾸덕한 노른자의 맛이 느껴지는 트러플 파스타가 너무 맛있다.
그렇게 꾸덕하고 기름기 넘치는 소스에 버무린 밀가루 요리를 실컷 먹다 보니 속에 탈이 나고 말았나 보다. 더 이상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양껏 즐길 수 없는 몸이 된 것인가. (벌써?!) 그래도 맛있는 음식을 두고 마주하여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식사는 정말 소중한 것 같다. 사실 이번 파스타 레스토랑 “소개 글”도 제목에 “맛집”이라고 쓰고 강하게 추천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지만 “맛집”이라는 개념 자체가 굉장히 주관적이기도 하고, 그 음식점에서의 경험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에 무조건 추천하기도 어려운 것 같다. 그저 “내가 가봤을 때 좋았다” 정도? 물론 나도 강하게 추천할 수 있는 한 가지 기준이 있긴 한데 그것은 바로 “재방문 의사”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와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고 뭉클한 대화를 나눴음에도 가성비가 아쉽거나, 다시 가기엔 뭔가 아쉬운 부분이 남아있다면 굳이 다시 찾아가진 않는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내 기준도 꽤나 엄격한 편이다.) 그래서 좀 더 첨언을 하자면 위에 나와있는 네 곳의 파스타 레스토랑 중 “음식 있는 풍경”에만 재방문 경험이 여러 차례 된다. 지난 2년 동안 다섯-여섯 번 정도는 방문해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온 것 같다.
소위 말하는 “맛집”에서의 경험을 좌지우지하는 요소가 정말 많다고 했는데 그중 가장 큰 요소는 바로 “누구와 함께 했는가”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아무리 맛있는 음식점이어도 정말 별로인 대화 상대와 함께라면 맛이 없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을 뿐. 그에 반해 아무리 흔한 샌드위치 가게에서 포장해온 빵에 우유를 마시는 상황이더라도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 시간은 즐거울 수밖에 없다. 모든지 균형이 중요하긴 한데 그래서 서로 아끼는 사이일수록 함께 나눠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점을 모색하는 것이고, 그렇게 분위기와 맛이 좋은 음식점에 가야 더 기분 좋은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괜히 친하다는 이유로 “아무데서나 먹자”라고 하면 기분이 상할 수도 있고 말이다. 최근에 읽고 있는 임홍택 작가님의 <90년생이 온다>에서는 “우리는 더 이상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 식사를 하지 않는다. 무엇을 먹어서 즐거울지가 중요한 것이다”라고 90년 대생들의 “식습관”을 묘사했다. 건강하고 맛있게 먹는 한 끼는 중요하다 - 그래서 우리는 함께 하고 싶은 “식사 파트너”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맛집도 너무 좋지만 그래도 장염까지 앓으며 고생을 했으니 당분간은 좀 더 건강하게 챙겨 먹을 계획이다. 어차피 평소에는 바쁘기도 하고, 당분간은 “찐친”들을 만나 양해를 구하고 구수한 집밥을 챙겨 먹을 계획이다. 당장 오늘 저녁엔 또 한 번 친구를 집으로 초대했다. 이번 주 내내 야근도 잦고 피곤해 보이는 친구를 위해 건강한 한 끼를 만들어주려고 한다. 계획하고 있는 메뉴는 다양한 야채볶음과 덮밥 종류 정도? 외식이든 집밥이든 같이 밥 먹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재밌고 함께 할 때 기분 좋은 그런 사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