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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급한뭉클쟁이 Jul 24. 2021

전국 대학원생 최대 고민: 박사과정 연구 주제 정하기

I’m on the “Next Research” — 다음 연구 뭐하지

한참 잘 지내다가 요즘 다시 잠이 안 온다. 감히 예상컨대 잠을 잘 못 자겠는 이유는 바로 연구 스트레스 때문이다. 맙소사… 내가 연구 생각에 잠을 잘 못 자는 날이 오다니… 분명 일에서 마음을 멀리하고 분리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박사과정 시작과 동시에 이렇게 되는구먼.


연구실 관련 글마다 자주 언급했지만 나는 대학원생 치고(?)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일적으로 존경하는 지도교수님의 가르침 하에 (나름) 열심히 연구를 배우고 있고, 크고 작은 연구실 스트레스야 당연히 있을 수 있지만 아직까진 무사하다. 서로 피해 주지 않고 피해받지 말자는 연구실의 사회적 문화와 (culture) 규범이 (norm) 자리 잡고 있는 덕분인 것 같다. 물론 여기에도 장단점은 존재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주변 대학원생 친구들로부터 들려오는 무시무시한(?) 연구실 문화와 비교했을 때 우리 연구실은 무리한 스케줄과 업무로 인한 강압적 출근도 없고 교수님께서 학생 개인의 일 하는 스타일과 의견을 항상 존중해주셔서 잘 지낼 수 있는 연구 환경이 마련되어있는 편이다. (TMI: 강압적 출근은 없지만 희한하게도 주말마다 연구실은 풀방이 되어있다. 역시 이곳은 대학원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가? (아 정말 본인은 예민함의 끝판왕인 케이스…) 바로 내가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하고 박사 졸업을 할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이런 고민은 흔하디 흔한, 대한민국, 아니 지구촌 모든 대학원생의 공통된 고민인데 각자 시기야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요즘 바로 이 고민 때문에 꽤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또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그런 거다. 박사과정을 시작하고 “박사”라는 타이틀의 무게감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게 되고 나니 나 역시 그 타이틀에 버금가는, 나에게 부여될 기대치에 부응하는 박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 같다. 작년에 수많은 진로의 선택지 사이에서 깊은 고민을 마치고 나서 드디어 “생명공학 박사”라는 진로를 선택하고 오히려 스스로가 자유로워졌다고 느꼈었다. 앞으로 내가 집중할 것들이 명확해지고, 내가 상상했던 몇 가지 진로의 문이 닫혔지만 새로운 문이 열리고 거기서부터 또 내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길이 펼쳐질 테니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앞으로 잘 하자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선택하고 나니 또 두려움이 몰려오는 듯하다. 끊임없는 자기 의심과 “엉덩이 힘”을 길러 내가 학자로서 잘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벌써부터 조금씩 걱정되는 마음이 생기고 말았다.


이런 걱정스러운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본인의 주특기인 ‘콜드 메일 (cold mail)’과 주변 선배들에게 자문한 결과 박사 과정 동안 그 종착지의 모습을 미리 그려보고 어떤 박사가 될 것인지, 되고 싶은지에 대해 미리 구상해보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기업에 취직하고 싶은 경우라면 기업과의 협업 프로젝트, 또는 나의 팀워크 실력을 자랑할 수 있는 공동저자 논문이나, 연구실에서의 “쓸모”와 “사회성”을 드러낼 수 있는 제2, 제3 저자 논문이 많은 프로필이 중요하다고 전해 들었다. 또는 학계에 남아 포닥 과정을 (post-doctoral) 이수하거나 연구소, 또는 대학교에서 일하고 싶은 경우엔 박사과정 동안 좋은 논문을 잘 써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조언을 받았다. “좋은 논문”이란 그 정의가 참 모호하고 다양해서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우선 통상적으로 수치적으로 판단했을 때 임팩트 팩터가 (Impact factor; 연구의 가치를 평가하는 점수로서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논문이 얼마나 많이 인용되었는가를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높은, 영향력 있는 논문을 가리킨다. 쉽게 말해 박사과정 동안 내 청춘을 갈아 넣은 나의 “킬링 포인트” 논문이 무엇인지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

요즘 실험 때문에 자주 사용하고 있는 컨포칼 현미경. 값이 거의 수도권 가정집 전세가격이라고 한다. 나도 좋은 논문 쓰고 싶은데 - 좋은 논문, 그거 어떻게 쓰는건데?

근심을 풀기 위해 선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내 마음은 오히려 더 꼬여버리고 말았다. 물론 미리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너무 희박해서 하루하루 즐기며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느끼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롭다는 건 본인도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결국 “잘하는 게” 중요한 지금의 능력주의 (meritocracy) 사회에서는 앞으로 남은 3년 반의 시간 동안 제대로 한 건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박사과정 동안 나의 연구 프로젝트를 모색하고 선택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게 되었고, 요즘은 바로 이 부담감 때문에 집중도 잘 안되고, 쉽게 피곤해지고 논문 공부도 잘 안 되는 것 같다. 나름 석사 때 했던 연구를 잘 정리해서 논문 투고를 준비 중에 있지만, 앞으로도 더 잘하고 싶다는, 이 놈의 욕심 때문에! 계속 “다음 연구는 뭐하지”라는 질문을 안고 스트레스와 싸우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주말엔 내가 분명 일과 마음을 분리하기로 결심해놓고 이토록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했는데 첫 번째 이유는 시행착오에 대한 두려움인 것 같다. 뭐든지 시간을 쏟고, 마음을 주고,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쌓이는 내공이 있어야 분위기 파악도 하고, 각도 세우고, 차근차근 알아가다가 잘하게 되는 맛이 있는데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과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있는 일에만 시간을 쓰고 싶은 욕심이 있다. 결과보단 과정에 의미를 두자고 매번 다짐해도 결국엔 결과로 평가받는 현실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참 슬픈 현실이지… 인생, 그리고 연구에서도 충분한 “탐험 (exploration)”이 중요하다는 걸 잘 알면서도 어떤 연구 주제에 대해서 공부를 시작해야 안전하고 잘 될만한 연구 주제에 손을 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이렇게 쓰면서도 과연 처음부터 이걸 알 수 있는 연구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시간적, 그리고 에너지적(?) 손해에 대한 두려움이 그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진득하게 고민하고 공부할 수 있는 나의 용기를 빼앗아 가고 있는 듯하다. 굉장히 안타까운 상황이군…


두 번째 이유는 결국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지배해서인 것 같다. 결국 그놈의 “1인분 병”에 대한 집착인데 내가 대학원 공부를 계속해도 괜찮다는 타당성을 (legitimacy) 주장하기 위해선 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앞날이 유망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자본가의 마음처럼, “대학원 공부가 끝나면 다 잘될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공부를 해내고 있는 본인은 마음을 다 잡기 참 어려운 것 같다. 내가 대학원생으로서 오랜 시간을 투자하면서 잃고 있는 다양한 기회비용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안정적인 미래에 대한 보증이 없다는 현실 때문에 대학원 생활을 평탄하게 해내기가 참 힘든 것 같다. 주변에서 나를 믿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에게도 꼭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서, “내가 정말 보답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과연 올까”라는 자기 의심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언젠가는 한 명의 “전문가”로서 학교 안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생활도 시작하고, 1인분을 해내야 할 어른으로서 당연히 병행해야 하는 미래 고민임을 알면서도 건강한 균형을 찾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이전 글에서도 여러 번 쓰고 다짐했듯이 대학원 생활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걸 너무 잘 알면서도 불안감은 항상 존재한다. 내가 잘하고 있나, 나한테 맞는 공부를 하고 있는 걸까, 더 나은 주제는 없었을까, 이대로 괜찮은 걸까. 어떤 날은 오래 잘 달리기 위해 운동도 하고, 요가 수련도 하고, 취미로 베이킹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 하하호호 스트레스를 풀지만, 어떤 날엔 내가 이렇게 즐길 자격이 있나 싶은 마음에 논문 한 편이라도 더 읽어야 하는 건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사실 많은 대학원생들을 힘들게 하는 건 연구나 논문 공부 자체보다 이런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아닐까 싶다. 박사과정까지 6년이라는 시간은 한 어린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졸업하게 되는 꽤나 긴 시간인데 이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고 건강한 멘털을 유지하는 일이 가장 도전적인 과제가 아닐까 싶다.

실험에 지치고 퇴근해도 손을 쓰고 노동을 해야 머리가 잘 비워지는 것 같아 시작한 베이킹 취미
랩장으로서(!) 연구실에 가져가 나눔도 하고 반응이 좋을 땐 기분이 좋아지는데 논문 안 읽고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도 든다… 피곤해 정말.

그래도 뭐 어쩌겠어… 하는 데까진 해봐야지… 라는 깨달음과 함께 오늘도 마음을 다스리고 카페에 와서 논문을 펼쳤다. 집에서도, 연구실에서도 읽을 수 있는 논문이지만 굳이 카페에 와야 한다, 왜냐면 다른 데서는 다른 할 일 때문에 논문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논문 공부와, 논문 내용을 수동적으로 흡수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더 비판적으로 (critical) 그리고 능동적으로 (proactive) 읽을 수 있을지가 중요한데 그만큼 시간을 좀 더 쓰고, 계속해서 연구실에서의 습관 성형을 도모하고 있는 만큼 논문 공부 시간도 차츰 늘려가야겠다. 열심히 읽고 고민하다 보면 언젠가는 훌륭한 연구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꼭 훌륭하지 않으면 어때! 해소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며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일이 쉬운 것도 아니고 말이다.

연구실 친구들이랑 번개로 올림픽 축구경기를 보며 치킨 파티를 했다. 바쁘다가도 모이면 연구실, 진로 고민, 실험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번 주는 읽고 싶던 리딩리스트 말고 무려 리뷰 논문을 꺼냈습니다. 책도 다이어리도 일부러 집에 두고간 자제력 천재 내 자신에게 박수를.

아직도 전공을 잘 선택한 걸까, “대학원 공부”가 나랑 잘 맞는 일일까 의구심을 품고 있지만… 이왕 시작한 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열심히 해보는 일 밖엔 없는 것 같다. 건강한 균형을 도모하기 위해 좀 더 노력하고, 고민보단 Go, 고민보단 논문 한 편을 더 꺼내 읽고, 실험 디자인을 한 세트 더 계획하고, 주변 동료들과 지도교수님께 대화를 신청하는 방법 밖엔 없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이런 고민에 대해 지도교수님께 살짝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래도 지금이 가장 즐길 수 있는 때가 아닐까 라는 조언을 받았다. 정해진 게 없어도 지금은 연구자로서 어떤 연구들 시도해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닌가? 어떤 논문이든 읽어볼 수 있고 나의 열정과 흥미가 닿는 대로 즐기면서 가능성을 탐색해보는 지금 이 시기가 다 끝나기 전에 더 많이 즐겨야겠다. 이 글을 빌어 미리 이 길고 험난한 길을 걸으셨던 전국의, 아니 전 세계 박사님들께 존경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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