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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ytripper Mar 28. 2016

나는 왜 늘 시간이 없을까?

아무래도 싫은 회사 1

어느 날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생각했다. "나는 왜 늘 시간이 없을까?" 입버릇처럼 "~할 시간이 없어"를 자주 말하는데, 정작 그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바가 없었다. 나의 24시간이 과연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는지 따져봤다.

출근 준비 1시간 - 출근 시간 1시간 - 근무 시간 8시간+α - 점심시간 1시간 - 퇴근 시간 1시간.

이렇게만 벌써 12시간 초과다. 하루의 반 이상이 일을 하거나, 일을 위해 준비하거나, 일을 위해 이동하는 시간에 쓰여지는 거다. 남은 시간은 11~12시간 남짓, 그 중 6~7시간 잔다고 치면 최대 5~6시간이 남는다. 그 중 저녁을 먹고, 씻는 시간을 빼면 하루에 온전하게 쓸 수 있는 내 시간은 고작해야 3-4시간. 이러니 입버릇처럼 매일 시간 없다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야근을 하게 되거나 저녁에 약속을 잡거나 디스크 치료 때문에 병원을 가게 되면 저 3-4시간도 없다.


결국 내게 주어진 시간 중 줄일 수 있는 것은 잠자는 시간 뿐이어서, 또 누구보다 '새벽형 인간'인지라 평일에도 보통 2~3시 정도에 잠자리에 들어서 7시 반 정도에 일어나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주변에 하면 그때까지 무얼하냐, 뭐하느라 그렇게 늦게 자냐고 물었다. 딱히 뭔가를 공부하거나 대단한 일을 도모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저 책을 읽거나 TV나 영화를 보거나 뭔가를 쓰면서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소모된 나를 간신히 충전시켰다.


대다수의 시간을 사람들 사이에서 일로, 관계로 부대끼며 지내기 때문에 단 한 두 시간이라도 오롯이 홀로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러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내 안에 정제되지 않은 화가 쌓였다. 출퇴근 길의 지하철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치거나 발을 밟는 것 같은 사소한 일들로 크게 분노가 일거나,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은 말들에 기분이 상하는 일들이 늘어났다. 나를 홀로둔 채 나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돌보지 않으면 그런 일들이 생겨났다. 혼자가 되어 무언가를 쓰는 시간을 가질 수 없으면 생활도 감정도 정리가 되지 않았고 모든 날들이 머무르지 않고 나를 그냥 스쳐갔다. 자연히 모든 게 소진되는 기분이 들었고 내 안에 쌓이는 것은 막연한 울분와 억울함이었다.

평일에 많아야 5시간 정도를 자다 보니, 당연히 출퇴근 시간에는 상모 공연을 펼치기 일쑤였다. 그나마도 지하철에 앉을 자리가 나야 가능한 이야기다. 피로도가 극에 달했을 때에는 손잡이를 잡고 졸다가 무릎을 꺾는, 의도치 않은 각기 공연도 펼쳤다. 회사에 도착해서는 자연스레 아침마다 커피를 찾았고, 점심 식사 후에도 커피를 찾지 않는 날은 드물었다. 그렇게 평일을 보내고 주말이 돌아오면 평일에 못 잔 잠을 15~16시간씩 몰아서 잤다. 말 그대로 자다 보면 하루가 다 지나갔고 한 일 없이 허무하게 일요일 밤이 또 다시 되돌아왔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금쪽같은 주말을 보냈다는 후회로 쉬이 잠들지 못했고 3시가 훌쩍 넘어서 자는 일이 다반사였다. 덕분에 월요일마다 남들보다 두 배로 무거운 피로곰을 업고 다녀야했고. 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얼-호아아아아아-수우우우-모오옥-금-퇼의 한 주는 지지리도 느리게 지나갔지만 한 달은 뚝딱 하고 지나갔다.

계절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지금 밖에서는 어떤 꽃이 피는지, 오전 열한 시의 햇빛과 오후 네 시의 햇빛은 어떻게 다른지,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어떻게 죽어가거나 고통받고 있는지, 내가 가보지 못한 수많은 도시들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는지, 내 몸과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나날들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을 날들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었다. 문득, 참 억울하고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젊은 날들은 너무도 짧을 것인데, 내 안에 담고 싶은 것들을 멀리에 둔 채 콘크리트 건물 안의 좁디 좁은 책상에서 보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젊은 날들을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이.

일을 하며 돈을 벌고 그것으로 소비를 하고 뜻있는 일에 쓰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것과 맞바꾸어야 하는 기회비용들이 자꾸만 밟혔다. 나의 시간을 바친 대가로 얻는 돈이 빼앗긴 시간에 대한 보상치고는 턱없이 헐했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닌 일을 하면서 시간을 빼앗길 거라면 차라리 더 적게 벌더라도 더 많은 시간을 소유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내 시간의 주인을 타인에게서 나로 되찾아 오는 일. 내게 맞지 않는 세상의, 남들의 속도로 살지 않고 나 고유의 리듬과 속도로 사는 일. 퇴사는 회사로부터 내 시간을 되찾아 오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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