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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Sep 24. 2022

참신하고 신선한 여성 청춘 서사 영화 <둠둠>


▲ 영화 <둠둠> 공식 포스터. ⓒ 영화사 진진


우선 포스터에 반했다. 근래들어 본 한국영화 포스터 중에 가장 강렬했다. 헤드폰을 낀 여성 주변을 감싼 붉은 조명의 분위기가 묘하게 조화로웠고, 둠둠이란 알파벳 표기 제목 자체로 어떤 리듬감을 생성해내고 있었다. 심지어 '네온'의 기운을 먹은 폰트마저 신선했다.


'나아갈 거야 나만의 리듬'으로 라는 카피는 주인공의 직업이나 소재가 DJ와 디제잉이 아닐까 하는 간결한 상상을 품게 했다. 그리하여 다시 주인공의 얼굴로 시선이 가 닿았다. 90도로 인물을 회전시켜 놓은 것도 모자라 시선처리마저 왼쪽을 향하고 있었다(가로 포스터 또한 인물과 폰트 처리를 정반대로 뒤바꿔 일치감을 주고 있었다).


지난 15일 개봉한 영화 <둠둠>의 첫인상이다. 알고보니, 2019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피치&캐치 메가박스 우수상을 수상한 이래 2021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이어 올해 무주산골영화제와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 초청된 화제작이었다. 파리에서 유학하고 단편 <벨빌>(2016)로 주목받은 정원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었다.


다행이었다. 범상치 않은 청춘영화와 여성서사의 출현을 예감케한 감각적인 포스터가 줬던 감흥을 본편 또한 저버리지 않았다. <둠둠>은 '자신에게 집착하는 엄마 때문에 전부였던 음악을 놓아버린 DJ 이나'라는 인물의 배경을 모르고 봐도 상관없이 좋은 흡인력을 자랑하는 수작이었다.


신선한 설정들


한때 한국 독립·청춘영화의 반복된 정형성과 그로 인한 지겨움을 토로하곤 했다. 가난하고 비루하며 전망이 부재한 청춘의 일상극, 그 속에서 연출되는 지리멸렬함. 창작을 하는 청춘들이 다수 등장하기도 하거니와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인디 밴드 멤버거나 영화 연출 지망생이라는 설정. 아직 꽃피어나지 않은 예술적 감수성과 순수한 영혼의 동일시, 그와 반대로 가족이나 세상과 적대하는 설정을 통한 사회와의 불화 등등.


2010년대 중반까지 주류를 이룬 독립·청춘영화 속 이러한 설정들이 반복되면서 피로감을 양산해왔다는 것이 독립영화계의 중론이었다. 저예산으로 만들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이라는 두둔부터 상상력과 독창성의 빈곤이라는 뼈아픈 지적까지. 그럼에도 다 유효한 때가, 적절한 환경이 요구되는 법이다. 마이너한 감성 자체가 저항이라 여겨지던 시절은 이제 없다.


2022년 당도한 <둠둠>은 담담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왜 2020년인지를 영화 전편이 웅변하는 듯한 영화다. 먼저 음악. 주인공 이나(김용지)가 매료되고 디제잉하고 싶은 음악은 돈벌이가 되는 힙합이나 EDM이 아닌 테크노다. 감독은 이 테크노가 "그 음악을 듣는 어떤 리스너가 어쨌든 주체자가 돼서 음악을 느끼고 자신의 어떤 철학적인 주제까지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장르"라고 설명한다.


그런 일렉트로닉 테크노를 고집하는 이나에게 유혹도, 갈등도 따른다. 잠시 디제잉과 떨어졌던 이나는 어떻게든 자신이 음악을 할 수 있는 길을 유연하지만 우직하게 찾아 나선다. <둠둠>은 이러한 홀로서기가 서사의 주를 이루는 동시에 청춘과 성장이란 주제에 나름의 '철학'을 새겨 넣는다. '일로 만난 사이'인 또 다른 DJ 준석(박종환)이나 민기(박준엽)과의 관계나 이로 인한 서사의 발전 또한 익숙할지언정 모나지 않는다.


다음은 이나에게 집착하는 엄마 신애(윤유선)와의 갈등과 반목, 그리고 화해. 부모와의 갈등은 청춘영화의 단골 소재가 맞다. 대개 폭압적인 가부장이나 주인공의 욕망이나 꿈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와의 갈등으로 비춰지기 마련이다.


<둠둠>은 여기서도 한뼘 비켜서 있다. 남편을 잃고 딸과의 안정적인 삶에 집착하는 기독교인인 엄마 신애는 마음이 아픈 일종의 환자다. 끊임없이 걱정하고 공포에 휩싸인 채 두려워한다. 실체 없는 공포요 두려움이다.


이 환자와의 일상이 버겁지만 이나는 도망치거나 회피하려 하지 않고 어떻게든 그 갈등을 맞서려고 안간힘을 쓴다. <둠둠>은 손쉬운 선택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 이 위태로운 모녀의 관계를 극단으로 밀어 넣지 않는 것이다. 그 대신 끊임없이 미래를 모색하고 방향을 고민한다. 정 감독이 침착하고 건강하며 신중하고 사려 깊은 이나 캐릭터를 창조해냈기 때문에 가능한 연출이다.


참신하고 온정적인 여성 청춘 서사

   

▲ 영화 <둠둠>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자신이 낳은 아이를 신애 몰래 위탁모에게 맡긴 비혼모라는 설정. 꿈꾸기도 벅찬 나이인 이나는 아이를 버리지 않고 입양을 보내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그것이 위선적이거나 철없이 보이지 않는 것은 이나 본인이 그 현실의 무게를 잘 인식하고 있어서다.


그런 이나의 현실을 비스듬히 반영하는 거울상이 바로 태국인 카니타다. 신애와 같은 교회에 다니며 봉사를 하는 카니타는 "교회 사람들은 정말 순진하고, 착해요"라는 듣기 좋은 말 뒤로 교회가 자신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인이나 이주노동자를 타자화해온 기존 상업적인 콘텐츠들과는 완전히 다른 묘사다.


아이를 제 품에 품을 수 없는 젊은 모성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하는 두 사람을 마주하게 하는 것만으로 <둠둠>은 꽤나 차별화된 시선을 자랑하는데, 그 카니카가 신애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의미심장하다.


그건 결국 이 참신하고 온정적인 여성 서사가 비혼모를 중심으로 한 삼대의 결합을 모색하는 데 있어 기성 세대의 변화는 물론 청춘들의 인식 역시 스스로 성찰할 대목이 없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중충의 텍스트를 제공하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세대 간 대결이나 극복이 아닌 모색이란 표현을 쓴 건 그래서다.


이러한 서사의 결들을 제쳐두고라도 <둠둠>은 매력적이다. 하나는 정 감독이 맨처음 음악영화로부터 출발했다고 밝혔다시피 서사에 착착 감기는 일렉트로닉 테크노의 정서가 주는 신선한 기운이다.


또 하나만 더 꼽자면, 주연인 김용지 배우의 매력이다. 2022년에 당도한 청춘과 여성의 얼굴을 한 김용지는 이나 캐릭터를 연기하는 얼굴 그 자체로 영화적인 스펙터클을 구현한다. 무심하고 담담한 듯한 얼굴 속에 감춰진 미묘한 감정들을 오버하지 않은 채 관객들에게 자연스레 전달한다. 단단히 구현된 이나라는 차별화된 캐릭터가 주는 신선함이 첫 장편영화 주연을 맡은 김용지 배우의 얼굴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과 달리 한국 독립․예술영화계에 갈수록 다채로운 여성 서사가, 전형성에 함몰되지 않은 청춘영화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 무척이나 반갑다. <둠둠>은 적어도 그 선두 대열에 설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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