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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Jul 26. 2023

뉴진스 뮤비에 출연한 양조위, 이상하고 놀라운 1년



뉴진스의 < ASAP > 뮤직비디오가 공개됐던 지난 25일, 용산역 인근 골목을 지나다 묘한 광경을 맞닥뜨렸다. 노포와도 같은 어느 고깃집 외부 스피커로 뉴진스의 < Hype Boy >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용산 골목의 노포와 고깃집, 뉴진스의 조합이 꽤나 이질적이면서 굉장히 그럴싸했다. 고개를 돌리자 'H' 로고가 선명한 하이브 사옥이 그 용산 골목을 내려다보는 듯 했다. 여기가 K팝의 도시 서울이자, 하이브 사옥이 중심을 차지한 용산이다. 


"빠르면서 느리게 흘러갔고, 뭔가 굉장히 이상한 1년을 보낸 느낌?"


지난 24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아이유의 팔레트>에 출연한 뉴진스 해린의 지난 1년 소회다. 팬들 입장에선 느리게 흘러갔을 터다. 반면 산업은 무척이나 빠르게 돌아갔다. 데뷔 2년 차 걸그룹 뉴진스(민지, 하니, 다니엘, 해린, 혜인)가 지난 21일 미니 2집 < Get Up >을 발매했다.


꼭 1년이다. 이상한 K팝 나라로 걸어 들어온 소녀들처럼, 지난해 7월 22일 < New Jeans >로 데뷔한 뉴진스는 그 자신들도 예상치 못했을 이상한 1년을 통과하는 동안 눈부신 성과를 냈다. 문자 그대로 새 시대다. 최근 미국의 전통 있는 팝대중예술 잡지 <롤링스톤(Rolling Stone)>이 꼽은 '케이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0곡'(The 100 Greatest Songs in the History of Korean Pop Music) 순위에서 뉴진스의 < Ditto >는 19위를 차지했다.


"밀도 높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중독성 있는 히트곡을 통해 뉴진스는 전 세대에 걸친 청취자들에게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킬 소녀들의 성숙기와 노스탤지아라는 주제로 탐구한다."


<롤링스톤>은 그러면서 "Y2K 시대 흑인 미국 걸 그룹을 연상시키는 보컬 하모니"라거나 "10대 짝사랑에 대한 몽환적인 세피아 톤의 기억"이란 평을 남겼다. 소속사인 하이브가 지난 2021년 설립한 독립 레이블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발휘한 영향력을 언급한 것은 물론이다.


소녀시대의 < Gee >가 1위를 차지한 해당 리스트가 최신곡 위주, 아이돌 위주의 편협한 리스트라는 국내 일각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뉴진스가 차지한 19위란 순위는 놀라움을 안겨준다. 뉴진스의 앞자리에 자리한 걸그룹 중 최상단은 6위에 이름을 올린 <뚜두뚜두>의 블랙핑크였다.


뉴진스의 이상하고 놀라운 1년은 또 다른 영미 매체의 2022년 K팝 리스트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타임>은 < Hype Boy >를 2022년 최고의 K팝 5곡으로 뽑았고, <빌보드> 공식 매거진도 최고의 25곡 중 뉴진스의 <어텐션>을 6위에 선정했다. <인사이더>는 < Hype Boy >를 1위 아이브의 < Love Dive >에 이어 2위로 꼽았다.


<빌보드>는 뉴진스의 데뷔를 "K팝 산업에 큰 변화"라 표현했고, <타임>은 "격렬한 강렬함보다 미묘한 느긋함"으로 뉴진스의 음악을 규정했다. 영미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뉴진스 음악에 전반에 흐르는 여유로움과 기존 걸그룹 음악과의 차이에 집중했다. 이처럼 지난해 데뷔한 4세대 걸그룹 중 뉴진스는 단연 독보적이다. 다르다. 새롭다. 무엇보다 뉴진스에 대한 반향이 출발부터 국내와 해외를 망라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K팝의 새인류, K컬쳐의 새세대가 출현했다.

  

▲ 걸그룹 뉴진스가 지난 7일 발매한 미니 2집 선공개 곡 '슈퍼 샤이'(Super Shy)로 10일 오전 기준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 멜론 '톱 100' 차트 1위에 올랐다고 소속사 쏘스뮤직과 어도어가 밝혔다. 사진은 걸그룹 뉴진스. ⓒ 어도어제공


양조위와 정호연, 코카콜라와 애플, 그리고 박찬욱


"인연이 나타난다면 한국이든 일본이든 어디든 갈 거다. 작품은 인연이고 타이밍이다."


지난해 10월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대배우' 양조위는 한국영화 출연에 대해 묻는 기자진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평문 뒤에 나온 멋들어진 명문이다. 그 양조위가 뉴진스와 인연이 닿았다. 2집 수록곡 < Cool With You > 뮤직비디오에 짧은 분량으로 출연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할리우드도 사랑하는 그 양조위의 깜짝 출연은 오랜 팬들도 놀랄 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해 부산에서 "언어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한국 작품에도 출연하고 싶다"던 양조위가 이제 갓 데뷔 2년차인 뉴진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것은 K팝의 위상이자 BTS의 소속사 빅히트와 어도어 민희진 대표의 영향력을 상징하는 일대 사건이라 할 만했다. 노개런티로 출연했다는 양조위는 "좋은 인연이 닿았고, 한국 팬 분들께 자그마한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고 출연 소감을 전한 바 있다.


참고로, 민희진 대표는 지난 2월 빌보드가 꼽은 '2023 빌보드 우먼 인 뮤직'에 선정됐다. 민 대표는 빌보드가 한 해 동안 음악 산업에 큰 영향력을 끼친 여성 아티스트, 크리에이터, 프로듀서, 경영진을 선정하는 '우먼 인 뮤직'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양조위의 뮤직비디오 출연에서 엿보이듯, K팝 산업에서 뉴진스의 마케팅 행보는 독특하고 남다르다. 올해 들어 협업한 코카콜라, 애플과 이뤄낸 성과만 봐도 그렇다. 지난 4월 뉴진스는 코카콜라와 협업한 일종의 광고음악인 <제로>(ZERO)를 유튜브에 공개, 각종 음원차트를 점령했고 3개월 동안 1,600만 회가 넘는 유튜브 조회 수를 기록했다.


'코카콜라 맛있다'라는 귀에 익고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함께 뮤직비디오만 놓고 보면 광고라 여길 수 없는 완성도를 자랑했다.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이자 자본주의의 첨병이라 불리는 코카콜라와의 협업은 대성공이었다. <제로> 뮤직비디오를 클릭하면 <제로> 유튜브 광고가 재생되는 마케팅은 그 자체로 탁월했다.


다음은 애플이었다. 2집 < Get Up >의 세 가지 타이틀 곡 중 하나인 < ETA > 뮤직비디오를 아이폰14로 촬영했다. 미니 1집 < Ditto >, < OMG >를 연출한 '돌고래유괴단' 신우석 감독이 직접 촬영했고, 촬영 과정 영상을 아이폰 공식 유튜브로 공개하기도 했다. '아이폰으로 찍다'('Shot on iPhone) 캠페인의 일환으로 지난해 공개된 박찬욱 감독의 단편 <일장춘몽> 에 이은 두 번째 한국 프로젝트다.


애플과 협업한 < ETA >는 친구와 대화하는 듯한 친근한 가사, 뉴진스 노래 중 상당히 빠른 비트, 바람을 피우는 친구 남자친구를 감시하며 친구를 응원하는 뮤직비디오 내용 등 뉴진스 특유의 10대 소녀 감성을 감각 있게 풀어낸 곡으로 평가 받는다.


소위 Z세대가 열광하는 아이폰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뉴진스식 감성으로 이식한 탁월한 마케팅이다. 코카콜라와 애플, 양조위와 <오징어게임>의 정호연과 협업하는 뉴진스는 애플이 박찬욱 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선택한 한국 아티스트가 됐다. 


뉴진스의 성과와 K팝의 새로운 시대

   

▲ '서울패션위크' 뉴진스 뉴진스(민지, 하니, 다니엘, 해린, 혜인). ⓒ 이정민


뉴진스의 2집 타이틀곡 중 하나인 'Super Shy'가 7월 26일자 빌보드 '핫 100' 최신 차트 64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 OMG > (74위)와 < Ditto >(82위)는 물론 전주 대비 2계단 상승해 자체 최고 기록을 한 주 만에 경신했다.


뉴진스 2집은 스포티파이도 점령했다. 미국 빌보드 '핫 100' 집계에 반영되는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인 스포티파이 미국 '데일리 톱 송' 차트에서 뉴진스는 미니2집 발매 직후 < Super Shy > (10위), < Cool With You > (16위), < New Jeans > (20위), < ETA > (22위), < ASAP > (25위), < Get Up > (32위) 등 6곡 전곡을 순위에 진입시키는 괴력을 발휘했다. K팝 걸그룹 사상 최초다.


글로벌 톱 50차트에서도 선전 중이다. 24일자 차트에서 < Super Shy >는 9위, < Cool With You >는 27위, < New Jeans >는 34위, < ETA >는 35위를 유지 중이다. < ASAP >는 78위, < Get Up >은 93위다. 참고로, 현재 글로벌 톱 50차트 1위는 BTS 정국의 솔로곡 <세븐>이다. 지난주 각종 음원 차트 및 국내 음악 방송 1위를 휩쓴 것은 물론 음반 판매량도 2집 발매와 함께 120만장을 팔아 치웠다. < Get Up >의 선주문량은 172만장으로 알려졌다.


미 평론가들은 뉴진스를 평하며 볼티모어를, 뉴저지를 소환한다. 저지클럽과 같은 갖가지 최신 하위 장르가 언급된다. 뉴진스는 또 민희진 대표가 애호했다는 한 시대를 풍미한 일본 대 중예술의 감성을 포함해 X세대부터 MZ 세대까지 끌어안는 폭넓은 대중성과 독창적이고 트렌디한 감각을 통해 한때 2000년대 이후 대중예술의 특징적 징후 중 하나였던 소년성을 대체하는 새로운 소녀성의 대두를 목도하게 만들었다.


이 모두를 넘어서는 것이 바로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 감성의 극대화일 것이다. 나른하면서 어렵지 않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이 트렌드한 감성은 기존 K팝 걸그룹과의 차별화를 이뤄냈다는 평가다. 뉴진스가 이 특유의 감성에 변주와 변화를 시도한 2집이 또 어떤 성과를 이어갈지 주목된다. 


"미국 (k팝 오디션) 참가자나 프로모터들이 '한국 반응'을 자주 묻는다. 과거 우리가 미국에 '미국에선 좋아해? 미국 반응은 어때?'라고 물었는데, 이제는 현지 반응이 한국 반응이 됐다. 기준 점이 k팝이, 한국이 됐다. 그 K팝이 우리가 옛날에 생각하던 '우리나라에서 몇 개 찍어서 외국에 수출하는' 그 정도를 벗어 난 거다. 이게 (아이돌) 5세대, 6세대까지 갈 거라고 본다." (김영대 음악평론가)


24일 BTS 정국의 솔로곡 <세븐>이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 100'에 1위 진입과 동시에 3개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대기록을 썼다. 아시아 가수 최초다. 그런 시대다. K팝 아티스트가 빌보드를, 스포티파이를 휩쓰는 굉장하고 이상한 시대. 그 K팝의 굉장하고 이상한 새 시대를 데뷔 2년차 뉴진스가 횡단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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