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이었을까. 노동자의 죽음에 대처하는 대기업의 맨얼굴을 근거리에서 목도한 경험이 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그때 기억을 떠올리면 씁쓸해져서는 입맛을 다시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갑작스런 부음이었다. 급작스레 가까워진 영화계 지인의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충북 북단에 위치한 소도시로 한걸음에 내달렸다. 이상할 정도로 한가하고 횡 한 빈소. 장례절차가 끝난지 며칠이 흘렀지만 고인을 편안히 모시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하던 그 지인의 입을 통해 전해들은 고인의 마지막은 다소 기이했다.
대형 마트에서 일하고 있던 고인은 휴게실에서 갑자기 쓰러져 불분명한 사인으로 사망했다고 했다. 가족으로선 비통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후 회사 측 대응이 가관이었다. 짐작 하다시피, 마트 직원은 하청의 하청 직원이었고, 본사와 하청업체는 행여나 책임을 물을까 전전긍긍하며 유족과 대면을 피하고 있었다. 특히 본사는 고인의 사망 당시 정황이나 응급 처치 여부 등을 물어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하청 업체에 책임을 떠넘겼다.
대형 마트 노동자들의 처우나 골목상권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지 몇 해 되지 않은 때였다. 사측의 그러한 안하무인식 태도에 유족보다 더 분노한 것은 마트 노동자들과 유사 업체의 노조였다. 지인을 포함한 유족들은 나이도 어리고 돌아가는 상황을 단편적으로 파악하는 것도 버거워 했다. 해당 회사엔 이러타할 노조도 존재하지 않았다.
언론을 동원했다. 몸 담았던 회사 선배에게 문의했고, 진상을 알렸다. 지역 담당 선배 기자를 소개 받았고, 또 건너 건너 다른 유력 종합일간지 기자와도 접촉할 수 있었다. 그때야 장례식장을 찾아왔던 본사와 하청 업체 간부들은 처음엔 유족에게 이렇다 할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않았다. 전형적인 갑의 행태였다. 진상 규명이나 회사 측 사과를 받지 못한 유족은 그들을 향해 울분을 터트렸다. 빈소를 비우지도, 쉽사리 물러나지도 않겠다고. 전날부터 하나 둘 관련 기사가 보도되던 시점이었다.
이후 회사 측 대응이 180도 달라졌다. 특히 유력 일간지에 사측을 비판하는 기사가 뜨자 하청업체도, 본사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합의든 위로금이든 일단 장례부터 마무리하고 고인을 편안히 모시라는 회유 아닌 회유였다. 장례식장에서 보여줬던 오만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대응이었다.
지난달 19일 코스트코 하남점에 주차장에서 일하는 29살 고 김동호씨가 폭염 속에 사망했다. 카트와 주차 정리 업무를 하던 고인은 탈수 증상을 쓰러진 뒤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폐색전증으로 사망했다. 유족들은 고인의 사망 원인을 코스트코 하남점의 미비한 폭염 대책과 과도한 업무량을 고인의 지목했다. 고인의 사망일은 이틀째 폭염 특보가 내려졌고, 낮 최고기온이 33도에 달했다.
언론들이 취재에 돌입했다. 고인은 평소 외부 열기에 노출이 심한 구조인 코스트코 하남점 주차장에서 하루 많게는 26km 거리, 4만보에 가까운 거리를 이동했다. 시간 당 200개 넘는 철제 카트를 정리했지만 3시간 마다 쉬는 시간은 고작 15분이 전부였다. 지하 주차장에서 5층 휴게실까지 이동 시간은 왕복 9분이었다고 한다. 쉬고 싶어도 쉽사리 쉴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사측은 산재 신청을 위해 유족이 신청한 CCTV 영상 요청을 거부했다. 개인정보보호법이 그 근거였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자사 노동자의 사망 원인 규명보다 개인정보보호법을 앞세운 것이다. 이후 코스트코 사측은 어떠한 유감 표명도,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오는 6일은 고 김동호씨의 49재다.
유족과 마트노조에 따르면, 코스트코 조아무개 대표이사는 빈소를 찾았을 당시 “병 있지, 병 있지, 병 있는데 숨기고 입사했지”라며 망언을 내뱉었다고 한다. 고인이 지병을 숨긴 채 입사한 것 아니냐는 취지로 직원들에게 사실을 추궁했다는 것이다. 그런 대표이사의 파렴치한 태도는 직원들에게 고스란히 전염되기 마련이다. 하남점의 중간관리자급 한 간부는 사측에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왜 고인이 탈수가 올 때까지 물을 마시지 않았느냐’는 악의적인 막말을 했다.
10여년 전 경험이, 기억이 떠오른 건 그래서다. 같은 마트 노동자의 죽음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사측에서 언론 보도를 통해 일이 커지지 않기 위해 쉬쉬하는 체면치레라도 보였었다. 코스트코 대표이사나 하남점 간부의 막말은 그런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는 명확한 제스처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노동자를 경시하는 풍조의 일면이자 오너 리스크가 횡행하는 시대의 단면이라고 할까.
이번 코스트코의 대처를 놓고 법조계나 노동계에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가 쟁점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10년 전 고인의 장례 절차는 며칠 뒤 유족과의 합의 끝에 마무리됐지만 고 김동호씨는 49재가 다 되도록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있다. 대표이사를 비롯한 사측의 안하무인식 대처가 낳은 비극이다. 건강한 노동관을 지닌 CEO, 그런 CEO들의 품격이 절실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