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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한 자락을 해운대에서

해운대에는 낭만이 있다

by 로에필라

나에게 해운대는 특별한 장소이다.


한참 진로에 대한 고민이 복잡했던 20대 중반에 친구와 함께 해운대에 갔었다.


우리는 하룻밤에 15,000원짜리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득템이라는 생각에 무척이나 신났었다.

해운대 해수욕장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가격이 매우 저렴했다.

6개의 침대가 있는 도미토리 룸이었으며, 각각의 침대에는 아늑하게 커튼도 칠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보니 벽면에는 달과 별 모양의 노란색 조명이 있어서 텐트 안에 들어와있는 것처럼 포근했다.


하지만 우리는 거의 그 숙소에서 머물지는 않았다.

20대인 우리는 체력이 남아 돌아서 날을 새고도 멀쩡했었다.

밤에는 꼭 자야 된다는 고정관념도 없었다.




우리는 백사장에 무릎을 팔로 감싸고 앉아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봤다.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계속해서 파도소리를 듣고 어두운 바다를 바라봤다.

한여름이여서 다행히도 춥지는 않았었다.

우리는 대화도 거의 하지 않았다.

서로가 고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깊은 사색의 시간 또는 멍때리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몸이 아픈 사람이 약을 찾듯이 우리는 해운대를 찾았던 것이었다.


우리 인생에서 필요했던 그 순간을 해운대가 제공해줬다.

해운대는 넘어져서 까진 우리의 무릎을 호호- 불어 소독하고 대일밴드를 붙여주었다.


해운대에는 낭만이 있다.

청춘의 고민과 방황을 해운대에서 어느 정도 홀가분하게 떨쳐냈다.




우리는 다음 날 백사장을 거닐고 또 거닐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정 반대의 성격을 지녀서 서로 투닥투닥했던 우리는 해운대에서는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어제는 계속 바다를 봤는데 오늘은 백사장을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20대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마치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실험이라도 하듯이 걸었다.


걷다가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서 잠시 쉬며 바다를 바라봤다.


말이 많은 친구였지만 해운대에서는 조용했다.

지금까지 그 친구가 그렇게 말수 적게 있었던 적은 해운대가 유일했던 것 같다.


배가 고파지면 서브웨이에 가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우리가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을 때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멀리 떨어진 외국 휴양지에 온 기분이었다.


해운대에서는 지상에 몸이 붕 떠있는 듯한

내가 우리나라에, 아니 지구에 소속이 안된 듯한 경험을 했다.

약간의 무중력 상태에 있는 듯 했다.

친구도 평상시와 많이 달랐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해운대에서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해운대 바다의 마력에 빠져서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고 생각했었다.

다시 또 그 친구와 해운대에 가고 싶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 같은 공간에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지금 친구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며, 미국에서 살고 있다.

나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으며, 한국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해운대에서 청춘의 한 자락을 함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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