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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여행부터 부부여행까지
민통선에는 멧돼지가 산다
민간인의 GOP 면회
by
로에필라
Apr 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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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아빠부터 남동생까지 강원도의 GOP에서 군복무를 해서 강원도 사랑이 남다르다.
모르긴 해도 군 생활이 녹록치 않았을 텐데 구태여 바득바득 강원도까지 찾아가려고 하는 게 이해가 안됐었다.
처음 강원도를 가게 된 건 남동생의 군면회
때문이었다.
민통선에서 면회를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해서 가족으로서 안갈 수가 없었다.
5시간 이상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강원도 길을 힘겹게 갔다.
지치고 힘들어서 강원도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겨를도 없었다.
남동생과 대화를 하고 DMG의 울창한 나무와 야생동물들을 봤다.
특히 멧돼지들이 눈에 보여서 그야말로 '
내셔널지오그래픽
'
같았다.
어미 멧돼지 뒤로 작은 아기 멧돼지 두 마리가 종종걸음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어미 멧돼지는 위험한 지뢰가 있는 것을 먼저 확인이라도 하듯이 앞장서서 샅샅이 살피는 용감한 수색대였다. 아기 멧돼지들은 긴장한 모습이 여력한게 갓 들어온 이등병 같았다.
그렇게 남동생의 면회를 마치고, 부대를 떠나야 하는데 아뿔사! 우리 아빠의 차가 고장이 났다.
허겁지겁 차를 손보고 다시 시동을 걸어보고 하며 30분정도 출발이 지체됐다.
나는 혹시 이렇게 되어서 남동생한테 불이익이 있을까봐 조바심이 났다.
다행히도 차가 고쳐져서 무사히 부대를 떠날 수 있었다.
아빠는 신나신 목소리를 숨기시지 못한 채, 강원도의 이모저모를 소개시켜주셨다.
그래도 나는 감흥이 없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입이 벌어지지도 않았었다.
'
강원도 살면 많이 춥겠다. 여기 안 살아서 다행이야.
' 라는 생각도 했다.
송어회와 황태국을 먹었다.
아빠의 추천으로 정말 맛있는 식당으로 갔는데도 지금도 그
맛이 기억이 안 난다.
단지 그런 메뉴를 먹었었다는 것만 기억난다.
생각해보면 내가 강원도를 그저 발도장만 찍고 온 건,
내 마음이 문제였다.
20대 초반에 나는 성장과 자기계발에 목맸었다.
여행을 할 만한 심적인 여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내가 그 때 마음을 더 활짝 열고 강원도의 공기와 음식 그 모든 경험들을 피부 깊숙이 느꼈다면 좋았을 것이다.
강원도가 그렇게 아름다운지 미처 몰랐던 것이다.
강원도의 커다란 산들과 청량한 공기는 아버지와도 같이 나를 감싸 안아준다.
인간으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웅장함과 광활함은 작은 인간이 겪는 모든 고민들을 사소하게 만들어준다.
그 이후로 몇 년 후, 나는 캐나다에 가게 된다.
그리고 캐나다에서도 강원도의 산이 생각났다.
아무렇지도 않게 스쳐갔던 경험이지만 내 뇌리에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겨졌었나보다.
넓은 평야에 카놀라 꽃밭이 펼쳐진 캐나다의 도로를 운전하는 것을 좋아했었다.
'이런 넓은 평야는 한국에는 없을 거야'
'그리고...... 강원도와 같은 길도 캐나다에는 없지.'
모르겠다.
단 한 번 가본 강원도인데 이상하게도 그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 양 옆으로 아주 높게 솟은 산들이 생각났다.
안개 속에서 방황하며 길을 가는 나는 마치
신의 레고 게임이 된 듯이 작디작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아빠의 차와 우리 가족은 작은 레고 모형인 것처럼 강원도의 산과 자연, 신의 섭리가 아주 크게 느껴졌었다.
나는 강원도를 사랑한다.
마음이 편안해야지만 위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강원도에는 사람을 작게 만들어서 아무것도 아니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내가 빨리 가든지 늦게 가든지
오른쪽으로 가든지 왼쪽으로 가든지
공부를 하든지 놀든지
저 까마득한 위에서 바라보면 미세한 차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다 사소한 일들이다.
모든 인간은 비등비등하고, 모든 인생은 다 똑같다.
그냥 살면 된다.
별 거 아니다.
너무 고민하지 말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자.
모든 삶은 하나하나 다 귀중하며, 모든 인간은 다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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