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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오션뷰 호텔수영장을 갔다

by 로에필라

남편과 해운대에 있는 오션뷰수영장을 갔다.

파라다이스호텔과 웨스틴조선호텔 수영장이다.



겨울과 초봄 그 중간 어딘가의 날에 해운대 파라다이스호텔 수영장을 갔다.


파라다이스 호텔 수영장은 크게 두 공간으로 나눠져 있었다.

한 곳은 커다란 수영장이어서 자유형, 배형 등등 원하는 대로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또 다른 곳은 해운대 해수욕장과 가까운 온수풀이다.



따뜻한 호텔룸에 있다가 야외수영장으로 나섰더니 오도독 닭살이 돋으면서 차가운 밤바람이 무척이나 춥게 느껴졌다.

종종걸음으로 걸어서 온수풀에 갔다.


온수풀에 몸을 담그고 해운대 해변을 바라봤다.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장을 걷고 있었다.


지금까지 바다를 본 적은 많았지만, 이런 온천스타일로 바다를 본 적은 처음이었다.


캐나다 록키산맥 근처에 있는 핫스프링에서는 추운 겨울에 눈 내린 록키산맥뷰를 즐기며 온천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딱 내 기분이 핫스프링에 온 것 같았다.


짜릿하고 소름 돋는 야외 반신욕이었다.


바깥은 이렇게 차가운데 몸은 이렇게 따뜻한 물에 있다니 이 무슨 호사인가!

온수에 몸을 오래 담그고 있으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정신 차려!"라고 놀리듯 양 뺨을 찰싹찰싹 때리고 간다.

머릿속이 개운하고 맑아진다.

추운데 가난하기까지 할 때 느끼는 성냥팔이 소녀의 비참한 기분도 없다.


"나는 추운데 밖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다! 음하핫"


추위에 덜덜 떨면서 바다를 구경할 때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따뜻한 물에서 바다를 보니까 재밌었다.


온수풀에서 노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커다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면서 놀고 있었다.

나는 찬 물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온수풀에만 있었다.

저녁에 수영장에 와서 그런지 온수풀에 사람들이 몰렸다.

나처럼 온수풀에 자리 잡은 사람은 별로 없고,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 같았다.


한겨울 난방이 잘 안 되고, 외풍이 심한 시골집에서 따뜻한 아랫목에서 못 나가는 철없는 손녀가 된 기분이었다. 난 계속 온수풀에 머물고 남편은 수영하다가 가끔씩 와서 나하고 놀아주다가 다시 수영을 하러 갔다.


"이렇게 등을 대고 고개를 젖혀봐." 남편이 말했다.

남편의 자세를 따라 해 본다.

미용실에서 미용사가 머리를 감겨주듯이 머릴 자연스럽게 뒤로 젖혔다.

살랑살랑 바다에서 불어오는 환상의 손길이 두피를 어루만지니 솔솔 잠이 올 것만 같다.


바다를 등지고 풀장 끝부분을 베개 삼아 고개를 젖혀서 하늘을 바라본다.

까만 밤하늘에 몇 개의 별들이 떠 있다.

별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3개의 별은 아주 선명히 하늘에 콕콕 박혀있었다.

은구슬처럼 눈부시지 않은 은은하고 고급스러운 빛을 내뿜었다.


"별 예쁘다."


"같이 바다에서 별 보니까 좋다."



다음날에는 해운대 해변에 있는 웨스틴조선 호텔로 갔다.

웨스틴조선 호텔의 수영장은 해운대 해변이 다 보이는 뷰가 좋은 수영장이다.

수영장은 어른용 수영장과 아이용 수영장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깊은 수영장은 어른들과 보호자를 동반한 아이들이 있었고, 작은 수영장엔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다.


수영을 못하는 내가 낄 곳은 어디에도 없어서 나는 썬베드에 누워서 바다를 바라봤다.

층고 높은 깨끗한 유리창 밖으로 파아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유리창은 없는 것처럼 바로 바다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하얀 아치형의 구조물은 파란 바닷가 풍경과 어우러져서 지중해의 어느 콘도에 휴가 온 것 같기도 했다.

따뜻한 햇살이 유리창을 뚫고 수영장 전체에 들어와서 마치 유리온실에 있는 듯 온도가 딱 좋았다.



수영장에 잠깐 발을 담가보니 너무 차갑게 느껴져서 바로 발을 빼고 계속 썬베드에 누워있었다.

마치 백사장 위에 썬베드를 놓고 바다를 보는 듯, 가리는 게 없어서 바다뷰가 멀지만 선명하게 보였다.

한여름에 오면 시원하게 바다를 바라보며 수영장으로 놀 수 있어서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남편은 수영장에서, 나는 뷰를 구경하고 있는데 남편이 나를 데리고 나갔다.

수영장 밖으로도 작은 정원이 있었고,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루프탑에도 썬베드가 있었다.

유리창으로 가리는 것 없이 온전히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사유지에서 바다를 온전히 소유하는 기분이었다.

모험심이 없어서 계속 썬베드에 누워있던 나는 남편이 아니면 수영장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파란 하늘 아래 파란 바다

난간에는 거북이도 있다.


수영장 2층에 나오니 탁 트인 뷰가 좋았다.

아직 쌀쌀해서 그런지 사람들도 없어서 남편과 독점하다시피 공간을 점유했다.

나는 그래도 가운을 입었지만, 남편은 수영복차림인데도 추워하지 않았다.


햇빛이 바다 위에 부딪혀서 차르르 깨지는 유리조각들처럼 빛나고 있었다.

쨍한 파란색을 계속 바라보니 눈이 아파왔다.

햇빛 때문인지 파란색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눈부시게 선명하고 모든 게 파랬다.


햇빛은 따뜻하지만 가운 안으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와서 점점 체온을 낮췄다.

어차피 물속엔 안 들어갈 거여서 사람들이 가득한 실내수영장 안에 있기보단 계속 나와있고 싶었다.

남편은 다 젖은 수영복 차림으로 내 손을 잡고 난간에 가까이 가서 바다도 보고,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으며 신난 아이같이 놀고 있었다.


"춥지 않나요?"


"안 추워."


나만 추운가 보다.

나도 더 놀고 싶은데...

너무 춥다.


"이제 우리 다시 수영장으로 들어가요. 한겨울도 아닌데 이상하게 춥네요."


바닷바람을 얕보면 안 된다.

한낮에, 한겨울도 아닌데, 왜 이렇게 추운지 몸이 덜덜 떨려왔다.


다시 수영장 안으로 들어오니 따뜻하고 안락했다.

바깥에서 한참 놀고 나니 오래 수영장에 머물 마음이 들지 않았다.


"컷!"

짝짝짝-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춥지만 바다를 보면서 남편과 한창 돌아다니면서 놀았더니 영화촬영 여기서 끝-

엔딩을 본 기분이었다.



호텔룸으로 돌아오니 남편이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내려줬다.

커피에 크레마가 비율 좋게 어우러져서 부드럽게 추위에 얼었던 몸을 살살 풀어줬다.

수영장 안과 밖에서 돌아다니고 노느라 썼던 에너지가 채워지고 있다.


수영도 안 했지만 이런 말이 저절로 나왔다.


"캬- 역시 운동 후에 먹는 커피는 맛있어."


수영장 바깥에서 남편과 썬베드에 누워서 바다를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파랗고 꿈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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