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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공부하고 쉬고

스스로를 가둔 호캉스

by 로에필라

오늘은 내가 즐겁게 스스로를 감금했던 호텔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그곳은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조선 서울역'이다.


나는 여행 갈 때마다 책을 챙겨가서 심심하거나 적적할 때마다 보는 편이다.

가끔 어떤 여행들은 지칠 정도로 걷고 육체적 한계를 넘어서서 밤에 부은 다리로 그냥 누워서 자버린다.

책을 보는 것에 대해서 강박관념은 없다. 그냥 챙겨가는 게 좋다.

책을 보고 싶은 데 없어서 아쉬운 것보다는, 책을 안 보더라도 챙겨가서 읽고 싶어지면 한 페이지라도 읽는 게 좋다.


때는 한참 코로나가 심했을 때였다. 남편이 서울에 볼 일이 생겨서 가게 되었다. 나는 주말에 남편과 함께 있고 싶기도 하고, 오랜만에 서울을 가면 좋을 것 같아서 따라갔다.

우리는 서울 호텔을 예약했다.


그리고 호텔룸에 들어선 순간, 아늑하고 좋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소공녀 책에 나오는 세라의 다락방 같았다. 동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소공녀가 다락방에서도 착한 마음씨를 잃지 않았던 그 다락방.

창문 밖으로 서울이 한눈에 들여다보였다.

창문 밖으로 다른 건물의 지붕이 보이는 것도 신기했다.


지금 집은 베란다 뷰가 산이여서 자연친화적이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다른 건물들을 내려다볼 일이 별로 없었어서 이 뷰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이런 빽빽한 회색 빌딩 도시 뷰는 나에겐 흔하지 않은 뷰였던 것이다.


남편이 서울에서 볼일을 보는 동안, 나는 창문이 보이는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고, 영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다락방 같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도시가 아름다웠다. 도시가 주는 에너지에 취해서 쉬기보다는 발전적인 일이 하고 싶어 졌다.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 책상에 앉아있었다.


어떤 소설가들은 마감시간이 다가오면 호텔룸에 스스로를 가두고 글을 써간다는데, 나도 마감이 있는 글을 쓴다면 여기에 처박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특별 할인 룸서비스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남편이 밖에서 맛있는 음식들을 사 와서 함께 먹었다.


호텔 로비에 있는 바에서 맛있는 음료수도 먹고, 아침엔 조식도 먹었다.

육질이 좋은 스테이크를 썰어먹고 커피 한 모금을 머금었다. 그러다가 치즈케이크에 손이 갔는데, 치즈케이크에 반해서 갑자기 디저트 타임이 되어버렸다. 이 치즈케이크는 미국에서 먹었던 '치즈케이크 팩토리'스타일이었다. 두껍고, 꾸덕꾸덕 끈적끈적 치즈가 듬뿍 존재감을 뽐내며 진정한 치즈케이크의 레벨을 보여줬다. 밥을 많이 안 먹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케이크를 먹었다. 기분 좋은 기억을 되살리는 치즈케이크였다. 식당도 층고가 높고 유리창 밖으로 서울 전경이 보여서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었다.


남편의 선배도 함께 자리해서 좋은 대화를 나눴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과의 대화는 색다른 시야를 제공해준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나이지만, 사람이 많은 서울 분위기에 휩싸여서 나도 매일 몇천 명의 사람을 마주치는 듯 여러 사람들을 보고 새로운 사람하고 이야기하는 게 전혀 낯설지 않았다. 여행은 때로는 사람을 용기 있게 만들어준다. 평상시의 다른 내가 된다. 그리고 이렇게 변한 내가 더 오래 유지될 것 같다.


이 호텔에서 하루 자발적 감금생활을 하고 다시 집으로 가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한층 더 성장했어."


가슴을 펴고 당당한 파워 포즈로 집으로 향했다.




때로는 환경을 바꿔주면 모든 게 더블이 된다.


조금만 쉬어도 두 배 쉰 것 같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티뷰는 공부 효율도 두 배 높여준다.

음식도 두 배 더 맛있어진다.


방전됐던 에너지 충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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