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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꾸러기는 바다에서만 일출을 본다

거제 장승포 야경과 일출에 흠뻑 젖다

by 로에필라

거제 장승포를 갔다.



늦은 밤에 도착한 장승포는 물결에 뜬 어선들이 묶여있었다.

먼바다 끝에서 보이는 작은 불빛들이 수면에 비춰서 까만 밤바다를 색색으로 물들였다.



저녁으로 회를 먹고, 동네를 산책했다.

장승포의 밤은 지독히도 조용했다.



가로등 몇 개만이 비추는 어두운 밤길을 남편과 손을 잡고 걸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밤에 버스정류장이 푸르스름한 불빛을 밝히고 있는 게 오싹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신비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누군가는 버스를 기다릴 수도 있고, 어쩌면 버스가 올 수도 있어."


등골이 차가워지며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섰다.



굽이굽이 있는 언덕을 올라가면 장승포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좁은 길을 걷다 보니 인간은 참여할 수 없는 밤중에 열리는 여우의 혼인 잔치에 홀린 듯 가는 기분이 들었다.

저 멀리 있는 육지에서 비추는 빨강과 파랑의 조명들이 바다의 물결에 일그러진다.

불빛은 밤길을 밝히는 청사초롱이 되어 여우의 혼례길을 안내했다.

왼쪽에 바다를 끼고 걷는 높은 골목길에서 살아있는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좁은 골목길에는 이곳이 거제도임을 드러나는 표시들이 있어서 나를 현실로 안내했다.



"Blue City 거제"

파란 바다를 담은 거제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파란 도시에서 짙푸른 밤을 보냈으며, 파란 새벽을 맞이했다.

차가운 바닷 공기 속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봤다.



해가 뜨기도 전부터 하늘은 하늘색에서 연핑크색으로 서서히 물들어갔다.

밝은 하늘을 보고 "이미 해가 떴나?"라고 말했을 때였다.

붉디붉은 빠알간 에너지가 이글거리며 산등성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다가 타버린 이카루스처럼 아름다운 해돋이에 눈이 멀었다.

눈을 뗄 수가 없는 장엄한 광경이었다.


일출을 보니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 같았다.

하루의 시작이기도 하고, 인생의 시작이기도 하다.

새로운 결심으로 뭔가를 시작해보고 싶어졌다.



홀린 듯 보냈던 하룻밤의 특별한 경험.

거제의 밤과 아침은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일상에 감사하고, 내가 만들어 나갈 미래가 있음이 감사했다.


바다의 일출은 언제나 나를 의욕적으로 만든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서 이 의욕을 불태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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