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극장판이 나왔을 때 함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감동해서 하루종일 슬램덩크 이야기만 했다.
"난 어릴 땐 서태웅과 윤대협이 좋았는데, 다시 보니까 강백호의 패기가 너무 멋있네요."
"윤대협 브로마이드 사려고 문방구 다 돌아다녔었는데......"
"난 슬램덩크 일본어버전으로 다시 볼래."
남편은 슬램덩크 열풍일 때 서점에 들러서 슬램덩크 챔프 만화책도 샀다.
남편과 나이대가 비슷해서 참 좋다는 생각을 한다.
"나중에 큰 집에 살면 피규어 사서 진열해야겠다."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린다.
나는 의식주 중에서 식과 주가 중요하다.
먹을 건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집은 집순이로서 시간을 오래 보내는 곳이기 때문에 당연히 중요하다.
그랜저 광고가 생각난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성공이 차라면, 나에게는 성공의 지표는 집이다.
나중에는 큰 집에서 깔끔하고 예쁘게 집을 꾸미고 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지금은 신혼집이고 남편이 최근 발령이 잦아서 이사 다니는 바람에 작은 집에서 소박하게 살고 있다. 이사를 다니고, 아직 한 지역에 정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짐은 최소한으로 하려고 한다. 지금도 우리는 두 지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필요 없는 건 최대한 안 사고 정리하려고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액자'는 하나도 사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가 포기할 수 없는 건 책장이다. 책 읽는 걸 좋아했던 나지만 결혼하면서 미혼 때 보던 책들 대부분을 정리했다. 남편은 책을 매우 많이 가지고 왔으며 자주 책을 산다. 우리 둘은 취미생활로 서점을 자주 가곤 한다. 어느덧 책은 쌓여서 책장 3개로도 감당이 안되어서 최근에 하나를 더 샀고, 이사 가면 책장을 두 개 정도 더 맞출 생각이다.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짐은 '책'이다.
그래도 책은 둘 다 같이 보는 것이고 마음의 양식이어서 괜찮다.
한 번씩 꺼내보기 때문에 실용성 측면에서 점수를 더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거기에 피규어 보관함을 더 늘린다고?
"피규어는 안 샀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나중에 큰 집으로 이사 가서 슬램덩크 같은 거 진열해 놓으면 좋잖아."
"저 큰 집 안 살래요. 우리가 50평 집에 살아도 피규어한테 공간을 내주면 30평 집에서 사는 거나 마찬가지겠네요."
남편을 설득한다.
"티브이에서 봤는데 피규어 많이 모았다가 처분하는 사람들 많더라고요."
남편은 웃으며 말한다.
"항상 내 말에 따라주다가 오늘 처음으로 반대했어."
신기하다는 듯이 날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남편과는 의견불일치가 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피규어는 집에서 공간만 차지할 것 같아서 좋진 않다. 하지만 남편이 정말 원하는 취미생활이라면 존중해주고 싶기는 했다. 남편이 피규어를 정말 원하기 전에 그 마음을 바꾸고 싶은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