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여행엔 매 끼니가 다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어떤 식당을 갈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매 끼니를 먹고 마셨다. 혹자는 "선택의 자유가 없잖아."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다 떠먹여 주는 이 여행이 꽤나 편했다. 내가 진짜 필리핀 현지식을 먹은 건지, 아니면 필리핀에 여행온 외국인들을 위해서 글로벌하게 맛이 개량된 필리핀 음식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현지 음식들이 맛있게 잘 먹어졌기 때문이다. 필리핀을 다 안다고 말하기엔 부족했던 3박 5일이라는 시간. 거기에다가 대부분의 음식을 번듯하게 차려진 리조트에서 먹었기 때문에 필리핀 음식에 대해서 쓰는 게 조금 부끄럽다.
솔레아 리조트
아침마다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었다. 여행지 가서 늦잠 자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일찍 일어나야지 조식을 먹고 일정을 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매일 짜인 일정을 잘 소화하려고 조식을 든든히 잘 먹어뒀다. 조식은 필리핀 현지식이 대부분이었는데 입맛에 안 맞는 음식은 하나도 없었다.
조식메뉴 중 가장 좋았던 것은 무한으로 먹을 수 있는 커피와 와플, 팬케이크였다. 맥도날드에서 맥모닝으로 핫케이크세트를 자주 먹던 나는 팬케이크와 메이플시럽의 조화를 좋아한다. 조식을 먹을 때마다 핫케이크와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여유를 즐겼다. 다음으로 내가 좋아했던 음식은 갈릭볶음밥과 야채볶음이었다. 이 두 메뉴는 조합이 좋아서 섞으면 야채볶음밥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첫날과 둘째 날 이틀간 메인으로 먹었었는데 셋째 날에는 다른 볶음밥이 대신해서 아쉬웠다.
아침형 인간인 남편 덕분에 알람을 안 맞추고도 일찍 일어나서 조식을 먹으러 갈 수 있었다. 일찍 식당에 가면 모든 직원들이 친절하게 우리를 맞이해 준다. 과하다 싶은 친절이 기분 좋은 호의로 다가온다.
커피를 따를 때 바닥에 커피잔을 놓고 커피를 따르면 커피가 사방으로 튄다. 너무 세게 레버를 당겨서 커피잔 바깥까지 커피가 묻자 나를 지켜보던 리조트 직원이 다가와서 커피잔 받침을 줬다. 커피잔과 조금 떨어진 곳에는 커피잔 받침이 있었는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투숙객들은 커피잔 받침을 사용하지 않아서 커피잔에 커피가 묻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파인애플 주스에는 진짜 파인애플이 들어가 있어서 비주얼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한국에서는 뷔페에서 파인애플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파인애플 주스는 큰 감흥이 없었다. 여기에서는 초밥을 먹다가 생강으로 입안을 개운하게 하고 다음 초밥을 먹듯이 파인애플 주스를 중간중간 마셨다. 부드러우면서도 새콤달콤한 파인애플 주스는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더운 필리핀이라 열대과일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걸까?
샐러드 코너에서 샐러드를 덜 때 생겼던 일이다. 바깥쪽에 있는 과일과 샐러드만 접시에 담는 것을 본 직원이안쪽에 있던 볼을 들어서 내 앞에 보여줬다. 안쪽까지 팔이 닿지 않긴 했지만 뷔페에서 볼 수 없는 과잉친절, 뭐라고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과하게 친절한데 나쁘지 않고 고마우면서 쑥스러운 기분이었다. 세심하게 투숙객을 지켜보고 도와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 컵라면 6개를 챙겨 왔었는데 조식이 맛있고, 현지식과 한식당이 다 맛있어서 컵라면을 꺼내먹을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셋째 날에 남편이 조식을 먹다가 컵라면을 먹겠다고 했다.
'하긴 지금 아니면 캐리어에 컵라면을 그대로 들고 가겠네.'
"나는 모닝커피 마시면서 천천히 이 시간을 즐기고 싶어요. 먼저 숙소 들어가서 컵라면 먹어요."
조식을 먹고 룸에 들어가니 강렬한 라면향이 가득했다. 컵라면의 짭짤 매콤한 수프맛이 코끝을 찌르면서 "한입만-"을 말하고 있었다. 안 먹을 땐 생각 안 났었는데, 한 번 라면향기를 맡으니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이 느껴졌다. 남편이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면 분명 뺏어먹었을 것이다.
하우스키퍼에게 라면용기를 치워달라는 말과 함께 고맙다는 메시지와 팁을 남겨놓았다.
저녁에 룸에 들어와 보니 답장이 쓰여있었다.
리조트에서 닭고기와 돼지고기 메뉴도 먹어봤는데, 맛이 훌륭했다.
양념이 잘 발라진 닭고기는 오븐에 구워서 가니쉬가 올라갔다. 돼지고기는 한국의 돈가스와 비슷한 맛이다. 소스는 적지만 짭짤하게 잘 간이 되어있어서 그냥 먹어도 좋았다. 한국에서는 돈가스가 메인이면 밥은 조금만 주는데, 여기는 밥을 한 공기 다 주는 것 같다. 이 엄청난 밥양을 보면서 한국과 다른 나라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게 느껴졌다.
필리핀에 머무는 동안, 가장 많이 먹은 게 솔레아 리조트의 음식이다. 필리핀다운 음식과 누구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보편적인 식성도 고려한 식단이 합쳐져서 만족도가 컸다. 매끼의 조식은 신선한 샐러드와 베이커리류, 그리고 볶음밥이 매번 나왔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메뉴구성에 차이를 둬서 며칠을 머물러도 질리지 않았다. 남편은 나에게 "한국보다 더 잘 먹는 것 같아."라고 말해서 나도 웃으면서 "그러게."라고 대답했다. 한국하고 비슷한 밥위주의 메뉴이기 때문에 적응하기 편했다. 이색적인 향신료를 첨가한 생선조림, 전통시장에서 먹었던 후라이드치킨과 비슷한 닭튀김 등등 입안을 기쁘게 하는 향연이었다.
현지식 1
필리핀에서 부족들이 먹었던 음식을 먹었다.
8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중간을 밥을 포함한 다양한 음식이 길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한가운데에는 고소해 보이는 갈색을 띤 밥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있었다. 그리고 과일과 새우, 고기가 끝부분에 데코처럼 있었다. 이런 형식은 테이블 꽃장식에서 볼법한 스타일이었다. 다음에 집에 손님초대할 때 이런 식으로 테이블을 꾸며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신한 스타일이었다. 각 자리에는 비닐손장갑도 있었다. 장갑 낀 손으로 밥을 덜어서 개인 앞접시에 놓았다. 주걱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 뜨니깐 시간도 더 조금 걸리고 재미있는 마음도 컸다. 도구를 이용하는 것보다도 더 음식을 촉감으로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고, 필리핀의 문화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밥을 제외한 모든 음식은 인원별로 일정하게 제공되었다. 음식이 전체적으로 다 먹을 수 있게 놓인 것 같았지만, 각 자리 앞에 같은 양의 사이드메뉴가 있었다. 새우는 인당 2개였고, 수박과 파인애플도 인당 각 2개씩 먹을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양이었던 만큼 밥은 반절 이상이 다 남아서 아쉬웠다.
현지식 2
한 식당은 패키지로 여행 온 한국인들로만 가득했다. 식당의 규모가 매우 커서 패키지로 몇십 명씩 오는 한국인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크기였다. 그 식당에서는 전용 지프를 운영해서 단체손님에게 교통편을 제공해 주는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식당인가?' 했는데 처음 보는 음식들이 나왔다.
처음 먹었던 수프는 그리운 추억이 생각나는 맛이었다. 캐나다에 살 때, 중국에서 이민온 광동출신 친구가 광동에서 자주 먹는 수프라면서 항상 해줬던 토마토수프와 비슷했다. 맑은 국물에 토마토가 들어갔다는 것이. 다른 점은 필리핀 토마토 수프에 조금 더 시큼한 맛이 났었고, 광동 토마토수프는 밋밋하고 맹한 맛이 났다는 것이다. 같은 재료로 요리를 해도 첨가되는 시즈닝에 따라서 다양한 맛을 낸다는 게 신기했다.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먹어본다는 건 이렇게 재미있다.
디저트
필리핀은 따뜻한 날씨만큼 망고가 맛있다. 알로나비치를 걷다 보면 망고를 파는 노점상들이 많이 보인다. 비팜아이스크림 가게는 아보카도, 망고를 포함한 다양한 과일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다.
우리 부부가 필리핀에서 가장 많이 들린 매장은 단연코 할로망고이다. 이름부터가 '망고전문점'이라고 광고하고 있다. 할로망고는 브랜드에 걸맞은 망고맛을 보여준다. 할로망고에 빠져서 망고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었다. 망고함량이 높은 건지 신선한 생망고를 통째로 집어넣은 건지 뭔지 비결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맛있었다. 망고아이스크림은 달짝지근하면서도 밀도 높은 망고맛이 났다. 망고셰이크는 한국에서 먹던 셰이크에 비하면 단 맛이 약했지만, 오히려 본연의 망고맛을 잘 살린 맛인 것 같았다. 디저트는 달게 먹는 것을 좋아해서 개인적으로는 망고아이스크림이 가장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