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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May 01. 2024

남편이 육아용품을 잔뜩 얻어왔다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현관으로 나가보니, 남편이 손바닥만 한 옷을 들어서 자신의 몸에 대고 활짝 웃고 있었다.


"옷이 너무 작아요. 당신이 들고 있으니까 너무 귀여워요."

남편의 팔뚝보다도 작은 옷, 아기 옷보다도 남편의 행동, 미소가 더 눈에 들어온다.

남편이 아이옷이나 신발을 받은 날은 꼭 이렇게 가슴팍까지 들어서 보여준다.

나는 남편의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게 느껴진다.


종이 박스 안에 깔끔하게 개진 옷들을 보고 "이대로 바로 옷장에 넣으면 되겠네요."라고 말했더니 남편은 "한 번 빨아야지."라고 말한다.


빨아서 바싹 말린 아이옷은 포근한 구름 같은 향이 났다.

아기옷은 너무 작아서 어떻게 개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른 옷 개듯이 차곡차곡 개고 있었더니 남편이 와서 나보다 두 배는 더 빠른 속도로 옷을 개기 시작한다.


"좋은 엄마가 될 것 같아. 우리 옷은 이렇게 열심히 안 개는데 아기 옷이라고 더 신경 쓰네."

그러고 보니 나중에 아이가 바로 입고 나갈 수 있게 최대한 주름 없이 예쁘게 옷을 개고 있었다.

내 옷은 이렇게 세밀하게 각 잡아서 개지 않는데, 우리 아이가 처음 입을 옷이라고 생각하니 설레었다. 조그마한 아이에게 이 옷을 입혀서 나들이 나가는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남편이 육아용품을 잔뜩 얻어왔다. 커다란 코스트코 가방에 신생아옷이 가득했다. 아이 의자, 역류방지 쿠션, 그리고 아이가 조금 더 자라서 입을 옷들이 한 박스 있었다.  우리 아이의 초음파 발 사진과 어울리는 작은 운동화들도 받았다. 아이신발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남편의 발을 작게 만들면 딱 아이발일 것 같다. 튼튼해서 어디든 다 다닐 것 같은 아빠 발을 닮으렴 아가야. 도톰하고 통통한 아기 발이 조금 더 자라면 운동화들을 신겨서 함께 산책을 나가고 싶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게 귀여우면서도 너무 느려서 답답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함께 손을 잡고 천천히 걷고 싶다. 아이의 오른손은 남편이, 왼손은 내가 잡아주고 함께 많이 걷고 싶다.


얼마 후, 남편은 또 지인에게 유아차, 보행기를 받아왔다. 육아용품들을 나누어 주는 마음들이 너무 감사했다. 축하받으며 육아용품을 물려받은 만큼, 소중하게 아껴서 쓰고 우리 아이보다 더 늦게 태어나는 아이들에게도 육아용품을 물려주고 싶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더니.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관심과 사랑이 고맙게 느껴진다.


아이와 남편이 참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을 때, 나보다 몇 달 먼저 임신했던 친구한테 연락이 와서 아이가 크고 안 쓰는 물건들을 보내준다고 했다. 목록들을 하나하나 사진 찍어서 보낸 후, 필요한 지 물어봐서 다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아직 아이를 안 키워봐서 뭐가 필요한지 몰라서 일단 다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체육관과 배냇저고리, 또 산모를 위한 손목보호대까지 보내줬다. 장문의 설명을 함께 보내서 감동적이었다. 고등학교 때 함께 공부했던 친구인데 함께 난임을 겪으면서 더 친해졌는데 아이와의 터울도 크지 않아서 앞으로 더 가까워질 것 같다. 육아선배의 설명을 들으면서 배워가고 있다.

"아이 옷은 큰 사이즈로 사야 하는구나." 아이가 빨리 자라서, 배냇저고리도 다 입혀보지 못했다고 했다.


아이물건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우리 물건을 버리고 있다.

당근마켓으로 안 입는 옷과 책들을 팔기 시작한다.

비워지는 공간만큼 아이의 물건으로 차기 시작한다.


"아기 욕조는 있니?"

엄마가 묻는다.

"네? 아기 욕조가 필요해요?"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신생아는 욕조 두 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욕조 하나에서 씻기고, 체온이 떨어지기 전에  빠르게 다른 욕조에 받아놓은 따듯한 물로 헹군다고 한다. 아기 욕조를 2개나 준비하니 맥시멀리스트가 된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데 참 많은 물건과, 공간이 필요하다고 새삼 생각한다.


임신 말기가 돼서야 베란다에 선반을 두 개 설치하고 차곡차곡 태어날 아이가 쓸 물건들을 정리한다. 이렇게 아이를 위한 물건들이 많을 줄 알았다면 몸 상태가 좋은 임신 중기에 수납공간을 더 만들어놓을 걸 그랬다. 


아가야. 널 위해 서투르지만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어. 

널 만나는 순간이 너무 기다려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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