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에필라 May 08. 2024

태아가 아빠 목소리를 알아보나 봐

태동이 감사하다

유산 이후, 병원에 때마다 불안한 마음도 조금씩 있었다.

"심장이 멈춰있으면 어떡하지?"


초음파 보기 전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16주쯤부터 가끔 배 속에서 보글보글 기포가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태동인지 아닌지는 태동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배 속이 불편한 느낌 같기도 해서, 태동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었다.


20주부터 자기 전에 누우면, 물컹하고 꿈틀거리는 뭔가가 뱃속에 있다는 게 느껴졌다. 마치 에어리언이 배 속에 있는 것처럼 신기한 경험이었다. 미끄덩한 무언가가 내 몸속에 있는 이건, 확실히 태아였다. 내 몸과는 다른 이질적인 무언가는 내 장운동과는 별개로 돌아다녔다. 21주부터는 손이나 발을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뱃가죽 안쪽으로 손과 발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뭉퉁그려서 움직이는 것과는 다르게, 주먹질 또는 발길질하듯이 볼록볼록 배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이가 아직 작고, 자궁이 많이 크지 않아서인지 태동은 골반가까이 되는 아랫배에서 느껴졌다. 골반쪽에서 태동이 느껴질 때마다 그곳에 손을 댄다. 배가 체온보다 차갑고 단단하게 느껴지는 건 양수가 있어서이다. 물속에서 헤엄치며 손장난 하고 발장난 하는 아이가 편안하길 바란다.


25주 차에 본 초음파에서 아이의 머리가 위에 있다고 했다. 그럼 아랫배에서 느껴진 태동은 발장구였구나 싶어서 귀여웠다. 너무 작은 손과 발을 계속해서 움직이는 아이.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계속 움직이고 활발하다고 하셨다. 우리 아이는 초음파를 볼 때마다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태동은 아이의 움직임에 비해서는 미세하다.  


낮에는 움직임이 크게는 느껴지지 않았는데 저녁에 남편과 자려고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 아이가 꿈틀꿈틀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아빠 목소리를 알아보나 봐요. 당신이 얘기하면 움직여요."

슬그머니 배에 손을 댄 남편도 아이의 움직임을 느꼈다.

아이가 아빠의 저음을 좋아해서 활발한 움직임으로 반응했다.

음악과 남편의 목소리가 함께 들리면 더 움직임이 커진다.

남편이 동요를 유튜브로 켜고 불렀는데 가만히 있던 아이가 움직이는 게 신기해서 배속을 했더니 더 활발하게 움직였다.


태동을 느끼면서 불안함이 없어졌다. 밖에서 산책도 많이 하고, 남편과 2시간 이내의 거리에서는 당일치기 여행도 자주 다닌다. 태아는 매우 건강하고,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다. 임신 초기에 맘 졸였던 게 의미 없게 느껴질 만큼 건강하고 착한 아이다. 불안할 때마다 똑똑- 노크를 한다.   

            

"엄마, 난 건강히 살아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태동은 생존신고이다.     

태동이 감사하다.     

태아가 건강히 살아서 자라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느낄 수 있다는 게 감동적이다.


이렇게 작고 조그마했던 아이와 내 배는 임신 34주부터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했다. 초음파로는 쉴 새 없이 움직이지만 내가 느끼기엔 작은 몸짓이었는데, 이젠 손과 발의 움직임이 그대로 느껴진다. 아이는 여전히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남편은 노래를 흥얼거릴 때가 많은데 남편이 노래할 때와 남편과 포옹할 때면 발으로 발장구를 친다. 보통 나 혼자 있을 때는 골반쪽에서 손을 움직이던 아이가 아빠와 있으면 발을 주로 움직인다. 남편이 배에 손을 대면 아이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남자끼리 통하는 게 있나 봐요."

"아빠를 좋아해요."


우연의 일치라기엔 아이의 태동이 말해준다.

우리 아이는 엄마아빠가 함께 있는 화목한 시간을 좋아한다.

뱃속의 아이는 참 순하다. 아무리 많이 움직여도 옆구리가 아플 정도로 발차기를 하진 않는다. 엄마가 아프지 않게 조심조심 움직이는 게 귀엽다. 태어나서는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뛰어다녀도 괜찮다. 뱃속에서 얌전한 아이가 태어나서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자기 전,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남편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이도 흥겹게 움직이며 대화에 끼어든다. 아직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우리 3명이 한 가족이 되어서 함께 있는 것 같다.

임신을 한 것, 태동이 느껴지는 것, 출산이 다가오는 것, 곁에 남편이 있는 것.

2명이었던 우리가 곧 3명이 된다.

모든 게 감사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이 육아용품을 잔뜩 얻어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