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 문장이 되어 나를 흔든 날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가볍게 넘기기엔 어딘가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마치 제 안에서 이미 하고 있던 생각을
누군가 먼저 들여다본 것 같은 기분.
‘행복한지 아닌지 고민할 여유.’
그 말이 자꾸 마음에 남았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나는 지금 괜찮은가’,
‘지금 이 삶이 행복한가’
를 묻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어느 순간부터 삶을 살피는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를 불안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곤 하죠.
행복이라는 감정은
확인하려 할수록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기준을 세우는 순간
삶은 비교로 바뀌고,
생각은 복잡해지고,
감정은 해석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해석에는
항상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는
조용한 불만이 깃들어 있죠.
생각해보면,
삶이 조금 복잡하고 바쁠 때가
오히려 저는 더 평온했던 것 같습니다.
'행복하냐고 자문할 여유'도 없이
하루를 살아내는 그 시간들.
무언가를 따지지 않아도
그저 있는 그대로
머물 수 있었던 순간들이
가끔은 더 ‘살아 있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최근에 필사를 하던 중,
조지 버나드 쇼의 이 문장을 마주하고
손끝이 멈췄습니다.
문장을 따라 쓰는 그 여유 속에서
저는 생각보다 더 많은 질문을 품고 있었고,
그 질문 속에서 스스로를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가끔
행복해지기 위해
스스로를 자꾸 의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럴수록
삶은 조금씩 지쳐가는 듯 합니다.
조용히 묻네요.
"행복을 따져 묻는 대신,
그냥 살아 있는 감각에 머물 수는 없을까?"
삶을 해석하지 않는 여유.
그 여유가
비참해지는 비결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놓아주는 방식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 문장을 곱씹으며
행복을 따지지 않는 하루를 살고 싶습니다.
여유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조금 남겨두고,
그 여백 속에서 조용히 저를 바라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