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괜찮다고 해도, 마음은 기억한다

삶은 변화

by 하티

"예전에 너무 힘들 때가 있었어."


외부 미팅을 마치고 대표님과 함께 차에 올라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대표님의 목소리가 차 안을 채웠습니다. 평소와 다른 톤이었기에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되었죠.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연락했었어. 처음엔 거절당해도 괜찮았는데, 연락할수록 마음이 점점 다르게 반응하더라고."


조용한 신호등 아래에서 대표님은 잠시 말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뒤로 갈수록, 거절한 사람들이 미워지더라. 그 감정을 없애는 데 7년이 걸렸어."



그 순간, 제 안에 숨겨둔 감정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3년 전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끝나지 않는 상황이 떠올랐으니까요.


제게도 비슷한 상처가 있습니다.

돈을 빌려준 상대방,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계속해서 변명을 늘어놓는 그에게 여러 번 기회를 주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다음 주에 꼭 갚을게."

"이번 달 말까지만 기다려줘."

"정말 미안해, 곧 연락줄게."


그의 말들은 언제나 가벼웠습니다. 하지만 그의 약속이 깨질 때마다 제 마음은 조금씩 무거워졌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돈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았습니다.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였다는 것을.


이제 그는 제 연락마저 피합니다. 전화를 받지 않고, 메시지도 읽지 않습니다.

처음 1년은 모든 것을 바꿔보려고 애썼습니다.

신뢰란 무엇인지, 이렇게 대응하는 게 맞는 것인지 일장 연설도 해보고 화도 내봤죠.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는 쌓여갔고, 밤잠을 설치는 날이 늘어갔습니다.

2년째 되던 해, 분노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가 게임을 계속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받았습니다. '내가 빌려준 돈으로 게임에 현질하는 건가?'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가 게임에 돈을 쏟아붓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밥을 먹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문득 그 생각이 떠오르면 하루가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3년째. 조금 달라졌습니다. 아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요. 여전히 그는 돈을 갚지 않았고, 여전히 연락을 피합니다. 하지만 이제 그러려니 합니다.


"그러려니"

이 단어를 처음 썼을 때는 체념과 포기의 맛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그러려니"는 조금 다릅니다. 감정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의미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전 힘든 걸 힘들다고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아니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괜찮지 않을 때 "괜찮아"라고 말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상황이 더 견디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감정을 고스란히 느꼈으니까요.


하지만 대표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았어요. 마음이 기억한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상처를 간직한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입니다.

마음은 치유의 과정도 기억합니다.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성장했는지도 기억하는 것이죠.


3년 동안 분노에서 체념으로, 체념에서 수용으로 조금씩 변화해왔습니다. 아직도 가끔은 그 기억이 불쑥 찾아와 마음을 흔들어놓지만, 예전처럼 하루가 무너지진 않습니다.


대표님은 7년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직 3년째입니다. 앞으로 4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마음이 온전히 치유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날 차 안에서 나눈 대화가 내게 작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비슷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 상처가 결국에는 아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말은 "괜찮다"고 할 수 있어도, 마음은 정직하게 모든 것을 기억합니다. 아픔도, 성장도, 치유의 과정도.

그래서 오늘도 제 감정에 정직하려 합니다. 힘들 때는 힘들다고 말하고, 기쁠 때는 기쁘다고 말하면서요.

언젠가 제 마음이 이 기억을 온전히 놓아줄 그날까지, 천천히 걸어가려 합니다.

마음이 기억하는 방식을 존중하면서, 그 속도를 인정하면서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상처를 피하는 사람보다, 회복할 줄 아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