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거짓말이요, 님이 날 위함도 또 거짓말. 꿈에 와서 보인다하니 그것도 역시 못 믿겠구려. 날같이 잠 못 이루면 꿈인들 어이 꿀 수 있나,‘
노랫가락의 한 대목이다. 나의 말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고 그 말속에 들어있는 핵심을 들여다보는 관계, 그것이 연인이다.
영화 왓위민 원트에서도 그렇다. 어쩌다가 상대의 마음을 읽게 된 주인공이 상사의 마음까지 읽어 성공가도를 달리는 영화. 그러다가 너무 필요 없는 말까지 듣게 되자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스토리. 하긴 그럴 수 있겠다. 상대의 마음이 너무 깊이 들여다 보인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는지.
즐겨 쓰는 유머가 있다. 연인이 갑자기 “나 사랑해” 한다면 그게 무슨 뜻이겠냐고. 대부분 ‘어, 나도 사랑하지 뭐.’라고 얼버무리며 대답한다. 사실은 ‘내가 사고 싶은 것이 생겼어’라는 뜻이다. “자기 나, 진짜 사랑해?”라고 한다면? 그건 이미 저질렀다는 뜻이다. 이런 속마음까지 읽어내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그게 진정한 연인의 힘인 것을.
연인의 오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시력은 몽골인 이상이고, 청력은 박쥐를 능가하며 후각은 사냥견을 허탈하게 만들며 육감은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때론 들키고 싶지 않은 자존심까지 읽어버려 싸움의 발단이 되기도 한다. 걸칠 것 없이 벌거벗겨 다니니 숨을 곳이 없다. 자유가 없는 CCTV 란 글자 안에 CT란 글자가 들어있다니. 사회도 내 모든 것을 알아채는 이유가 있었다.
사실 현명한 연인은 가끔은 CCTV를 꺼놓는다. 모른 척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는 것. 상대에게 숨 쉴 시간과 장소를 주는 것. 그래서 때론 상대가 엄살을 부려도 엄마처럼 따스하게 안아주며, 조그만 실수를 해도 자상한 아빠처럼 기를 북돋아 주는 관계. 마치 누구나 받는 상을 받아온 아이를 1등 받은 아이처럼 존경의 눈으로 쳐다봐 줄줄 아는 엄마처럼. 내가 그 긴 판소리 쑥대머리를 부를 때 턱 밑에 상처라도 났나 하고 우러러 봐주는 그런 시선이다.
옛날 이발소에서 면도를 하다가 이발사가 손님의 턱을 살짝 베었다는 얘기가 생각난다. 손님은 당황해하는 이발사에게 화를 내지 않고 그냥 물 한 컵만 달라고 했다. 목이 마르냐고 했더니 목에 물이 새는지 확인해 보려 한다고 답했다. 그런 여유다.
또한 현명한 연인은 상대를 위해 지나치게 헌신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이 부려 먹는다. 많이 시킨다. 그러면 상대는 신이 나서 숙제를 해다 바친다. 무슨 소리인가. 바로 자존감을 세워주는 것이다. 그래서 연인사이가 틀어지다가도 누구 하나 병상에 눕게 되어 상대를 간호하는 상황이 될 때, 둘의 사이가 급격히 가까워지는 것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게 된다. 상대에게 내 존재가치를 증명하게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 사이를 가장 강력하게 끌어주는 말이라 할 수 있는 ‘너밖에 없다’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연인, 어려운 단어이다. 서로 끌리고 기다리고 아쉬워하고 바라보고 내 모든 것을 바치고, 그러면서도 티격태격 싸우다가 풀어지고 또 새로운 시선을 갖고.... 때론 CT를 찍듯이 들여다보고 때론 모른척하고 덮어두고 때론 희생하고 때론 부려먹고. 삶의 축소판인 이 관계를 경험하지 않고서야 어찌 득도를 할 수 있으랴.
‘창문이 닫혀도 스며드는 달빛, 마음을 달래도 파고드는 사랑’ 창부타령의 구절처럼 운명처럼 다가오는 연인이란 두 글자. 오늘은 CCTV를 켜 놓을까 꺼줄까. 달래줄까 부려먹을까. 생각 좀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