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는 며느리가 시골의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어머님, 저도 어머님 따라서 물김치를 담가봤는데 아무래도 끝맛이 좀 다르네요. 어떡하죠?" 몇 가지 질문을 던지던 시어머니는 시계를 쳐다본다. 그러고는 막차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 서울에 온 시어머니는 바로 주방으로 달려가 며느리에게 한 수 가르쳐주고 오신 김에 며칠 묵어가라는 아들 손도 뿌리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내가 그랬다. 어쩌다가 몇십 년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살게 되었다. 모신게 아니었다. 부려먹었다. 퇴근쯤 되면 장모님에게 전화를 건다. "장모님, 오늘은 고등어가 먹고 싶은데요." 집에 가보면 영낙없이 잘 구운 고등어가 올라와 있다. "장인어른, 호적등본이 필요한데요." 그러면 털털거리는 완행버스를 타고 꾸역꾸역 다녀오신다. 힘들었다 하시면서 털썩 내 앞에 서류를 내어 놓신다. 그러면서도 모습은 귀찮아하는 표정이 아니시다. 힘들게 왜 자꾸 시키냐는 와이프의 잔소리에도 나는 그렇게 두 노인을 하염없이 부려먹었다. 참 나쁜 사위다.
직장의 부하에 두 부류가 있다고 한다. 한 친구는 말 안 해도 알아서 잘하는 부하다. 다른 한쪽은 일은 어느 정도 하면서 가끔씩 조그만 것이라도 상사의 의견을 구하는 부하다. 앞의 친구는 당장 성과를 내야 할 때 선호하는 유형이고 뒤의 친구는 오랫동안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유형이라는 심리분석가의 말이 있다. 그만큼 인간은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예시다.
효(孝)란 무엇일까. 잘해드리고 근심을 끼져드리지 않는 것이 효도일 수 있다. 그러나 부모가 제일 섭섭해하는 말이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말이라 한다. 당신은 필요 없다는 말이다. 집안에서도 잘 사는 아들딸보다 무언가 부족한 자식에게 부모의 관심이 더 끌리는 이유이다. 그 무언가 내가 나설 필요가 있다는 상황이다. 물론 부모에게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일부러라도 그럴 필요가 있다고 보는 대목이다. 나중에서야 심리학자의 말에서 내가 했던 행동의 정당성을 어느 정도 인정받고 내가 그렇게 나쁜 사위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아내가 부르는 소리.
"여보, 알타리무좀 씻어줄래?"
엥? 아내도 내 비법을 눈치챘나? 요샌 나를 일꾼 부리듯 자주 시켜 먹는다. 내가 먼저 부려먹을 타임을 안 준다.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