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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브리옹 Apr 23. 2019

[12C, 이슬람 문명] 오해와 편견을 넘어

이슬람 아라베스크 예술

<이란, 이맘 모스크>


  미술사가 서양을 중심으로 연구되다 보니 제3세계 미술은 가볍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 역시도 서양미술사를 중심으로 알고 있지요. 현대 미술이 서양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그런 듯합니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고도의 예술적 업적을 이룬 민족도 많을 텐데요. 르네상스 이후 미술사적 업적이 유럽에서 꽃 피운건 사실이지만 너무 편중되어 있는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서양에서 500~1,400년은 중세시대로 불리는... 또는 문화적 암흑기라고 일컬어지는 시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세시대라고 하면 맹목적이고 어두웠던 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유럽 지역을 벗어나 인류사 전체의 관점으로 보면 또 다른 르네상스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지요. 바로 기독교 문명과 쌍벽을 이루는 이슬람 문명입니다. 약 600~ 1300년까지 최고의 황금기를 이뤘던 이슬람 문명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모르지요. 저 또한 이슬람 국가에 여행 간 적도 있었습니다만, 단편적인 지식으로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더군요.


  이슬람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솔직히, 폭력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부터 떠오르지 않나요? 세계사가 유럽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고, 유럽인과 다른 사고방식과 종교를 가졌던 탓에 아랍인은 소외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기독교 문명의 대척점으로 간주되며 수백 년 동안 전쟁을 치렀기에 막연한 편견도 있었지요. 심지어, 미국의 9/11 테러 이후, 이슬람은 피하고 싶고 불편한 문명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미지와 달리 기독교와 공통점이 매우 많습니다. 구약과 신약도 인정하며 심지어 예수님조차 위대한 선지자로 존경합니다. 이슬람에 대한 막연한 편견은 어쩌면 이슬람에 대해 무지했기에 나타난 선입견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유럽 르네상스 보다 먼저 찬란하게 꽃 피운 아랍의 문명을 알고 싶은 마음에 몇 권의 책을 사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보면 볼수록 많은 오해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슬람 문명이 시작되는 500년대는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의 오랜 전쟁으로 실크로드 대신 우회 루트였던 아라비아 사막을 가로지르는 교역로가 발달하게 됩니다. 메카와 메디나는 바로 그 중심지였지요. 이 시기에 마호메트가 등장합니다. 마호메트는 예수와 달리 신으로 인정받지 않습니다. 메시아가 아닌 선지자지요. 심지어, 마호메트의 삶은 세속적인 모습도 많이 나타납니다.


  메카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은 탓에 성장 시에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청년의 마호메트는 목동이 되어 양치기가 됩니다. 많은 것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사막의 신비로운 고요함에 빠져 명상의 세계를 접하게 됩니다. 훗날 이슬람 학자 하칼스는 말합니다.


<요르단의 밤>


  “영리하고 예민한 목동은 낮에는 광활한 하늘을 보면서 그리고 밤에는 반짝이는 별을 보면서 깊은 사색에 빠졌을 것이다. 그는 높은 창공 너머를 꿰뚫어 보며 주변의 자연현상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그의 깊은 통찰력으로 보아 주변 세계가 자신의 내면세계와 거의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깨달았을 것이다.


  날숨과 들숨이 없으면 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도 생각했을 것이고, 태양이 햇살을 비추며, 달이 빛을 반사하여 길을 안내한다는 것과 높고 광활한 창공에 널려 있는 천체가 모두 엄정한 궤도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태양이 달을 따라잡을 수 없고 밤이 낮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을 것이다.


  가축을 보호하기 위해 신경을 쓰고, 모래 언덕 뒤에서 늑대가 나타나 잡아가지나 않을까 경계를 하며 잘 지켜야 하는데, 이 우주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큰 주의와 인내가 필요하겠는가?”



  이슬람은 아브라함, 야곱, 예수 모두 인정하고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을 동일하게 유일신(알라)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마호메트가 주장했던 이슬람 교리의 가장 큰 차이는, 대속자나 중재자 없이 신과 신자 간의 직접적인 소통을 한다는 점입니다. 누구도 하느님을 대신할 수 없으며 신은 자식 또한 두지도 않기에 무슬림은 신과 1:1 관계가 됩니다. 그런 까닭에 신앙생활이 가장 중요하지요. 구원의 방식도 현세의 선악에 따른 경중으로 천국과 지옥으로 나뉩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예수를 통한 구원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죠.


  마호메트는 무역상으로 거듭나 큰 성공을 거둡니다. 그리고 15살 연상의 고용주였던 하디자와 결혼합니다. 그 덕분에 금전적인 걱정을 하지 않게 되어 더 깊은 명상과 사색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초승달이 뜬 밤, 히라산(山)의 동굴에서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유일신에 대한 계시를 받게 되지요. 그러나, 메카의 카바신전에는 다양한 신들이 섬겨지고 있었기 때문에 유일신을 주장하는 모하메트는 탄압을 받게 되고 메카를 떠나 622년 메디나로 가게 됩니다.  

<하라산 동굴>


  메디나에서 마호메트는 이슬람 세력을 키우면서 지도자로 모습을 갖춥니다. 이후, 메카 군을 크게 무찌르고 외교협상으로 630년 메카에 입성하게 되자, 카바 신전 안에 있는 모든 우상을 파괴합니다. 그는 이슬람을 포교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힘이 강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통치자로서 정복전쟁을 계속하여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을 통일합니다. 이점은 낮은 자리에서 희생했던 기독교의 선지자들과 분명히 다른 점이지요. 마호메트는 선지자면서 통치자이자 군주였습니다. 그리고 632년 애처(愛妻) 아이샤의 품 안에서 사망하지요.


  마호메트가 632년 타계함으로써 그의 후계는 정통 칼리파 시대라고 불리는, 만장일치에 의한 3명의 지도자가 승계합니다. 다만, 마호메트의 유일한 부계 혈통이자 사촌이던 알리는 후계자가 되지 못합니다. 알리의 추종자들은 피해의식과 정치적 소외를 느끼게 되지요. 마침내 알리가 네 번째 칼리파가 되었으나, 5년 뒤에 암살당하면서 이슬람 내부는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알리의 추종자들은 직계 혈통이 겨우 네 번째에 칼리파가 된 것도 못 마땅했는데 죽음까지 더해지자 극단적 분노와 적개심이 표출됩니다. 결국, 알리를 추종하던 무리가 이탈하게 되면서 시아파가 됩니다. 이슬람 세계는 순니파가 90%, 시이파 10%로 이뤄져 있지만 일반 사람들 간의 종교적 차이는 미미한 편입니다. 서로 이해하는 편이라고 봐야겠지요.


  순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은 내부 문제였을 뿐, 이슬람교 자체는 아랍 지방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확대됩니다. 정통 칼리파 시대 이후, 우마이야 왕조(661~750), 아바스 왕조(750~1268), 스페인 무슬림(756~1610), 오스만 제국, 페르시아를 거쳐가면서 아랍은 중동지역에 굳건하게 자리 잡습니다. 이슬람이 급속하게 발달하게 된 계기도 당시 이슬람교만의 평화로운 철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좀 놀랍지 않나요? 지금 우리에게 이슬람은 불편한 이미지가 강한데, 천 년 전 이슬람은 유화적인 정책 덕분에 빠르게 교세 확장할 수 있었다는 점이요.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이슬람은 표현은 급격하게 확장되는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 국가들의 두려움을 표현했다는 점이 더 설득력이 있게 느껴지더군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초기 이슬람 국가였던 우마이야 왕조는 다른 국가를 정복하더라도 종교의 자유를 대폭 인정했습니다. 다만, 보호의 명목으로 약간의 세금이 더 추가될 뿐이었죠. 그 뜻은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세금을 적게 낸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어 대규모 개종이 이뤄집니다. 오히려 세수 부족이 문제가 될 정도였지요. 뿐만 아니라, 타민족이었어도 정치적 권한을 행사할 수도 있었습니다.


  반면, 기독교 국가는 십자군이라는 명분 아래 강제적인 개종과 살육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관점으로 보자면 기독교 국가가 오히려 폭력적이었지요. 심지어 당시 이슬람의 과학과 의학기술은 유럽 중세시대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발달되었습니다. 무역을 통해 그리스 문명과 중국 문명의 장점만을 흡수하여 그야말로 최강대국이 됩니다. 오히려 중동의 많은 토착 국가들은 기독교 국가가 될 바에 평화로운 이슬람 쪽으로 편입되는 편이 나은 상황이었지요.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유럽의 문화 혁명도 사실 알고 보면 이슬람의 문화 융성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스페인 남부 이슬람은 톨레도에 국가 차원의 번역소를 만들어 고대 유럽 문학과 의학기술을 집대성합니다. 우리가 유럽 고대 역사를 알 수 있었던 점도 이슬람 서적에 남아있는 기록 덕분이었죠. 뿐만 아니라, 외과수술법, 고등수학, 천문 지리학 등 모두 이슬람 시대에서 기틀이 잡힙니다. 모로코 페즈에 여행 간 적이 있었는데 이천 년이 넘은 시장 안에는 인류 최초의 현대적 의미의 병원을 볼 수 있었지요.

<알람브라 궁전 전경>
<알람브라 궁전 내부>


  이뿐 인가요? 스페인 남부에 여행 가면 이슬람의 찬란한 왕조의 문화유적을 볼 수 있습니다.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도 대단하지만 그라나다의 알람브람 궁전은 그야말로 이슬람 문명의 정수(精秀)입니다. 절벽 위에 지어진 궁전은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그럼에도 적국의 포위가 있어도, 자체적인 음식 조달과 급수도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물의 흐름으로 온도조절까지 가능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과학적 성취 덕분이었지요. 이것뿐인가요? 궁전에 새겨진 조각은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이슬람 미술은 9세기 후반부터 부흥하기 시작합니다. 마호메트를 계승한 첫 번째 왕조인 우마야드 왕조 당시에 전성기를 누리던 비잔틴 기술이 조합되어 독특한 모자이크 형태로 발달합니다. 아름다운 초록색과 금색으로 묘사된 풀과 나무 등이지요. 이러한 기하학적 무늬를 나타내는 표현법이 바로 아라베스크 문양이라고 합니다. 이슬람의 가르침에 따라 신 이외의 그 어떤 형태의 우상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경외함을 드러내기 위하여 꽃무늬와 패턴 양식으로 표현했지요.


<시르답>

  이슬람 국가들을 여행하다 보면 초승달 문양을 많이 보게 됩니다. 심지어 터키 국기는 초승달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선지자인 마호메트가 초승달이 뜨는 밤 깨달음을 얻었기에 때문입니다. 마치, 기독교의 십자가처럼 말입니다. 또 이슬람 건물 내부를 보면, 지붕 아래에 4각 모서리 같은 것들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시르답, 또는 스퀸치라고 하는데, 마호메트가 깨달음을 얻었던 동굴 속 종유석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지요.


  삶이 곧 신앙이었기에 꾸란은 실생활에 직접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가령, 돼지고기를 금지하거나, 이성을 유혹하는 것을 보여서는 안 된다(히잡 착용) 등이지요. 이는 강제적 규율이라기보다 당시 여건에 맞는 생활지침에 가깝습니다. 더운 지역에서 돼지고기는 쉽게 상하기 때문에 먹지 않는 게 위생 측면에서 나았기 때문입니다. 히잡 착용도 꾸란에 명시된 건 아니나, 자신의 신분을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본인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한 측면이 강합니다.


  이슬람의 뜻 자체가 “복종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철저하게 꾸란에 맞춰진 삶이지요. 그리고, 꾸란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 평화입니다. 불교는 자비, 기독교가 사랑처럼 말이지요. 무슬림(이슬람을 믿는 사람)의 인사말은 “알 살라무 알라이쿰”은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임을 입니다. 우리가 가진 막연한 이슬람이 대한 호전적인 이미지와 너무 다르지 않나요? 하기사, 상식적으로 전 세계 인구의 1/4 이 믿는 종교의 가르침이 폭력을 장려 할리가 없잖아요? 만약, 그랬다면 르네상스 이후 인류사는 전쟁으로만 물들었을 겁니다.


  이슬람에 관한 여러 책을 볼수록 문명의 성격이 호전적인 게 아니라, 그 원인이 근대 유럽의 제국주의 탐욕적 때문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터전을 잃은 평범한 유목민족은 총과 칼을 쥘 수밖에요. 이스라엘의 국가 인정은 기독교 문명에서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지만 아랍 국가 입장에서는 뼈아픈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석유를 둘러싼 서구 문명의 이기적인 탐욕은 이슬람 민족에게 복수의 칼을 쥐게 되는 명분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오해가 단순히 이슬람뿐일까요?


  무지가 편견을 만들고 편견은 오해를 만드는 입니다. 때로는 상대방의 생각이 이해 안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오해 속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나만의 생각에 갇히게 되면 그때부터 관계의 어려움이 시작되는 듯해요. 지금 내가 바라보는 상대 모습은 단편적인 부분입니다. 그 속 마음은 모르는 것이죠. 바로 그 간극에 사이에 갈등이 존재합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그런 듯해요.


  상대의 말과 행동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대개 상식적이고 그렇게 판단할 만한 근거가 있지요. 누군가 나에게 요구를 할 때, 그 이유를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즉, 요구에 감춰진 욕구를 이해하는 것이죠. 욕구라는 것이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어렵기 때문에 요구라는 포장지로 감춰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방의 요구를 충분히 이해하기도 전에 급하게 결정을 내리고 그들의 요구는 잘못되었다고 판단 내립니다. 오해가 생기는 것이지요.


  욕구라는 건 대개 자기중심적이기는 하나, 충분히 이해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고요?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니까요. 좋은 게 좋고, 싫은 건 싫습니다.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그러하지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상황이 이해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럼에도, 상대방의 욕구를 이해할 수 있어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또한 현실이기에 우리 삶에서 갈등은 늘 존재합니다. 하기사, 가치관이 다르고 믿음이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데 어떻게 욕구가 같을 수 있겠어요? 너와 나는 다르니까 세상사에 갈등이 생기는 것 또한 당연한 겁니다.


  갈등은 인간사에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지만...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이 갈등을 풀기도 전에 오해부터 갖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갈등을 풀기도 전에 오해부터 쌓여있다면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본인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선입견에 갇혀버렸는데 어떻게 양보할 수 있겠어요? 오직 목적과 욕심만 있을 뿐이지요. 오해가 쌓인 갈등은 증폭되어 분노에 이르고, 결국 폭력을 부르게 되어 돌이킬  없는 관계가 됩니다. 따라서, 오해가 생기기 전에 갈등을 잘 풀어내는 게 중요하지요.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믿음의 차이와 이로 인한 갈등... 위대한 성인들은 당연히 겪을 수밖에 없는 인류에게 평화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고, 부처는 자비를 베풀라고 했습니다. 마호메트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꾸란을 전부 읽고 음미할 수는 없었지만, 꾸란에 기록된 많은 장(章) 중에 109장(알 카피룬-불신자들을 위한 장)이 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무슬림이 아니라 깊이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다양한 욕구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세상에 많은 의미를 주는 듯했지요.  


  "불신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숭배하는 것을 내가 숭배하지 아니하며

내가 경배하는 분을 너희가 경배하지 아니하고,


너희가 숭배했던 것들을 내가 숭배하지 아니할 것이며, 내가 경배한 그분을 너희가 경배하지 않을 것이니,

너희에게는 너희의 종교가 있고 나에게는 나의 종교가 있을 뿐이라"


  이슬람이 지향하는 가장 큰 미덕은 바로 만인의 평등과 형제애입니다. 꾸란의 문장처럼, 서로의 믿음이 다를지라도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슬람에 대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지 않나요? 크게는 문명의 충돌부터 작게는 개인의 갈등을 안에서 다양한 요구가 있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비록 그 요구 뒤에 숨겨진 욕구를 수긍하기 어려울 때가 있지만, 최소한 상대방을 이해를 할 때 다양성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성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원에 아름답게 새겨진 아라베스크 문양과 형형색색의 양탄자를 볼수록 이슬람 문명이 추구했던 순수한 신앙의 결정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비록, 그것은 기독교 중심의 예술과는 분명히 다르지만 획일화되지 않은 다양성 덕분에 인류사의 예술은 더욱 풍요로워졌다고 믿어요. 서로의 욕구가 다르고 믿음은 분명히 다를 수 있습니다. 차라리, 어쩔 수 없는 갈등이라면 그 갈등으로 괴로워하기보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편이 더 가치로운 일일 거예요. 그것이 바로 문명의 충돌에서부터 작게는 개인 간에 갈등을 끊임없이 겪는 현대인에게 주는 중요한 힌트일 겁니다.

<이스탄불 블루 모스크>
<현대식 모스크>
<아라베스크 조각 문양>


[참조]
꾸란_한국어판

이희수_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알 파루키_이슬람 문명의 정수

전완경_이슬람 예술

네이버 백과사전-마호메트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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