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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브리옹 Aug 29. 2019

[성기 피렌체 르네상스]  성실과 책임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시스티나 예배당>

  얼마 전 매일 야근과 주말에도 회사에 나가는 제 모습을 보고 천상 직장인 체질 같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취업도 힘든 시기에 서울 하늘 아래 내 책상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대답했지만 내심 속으로는 씁쓸하더군요. 워커홀릭이 아니고서야 어떤 이가 일하는 게 즐겁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회사에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분명히 행복한 일이지만 절대적인 업무량이 쌓이면 일을 쳐내는 것도 버거워집니다. 거기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시간도 부족하니 마음만 앞서게 되네요. 예전에 감명 깊게 봤던 드라마 <미생>에서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계약직 장그래에게 오 차장이 말을 건네지요


  “기왕 들어왔으니까 어떻게든 버텨 봐라. 여긴 버티는 게 이기는데야.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아간다는 거니까...” 

<드라마 미생>


  맞아요. 버티는 건 힘든 일이지요. 그러나, 한창 일할 나이고 지금의 경험이 실력의 밑거름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이겨냅니다. 원래 사람 마음이라는 게 힘들다 어렵다 하면 생각한 대로 싫은 일이 되는 법이잖아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다 보면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고 좋은 결과도 가져온다고 생각해요.


  뿐만 아니라, 담당하고 있는 일에 대한 책임감도 있지요. 나 하나의 문제로 한정된다면 일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습니다. 나로 인해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는 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수백 개의 부품으로 이뤄진 시계도 하나의 톱니바퀴가 빠지면 작동할 수 없잖아요? 그 톱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말할 나위 없지요. 책임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존재가 증명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원리가 참 묘합니다. 어렵고 힘든 일은 누구나 하기 싫은 법이지요. 그런 일은 대체적으로 누구나 하기 싫어 하기에 결국 한 사람만 담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그 사람이 아니면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대체 불가한 인력이 되는 것이죠. 그게 세상의 이치입니다. 결국 정반합이지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직장인 10년 차가 되고 보니 편하고 쉬운 일일수록 스스로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어차피 환경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똑같은 업무를 10년 동안 할 수는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이 경쟁력이 되는 세상인 거죠. 저는 이게 성공의 키워드 같아요. 남들이 하기 싫고 어려운 일을 기꺼이 찾아서 하는 것. 그런 까닭에 조금은 어렵고 궂은일을 하는 편인데 긴 인생을 볼 때 도움이 되는 거라 생각해요.

<샘>과  <예배당 천정화>


  미술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작품은 변기를 뒤집어 놓은 것만으로 명작이 되지만 어떤 것은 수년이 걸쳐 작품을 완성하는 시간이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그중 가장 어렵고 성실함이 필요로 했던 작품을 생각해보니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더군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 화입니다. 미술사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도 곧잘 인용되는 <천지창조>는 인류 탄생을 표현한 가장 상징적인 작품이기도 하지요. 바티칸에서 직접 봤을 때는 오색찬란하고 힘찬 구성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게 기억납니다. 어쩌면, 르네상스 시대를 포함하여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손으로 그려낸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을 수 있지요.


  이 그림의 탄생 일화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이 작품을 그리기 전에 미켈란젤로는 회화를 그려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조각가였을 뿐, 화가는 아니었지요. 하지만 교황의 끈질긴 설득으로 제안을 수락하게 됩니다. 그에게는 분명히 어렵고 궂은일이었겠지요. 이미 성공한 조각가이자 건축가였기에 모험을 할 필요도 없었을 거예요. 모두가 기피하고 어려워했던 일이었지만 사명감이 그를 시스티나 성당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렇게 남들이 꺼려하던 그 일을 기꺼이 도전했던 미켈란젤로는 인류 최대의 문화유산을 탄생시킨 신화적인 인물로 남았습니다.


  다만, 그가 아무리 천재였다지만 초보 화가가 어떻게 명작을 그려냈겠습니까? 동료 화가에게 회화의 기초와 일부 장면을 도움받습니다. 초기에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일반적인 사이즈로 그림을 그려냅니다. 시작 부분인 <노아의 방주>에 사람이 작고 많이 묘사된 탓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하지만, 천장이 20m인지라, 세세하게 그려봐야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의 스타일대로 큼직하고 강렬하게 그려내지요.


  무려, 5년이라는 세월을 똑바로 서서 그림을 혼자서 그려냅니다. 그 후유증으로 20여 년 가까이 회화는 손도 대지 않았지요. 상상해보세요. 목을 젖힌 채 5년 동안 똑바로 천장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보통사람이라면 할 수 있겠습니까? 보조 화가의 도움 없이 홀로 성당을 그리다 보면 물감이 눈에 떨어질 때도 있었을 거고 목과 허리 통증도 심했을 겁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솔직히, 미켈란젤로가 성실했던 인물이냐고 묻는다면, 대번에 그렇다 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성실함을 뛰어넘는 천재성이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예배당을 그리는 동안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성실했음은 분명합니다. 스스로 다짐했던 것만큼은 실천으로 이룩했으니까요. 그 결과 성당 천장에는 ‘조각 같은 회화’로 가득 찹니다.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인류 역사상 불멸의 작품이 완성된 것이지요.


  성실함은 무엇일까요? 성실 속에는 항상 기억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성실함은 그저 열심히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데, 성실하려면 스스로가 정해 놓은 다짐을 늘 기억하고 행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학창 시절에 수업을 빼먹거나 지각을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예전에 교사 셔서 그랬는지 꽤나 엄격히 관리하셨죠. 제 이름에 정성’성’에 향기’훈’이 들어가서였을까요? 그래서 아무리 아파도 학교에서 엎드리겠노라 다짐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학창 시절 그리 내세울 건 없으나, 초중고 12년 동안 개근상을 탄 것만큼은 자랑거리입니다. 물론, 개근상과 성실함이 100% 상관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꾸준히 정한 바를 지킬 수 있도록, 성실함이 전제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성실하려면 꽤나 고됩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과거에 결심했던 걸 잊지 않고 늘 실천해야 하지요. 또 자신과의 약속을 배반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황이 우리를 괴롭히더라도 말이죠. 그런데, 세상을 살다 보면 초심을 잃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요? 처음에는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지만 한두 번 넘어지고 나면 처음에 가졌던 원대한 결심은 사라지고 현상유지만 하는 것에만 급급해지곤 합니다.


  저는 사람 사이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관계는 상황에 따라 변하게 되는데 처음에 가졌던 호감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좋을 때는 누구나 좋지요. 하지만 언제나 좋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성실한 관계는 어려울 때도 버팀목이 되어주는 뿌리 깊은 관계입니다. 신의를 지키는 것은 함께 쌓았던 믿음을 잊지 않겠다는 것이며 언젠가 닥쳐올 수도 있는 어려움도 함께 이겨내자는 것이지요. 동락(同樂)보다 동고(同苦)의 사이가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은 그런 이유겠지요.


  연인이나 부부 또한 같다고 생각해요. 관계를 갈라지게 만드는 것도 순식간이고, 결혼을 결심하는 것도 금방입니다. 그러나, 그 관계가 건강하게 지속되려면 사랑에 대한 약속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건 성실함이 근간될 수 있지요.


  “그때 기억나요? 활짝 핀 꽃 길에서 우리 함께 산책하면서 뭐가 그렇게 좋았었는지, 활짝 웃었던 그 날이요!”


  성실함은 그런  같아요. 과거의 결심, 예전부터 노력해온 사랑을 유지할  있는 ‘이라고. 사랑이 깊어지는 계기는 순간의 열정보다, 애틋했던 시절을 떠올릴 때입니다. 그 긴긴 시간을 함께 웃고, 더불어 슬퍼할 때를 기억하면 서로가 뜻깊은 존재가 됩니다. 어쩌면, 나이 든 부부들이 더 감동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이유가 될지 모릅니다. 프랑스 철학자, 앙드레 콩트는 말했습니다.


  “지금 사랑할 수 있거든 나를 사랑해주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을 잊지 말아 주오. 나는 맹세하겠소.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나눈 사랑에 성실하겠노라고”


  정성을 다하면, 그 향기가 하늘에 퍼집니다. 성심의 향기가 곁에 있는 한, 일도 사랑도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겁니다. 천지가 창조되듯이 말입니다.


참고:

마로니에북스_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화 1001

앙드레 콩트_미덕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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