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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브리옹 Dec 31. 2019

[초기 바로크] 맺고 끊음

헤리트 반 혼트 <다윗의 기도>

<다윗의 기도>

  미술의 역사는 기성세대의 미술을 극복할 때 새로운 화풍이 탄생하곤 했습니다. 근대 미술에서 인상주의, 야수주의처럼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지요. 가만 보면, 기성세대의 미술과는 맞지 않을 때는 불편한 이름이 붙곤 하는 듯 해요. 바로크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찌그러진 진주라는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합니다. 썩 좋은 의미는 아니지요.


  바로크가 탄생하는 17세기는 르네상스에서 이어진 물질적 풍요에 이어진 특징을 갖습니다. 보석으로 뒤덮인 성배, 금사 태피스트리, 건축의 정교한 소용돌이 장식 모두 사치의 전형적인 모습들이지요. 따라서, 과도한 장식, 복잡하지만 질서가 있는 구성, 화려한 색채, 강한 빛을 표현하기 위한 극명한 그림자 등이 대표적인 형식입니다. 바로크의 역사는 약 1,600 ~ 1,680년에 걸쳐 약 80여년 정도 밖에 안되니만, 물질적 풍요에 힘입어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에서 수많은 작품이 탄생하지요.


  헤리트 반 혼트호르스트는 바로크 시대에 활동했던 네덜란드 화가로서 카라바제스키(카라바조 스타일로서 극명한 어두움과 강렬한 빛으로 인물 강조)를 최초로 적용한 화가입니다. <다윗의 기도>를 보면 전형적인 스타일이 나오지요. 사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이 너무 많고 초기 바로크를 상징하는 화가들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헤리트 반 혼트호르스트의 <다윗의 기도>라는 작품을 다루는 이유는 조금은 생뚱맞게도 지금이 바로 연말이기 때문이었지요.


  올 해도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시간이 엄청 빨리 지나간 듯하네요. 어르신 말씀이 꼭 맞는 것 같아요. 삶의 체감속도는 자기 나이와 비례하다고...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하다가 내 그럴 줄 알았지" 하게 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특별히 기억나는 시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송년회를 할 때, 저는 꼭 지인들에게 물어보게 되지요. 한 해를 반추해볼 때, 가장 기억이 남는 순간이 언제였는지를요.


  개인적으로 올 해를 돌이켜보면 조금은 힘들었던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 마음이 지쳤던 일들이 많았던 것 같네요. 이런저런 생각들로 잡념이 많아지고, 쫓기는 듯한 일상이 계속되면 눈 앞에 있는 것들만 챙기기 급급해집니다. 그러다 보면, 실수도 하고 잘못된 선택도 하게 되지요. 마음이 힘들다는  건 그 안에 여러 가지 사사로운 생각들이 머릿속에 남아있기 때문이겠죠. 생각의 꼬리가 행동을 주저하게 만들고 마음을 위축시킵니다. 그런 시간이 오래될수록 점점 부정적으로 변하게 되고 결국 남는 건 아쉬움뿐이더군요.


  미련(未練)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적으로는 터무니없이 고집부리며 어리석고 둔하다는 뜻이지요. 관상학에서 미련은 눈썹(眉)이 연결(連) 되어 있다는 뜻도 있습니다. 일자 눈썹을 말하지요. 관상에서 미간은 명석함을 의미하는데, 눈썹으로 가리어져 있다면 좋지 않게 보는 이치입니다. 그런데, 위대한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는 일자눈썹이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현대 미술에서 정말 위대한 화가로 꼽히는 그녀가 과연 지혜롭지 않았을까요? 아! 딱 한 가지, 그녀는 자신에게 많은 상처를 줬던 남편 디에고 리베라를 평생을 잊지 못하긴 했네요.

<프리다 칼로 자화상>

  남편 디에고는 프리다 칼로 이상으로 위대했던 멕시코 화가입니다. 근현대 미술에서 디에고 리베라를 빼놓을 수 없지요. 프리다칼로가 내면세계의 고통을 주제로 삼았다면, 디에고 리베라는 당시의 사회현상을 멕시코 특유의 역동적인 화풍으로 웅장하게 표현했습니다. 지금이야 프리다 칼로를 더 많이 알지만, 당시에는 디에고 리베라가 압도적이었지요. 뉴욕 현대미술관 개관 후, 첫번째 개인전이 앙리 마티즈였고 두번째가 디에고 였습니다. 천재 피카소가 세번째였으니 그 명성을 알법하죠?


  사실, 디에고는 사생활이 복잡한 바람둥이라 두 번이나 이혼했고 프리다 칼로와 21살의 나이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프리다 칼로에게 디에고는 부부라는 관계 이상으로 예술세계를 함께하는 동반자였지요. 또 혁명적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적 성향도 같았습니다. 프라다는 디에고를 사랑했다기보다, 디에고의 예술성을 사랑한 것이지요.


  그러다 일이 터집니다. 손에 꼽히는 바람둥이 리베라는 결코 이뤄져서는 안되는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과 바람이 나면서 그녀의 고통은 극에 달하지요. 뻔뻔한 디에고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나는 성격이 괴팍해서... 사랑하는 여자에게 계속해서 상처 주고 싶다. 프리다도 그중 한 명일 뿐이다"


프리다 칼로는 훗날 말합니다.


  "일생 동안 나는 두 번의 심각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하나는 18세 때 나를 부스러뜨린 전차입니다. 부서진 척추는 20년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죠. 두 번째 사고는 바로 디에고와의 만남입니다"


  결국 미련이란 것은 깨끗이 정리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마음 같아요. 그로 인한 고통은 잊어야 할 때 잊지 않았기에 짊어지는 짐이겠지요.


  반면에 반대되는 인물도 있습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성경에서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받지만 그 역시도 큰 실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여인 밧세바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인 우리야 장군을 전쟁터에서 죽게 만든 것이지요.

<램브란트, 다윗과 우리야>

  비겁한 모략으로 밧세바를 차지하여 아기를 낳지만 곧 죽을병에 걸리게 됩니다. 선지자 나단도 다윗의 행위에 대해 크게 꾸짖습니다. 결국, 다윗은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옷을 찢어가며 회개 기도를 하지요. 신하들은 저러다 우리의 왕이 건강을 해치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하게 됩니다.


  그러다 사달이 났습니다. 온몸을 바쳐 기도했지만 결국 아이가 죽은 거지요. 신하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아이를 위해 저렇게 모든 것을 바쳤건만 죽었다는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를요. 성경에서는 이 순간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아기가 살아 있을 때에도 왕은 우리말을 듣지 아니하셨는데, 아기가 죽었다는 것을 말씀드리면 왕이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


  모든 신하들이 말은 못 하고 쭈뼛거리는 모습을 보자, 다윗이 눈치채고 그중 하나에게 물었습니다.


"아기가 죽었소?"


  결국 신하들은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고하게 됩니다. 마음속으로 이제 정말 큰일이 생겼다고 걱정을 하지요.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 자리에서 일어나 씻고 몸에 기름을 바르고 음식을 먹게 됩니다. 신하가 그것을 이상하게 여겨 다윗에게 물어보지요.


  "아기가 살아있을 때는 식음을 전폐하던 왕께서 소식을 들으시고 이리 하시는 연유가 무엇입니까?"


다윗이 대답하지요.

 

  "온몸으로 슬퍼한 이유는 신이 나를 불쌍히 여겨 아기를 살려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기가 죽었으니 음식을 먹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으냐? 그런다고 아기가 다시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나는 아기가 있는 곳으로 가겠지만, 아기가 나에게로 다시 돌아올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다윗은 밧세바를 위로하고 동침하여 아기를 낳으니 그가 바로 솔로몬 왕이 됩니다.


  맺고 끊음이 확실했던 다윗과, 미련이 많았던 프라다 칼로 둘 중에 무엇이 올바른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새 시작을 가능케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창작의 원동력이 되었으니까요. 그렇지만 한 가지는 알 것도 같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미련은 그저 현재의 불만족에 대한 핑계라는 것을요. 일종의 합리화랄까요? 지금 상황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니까요.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해가 떠오릅니다. 어쩌면 묵은해와 새해를 분별하는 게 옳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니 해가 바뀌듯 하지만 푸른 하늘은 늘 그대로니까요. 다만, 새롭게 쓰인 1월 1일이라는 달력을 보면서 지난 시간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는 건 좋은 일이겠지요?


  단테는 불행할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일만큼   슬픔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앞날이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중요한 사실은 과거에 얽매여 지금의 행복을 놓치고 있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겠지요? 지금(present) 신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present)니까요.

* 참고

- This is Art_스티브 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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