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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브리옹 Dec 31. 2019

[후기 르네상스_매너리즘]  7가지 죄악_쾌락

아뇰로 브론치노 <비너스와 큐피트의 알레고리>

 

<비너스와 큐피트의 알레고리>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 특징은 수학적으로 분석된 황금비율을 이용하여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는 점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했던 수많은 화가들이 안정된 구도를 잡고 그림을 그렸지요. 공식화된 구도로 그렸기에 작품이 크게 망쳐버릴 일은 없었고, 그 덕택에 르네상스의 거장들은 빠르고 안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은 나무랄 데 없이 잘 그렸지만, 계속 보면 조금 식상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무척 잘 그렸지만 심심 하달 까요? 미술감상을 취미 삼아 오래도록 본 사람들이 고전 작품이 즐비한 루브르 박물관보다, 근대  오르셰 미술관이나 현대 퐁피두 센터를 찾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 화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르네상스 후기에 이르러 미술사는 다른 양상을 나타내지요. 바로, 시대가 요구하는 그림이 아닌 화가의 느낌을 담아낸다는 점입니다. 그저 잘 그리는 게 아니라, 내 생각과 감정을 캔버스에 표현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지요.


  미술사의 커다란 흐름으로 봤을 때, 르네상스 후기부터 변화의 양상이 빨라졌다고 봅니다. 그리스로마 미술이 500년 이상, 중세미술 역시 1,0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큰 변화가 없었지만, 르네상스 이후부터는 어떤 양식이던 길어야 50~100년의 정도만 유행하지요. 화풍의 경직성이 비로소 깨지기 시작한 겁니다.


  매너리즘은 르네상스 후기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신체를 약 1~2개 마디 정도 길게 늘여 표현하는 양식을 말합니다. 매너리즘은 일반적으로 부정적 어휘로 사용되지만 미술과 건축계에서는 고루한 스타일에서 변화를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지요. 물론, 당시 사람들에게 매너리즘 특유의 길쭉길쭉한 그림들은 분명히 괴상하게 다가왔을 겁니다. 주류 미술계의 비판과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이겨낼 만큼의 용기도 필요했겠지요. 개인적으로 매너리즘 시대의 미술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아뇰로 브론치노는 전성기 르네상스에서 매너리즘 시대까지 활동한 화가로서 세계문화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화가였습니다. 그는 르네상스 시기의 위대한 후원자였던 코시모 1세를 위해 많은 그림들을 그렸고 평생을 궁정화가로서 활동합니다. 그림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피렌체 화가들이 다재다능했던 것처럼, 브론치노는 화가이자 시인이기도 했지요.


  그의 작품들은 문학적인 요소를 특히 많이 담고 있는데, 다양한 상징들을 통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알레고리(은유)의 그림을 즐겨 그렸습니다. 따라서, 그의 대표작 <비너스와 큐피트>에 나타나는 모습들은 많은 이야기와 상징을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지요. 마치 시를 쓴 것처럼 말입니다.


  그림의 구성을 보면, 전경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비너스와 큐피트의 입맞춤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둘 사이는 모자관계로서 일종의 근친 간 키스라고 볼 수 있지요. 그림만 보면 대단히 에로틱해 보여서 풍기문란을 조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주변에는 수많은 경고(알레고리)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가장 먼저, 큐피트와 비슷한 느낌의 오른쪽 소년이 눈에 크게 보입니다. 얼핏 보면 예쁜 장미를 쥐고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가시를 밟고 있지요. 에로틱하고 무절제한 사랑은 본질적으로 상처를 수반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 뒤의 기괴한 얼굴의 소녀는 역시 한 손에 케잌을 쥐었지만, 다른 한 손에는 독침을 쥐고 있지요. 의미하는 바는 마찬가지입니다.


  좌측 위 편에 한 남자는 망토를 들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 순간을 덮어보려 합니다. 하지만, 오른쪽 위의 노인이 방해하는데, 노인의 존재는 시간을 의인화한 것입니다. 우측 어깨 위의 모래시계가 그의 존재를 설명해 주죠. 시간이 지나도 위험한 욕망은 결코 숨길 수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세상의 죄악은 성적인 욕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테는 7가지 죄악으로 쾌락,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탐식을 말했고, 간디는 7가지 죄악으로 철학 없는 정치, 도덕 없는 경제, 노동 없는 부, 인격 없는 교육, 인간성 없는 과학, 윤리 없는 쾌락, 헌신 없는 종교를 말했습니다. 비록, 죄를 짓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잘못된 욕망에 기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죄를 짓는 순간에 "이 정도쯤이야... 설마 걸리겠어?"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바로 이 생각 때문에 나락으로 빠지게 되지요. 역사 속의 수많은 영웅들이 윤리 없는 쾌락으로 인해 몰락한 경우를 수도 없이 봐왔고, 지금도 여전히 잘못된 욕망으로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아마 내년에도 수많은 뉴스들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우리도 성인군자가 아닌지라, 때때로 죄를 짓기도 하고, 유혹에 넘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나약한 인간이니까요. 살다 보면 죄를 짓기도 하겠지만, 무언가 멈칫하게 되는 순간에는 브론치노의 <비너스와 큐피트의 알레고리>를 한 번쯤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이왕 한 번 사는 삶 칭찬은 받지 못할지언정, 지탄을 받으며 살아서는 안되잖아요? 브론치노의 그림에서 말하 듯, 죄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형태로든 드러나게 되니까요.


  마지막으로 한 명의 인물은 마지막에 설명할까 합니다. 바로 큐피트 왼편에 있는 울부짖는 여인 말입니다. 어떤가요? 왠지 그 모습, 윤리 없는 쾌락을 한 자의 종말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비너스가  금단의 사과의 무게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참고

-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화 1001_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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