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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브리옹 Apr 21. 2020

[네덜란드 바로크3] 평범한... 그러나 특별한

얀 베르메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2018. 마우리츠호리스 미술관 후기]

  마우리츠호리스 미술관은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해 있습니다. 헤이그는 역사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봤던, 일제 강점기 당시 독립운동의 의미가 담긴 도시입니다. 현재도 이준 열사가 머물렀던 공간이 박물관으로 잘 조성되어 있지요.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네덜란드 도시 중에 암스테르담 다음으로 가장 유명한 도시로 헤이그를 뽑을 것 같아요.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도 헤이그는 의미가 특별합니다. 바로, 왕정이 존재하는 네덜란드의 궁전이 헤이그에 있기 때문이죠. 경제적 수도가 암스테르담이라면 정치와 행정의 수도는 헤이그입니다. 다만,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잇는 암스테르담-로테르담-브뤼셀의 핵심 교통 라인에서 약간 비껴있지요. 굳이 비유하자면 서울-부산 고속도로 중 포항에 있는 것과 비슷 하달 까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중간에 가 볼 수 있는 대전, 대구와는 달리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방문하게 되는 도시입니다.


  저에게는 그 목적이 딱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얀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봐야겠다는 생각이었지요. 르네상스 초상화를 대표하는 작품이 <모나리자>라면, 바로크에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있다고 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워낙 유명한 그림이기에 바로크 시대 전체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손꼽기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베르메르가 활동했던 네덜란드 황금시대는 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해상 무역을 통해 부유층이 확대되면서 미술 수요가 늘어났고 그 결과 다양한 미술사조가 발달합니다. 크게 4가지로 구분되는데, 램브란트와 프란츠 할스로 대표되는 고급 <초상화>. 튤립 등 수백 가지 꽃들을 화려하게 표현한 <정물화>. 반 로이스달, 얀 반 호옌이 대표하는 <풍경화>. 베르메르로 대표되는 <장르화>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장르화는 선술집, 부엌, 안마당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을 묘사한 그림들입니다. 성경이나 신화의 한 장면을 주로 그리던 바로크 미술에서 또 다른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요.


  작품의 유명세와 달리, 베르메르는 그 명성에 비해서 삶은 그리 알려진 게 없습니다. 생전 많은 작품 활동을 하지도 않았고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작품수도 겨우 30여 점에 불과합니다. 그런 탓에 전업 화가라기보다 미술품 거래상이나 여관을 함께 운영했던 것으로 추정하지요. 작품수는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베르메르는 미술사에서는 매우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겨우 수십 점의 작품만으로 미술사를 대표하는 최고의 화가로 꼽히지요. 무엇이 그를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걸까요?

<우유를 따르는 여인>

  그의 작품들의 살펴보면 일상의 모습들을 밝은 빛으로 투영했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집니다. 빛으로 반사된 사물의 질감 표현이 탁월했지요. 그의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며 고요하면서 정적입니다. 마치 이 세상이 잠깐 정지되어 있는 듯 순간적으로 모든 게 멈춰버린 느낌이랄까요? 그러면서도 하이라이트를 준 부분들은 반짝거립니다. 소녀의 진주 귀걸이 부분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푸앵틸레라고 불리는 일종의 점묘법인데, 작은 점들 얇게 칠해서 더욱 드라마틱하게 표현했지요. 그가 빛의 화가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그의 뛰어난 표현법은 실력뿐만 아니라, “장치”의 도움을 받아 극대화할 수 있었던 점도 있습니다. 당시 카메라 옵스큐라는 기계가 발명되었는데, 렌즈와 거울을 활용해 풍경을 평면에 투영시킬 수 있었지요. 베르메르가 빛의 성질을 잘 이해할 수 있었던 비결도 카메라 옵스큐라는 장치를 사용한 덕분입니다. 다만, 베르메르는 풍경을 완전히 똑같이 그려내기보다는 본인의 느낌을 중심으로 하면서 빛의 방향성 정도만 참고했기에 더욱 고급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작품수가 적고 당대에 유명세를 떨치지는 않았지만, 19세기에 이르러 귀스타브 쿠르베를 포함한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들이 그를 열광적으로 좋아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휘황찬란한 바로크의 역사 가운데 담백하고 순수한 빛의 모습을 그려낸 모습이 얼마나 매혹적이었겠어요? 자연주의적이면서 현실 세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의 화풍은 사실주의뿐만 아니라, 인상주의에도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 그의 대표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그의 모든 기법이 잘 녹아 있지요. 워낙 유명한 탓에 한 번쯤은 봤을 법합니다. 북유럽의 모나리자라는 별칭도 갖고 있지요. 웃는 듯 웃지 않는 표정이 보는 관점에 따라 다채롭지 않나요?


  이 작품의 실존 인물이 누구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이론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없다”입니다. 상상 속의 인물로는 뜻입니다. 좀 아쉽죠? 실존 인물이었다면 두고두고 회자되었을 법 한데 말이지요. 당시 네덜란드 화가들 사이에는 '트로니'라는 것이 유행했었는데, 가상의 인물을 그리는 것을 말합니다. 비록 존재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상상력으로 인물을 그려가면서 화가의 감정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 이죠. 가만 보면 서양 여성이 동양의 터번을 둘러쓰고 있는 점이 특이하긴 합니다. 화가의 상상력이니까 가능했겠지요.


  17세기에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화가의 상상력으로 그려졌다면 21세기에는 또 다른 상상력을 더하여 영화까지 제작됩니다. 어쩌면 영화라는 힘을 빌어 그녀의 실존을 믿고 싶었던 걸까요? 콜린 파월과 스칼렛 요한슨이 열연한 영화에서도 그림의 느낌만큼이나 섬세하고 잔잔하게 다가옵니다.

 

  각 장면은 베르메르의 작품이 그러하듯 실내에서 잔잔한 빛이 투영되는 미장센으로 이뤄집니다. 18세기 네덜란드 풍경들이 보이고 지금도 유명한 델프트 도자기들도 멋스럽게 그려집니다. 그리고 미스터리했던 베르메르의 삶도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베르메르와 아름다운 소녀인 하녀 그리트와의 미묘한 감정선도 백미지요. 영화의 많은 장면이 기억이 남지만 둘이 작품을 두고 이야기를 서로 나누던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베르메르는 그리트에게 묻습니다.

“구름은 무슨 색이니?”


그리트는 대답하지요.

“흰색이요...”

그리고 잠시 뒤에 다시 대답합니다.

“아니요, 노랑, 파랑, 그리고 회색... 구름에도 색깔이 있네요”


베르메르는 얇게 웃으며 화답합니다.

“너도 이제 보이는구나”


  그리트의 타고난 예술적 감각은 베르메르에게 영감을 주면서 서로 가까워집니다. 소녀에게 관심 있는 주인. 주인에게 관심 있는 소녀. 사랑인지 관심인지 알 수 없지만 애틋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런 두 사람의 사이는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점점 다가가 둘만의 감정을 만들어 냅니다. 특히, 영화 종반부에서 그리트의 초상화를 그리는 장면에서 베르메르가 진주 귀걸이를 귀에다 꽃아 주고 그림을 완성하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지요. 그리고 하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화가의 아내가 오열하는 마지막 장면까지도...


  비록 영화는 허구지만 베르메르가 바라보던 평범함 속의 특별함은 작품으로 남았습니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 그러하고 <연애편지> 속 편지를 건네받고 깜짝 놀라는 여인이 그러합니다. 그의 작품은 모두 평범한 일상이지만 마음속이 남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 무엇... 아마 평범한 일상에서의 평안함이겠지요. 우리 삶도 그런 것 같아요. 모두가 특별하길 꿈꾸지만 정작 바라는 것은 단순한 행복입니다. 미래의 막연한 희망은 현재의 구체적인 실망으로 다가올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행복은 확실하지요.


  베르메르의 그림이 감동적인 것은 무척 평범한 일상도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터벅터벅 길을 걷는 바로 이 순간. 글을 읽으며 상념에 잠기는 이 순간. 가까운 사람과 대화하는 이 순간… 모든 평범한 순간들이 베르메르의 관점에서는 소중하고 특별합니다. 작은 것에도 의미가 부여되고 돌이켜보면 소중했던 시간이지요.   


  행복은 절대적인 게 아니라 상대적인 것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지금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그러하고요. 시간이 흐른 뒤에 돌이켜보면 그때가 행복했구나... 싶을 때가 많아요. 아침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던 학교 가던 그 길. 친구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잔잔한 음악이 흘렀던 그 카페. 언제쯤인지는 생각은 안 나지만 환하게 미소 짓던 우리의 모습들.


  늘 좋은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백일홍이 가득했던 그날...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했던 그 시간은 평범했지만 특별했습니다. 비록 그 날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소소하지만 행복했던 그때는 늘 잊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하겠습니다.

[참고]

- 세상을 비추는 거울, 미술_줄리언 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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