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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브리옹 Jun 28. 2020

[16C, 한국화] 수선화에게

신사임당 <초충도>

신사임당 <초충도>

[2017년 서울미술관 전시]


  뜨거워지는 요즘에 청량한 분위기를 느껴볼 요량으로 부암동을 찾았습니다. 서울이지만 인왕산 뒤편에 조용히 자리 잡은 그곳. 자하문 밖 서쪽 골짜기에 바위, 계곡으로 어우러져 있었던 마을로 수석(水石)이 맑고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지요. 중국의 무릉도원(武陵桃源)의 계곡처럼 생겼다 해서 무계동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습니다. 처음은 바위가 파도처럼 밀려온다는 석파정에 가보려 했는데, 함께 위치한 서울미술관을 거쳐야만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술관도 함께 찾았습니다.



  부암동에 위치한 서울미술관은 큰 규모가 아니었지만 소소한 풍경과 어우러져 작지만 따뜻한 감성이 느껴지는 곳이었지요. 공교롭게 전시회가 교체되는 과정 중에 있어서, 두 개의 전시를 한 번에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신사임당의 진품을 만났지요.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보던 <초충도>를 실제로 바라보니 고매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생각하지 못했던 국보급 작품을 바라보니 뜻깊게 다가오더군요. 예로부터 기대가 작으면 만족이 크다는 그 말이 참 맞는 것 같아요. 더구나,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미술을 담당했던 오순경 작가의 작품도 함께 전시되어 500여 년을 사이에 두고 16세기와 21세기를 비교하며 볼 수 있는 것도 특별했습니다.


오순경 <국화초충도> / 얀 브뤼헬 <flowers in a vase>


  신사임당의 대표작을 바라보니, 서양 미술의 정물화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꽃다발이 가득 담긴 유럽 특유의 정물화는 17세기 초, 네덜란드가 무역사업으로 성공하고 튤립 값은 폭등할 때, 유행하게 됩니다. 많은 귀족들이 집에 장식할 목적으로 많이 구입하지요. 실제로 바라보면 캔버스에서 생명력이 느껴질 만큼 세밀하게 표현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동양화가 주는 느낌과는 다르지요. 뭐랄까... 예쁜 마네킹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요?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느껴지진 않습니다. 그런데, <초충도>는 다릅니다. 꽃을 그렸으되, 단순한 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곤충 모습도 그냥 한 마리의 벌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의미를 가집니다. 꽃에게 꽃말이 있듯이요. 동양의 작품들은 색(色) 보다는 선(線)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덕분에 서예도 예술의 경지에 이르지요. 붓 한 획에도 혼신을 쏟는데 그림은 말할 나위 없겠지요? 그림에서 특정한 모습이 상징화되는 것을 도상이라고 부릅니다. 신사임당의 작품에도 많은 상징들이 화첩을 채우지요. 가령, 나비는 남녀를 의미하고, 꽃은 발복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림의 해석이 이렇게 가능하지요. "남녀(나비)가 청춘(패랭이꽃)에 연을 맺어 발복(양귀비꽃)하면 오래도록(장수하늘소) 즐거움(달개비꽃)이 있을 것이다"라고. 다양한 모습들이 개별적인 의미를 갖되, 전체적인 어울림도 함께 고려하여 조화롭게 그려낸 것이 <초충도>입니다. 서양화에 비해 투박하지만 의미가 깊어 오래도록 곁에 두고 감상할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지요.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는 예술가의 삶에 가까웠습니다. 아버지는 그녀의 재능을 귀하게 여겨 시집을 보냈어도 시댁으로 출가시키지 않고 도리어 사위를 처가살이시켰습니다. 그래서 사윗감을 출세 지향적인 사람이었다기보다, 조금 무능하되 사임당의 재능을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선택했지요. 율곡 이이는 예외였지만, 신사임당의 삶에서 남편은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고 장남도 믿음직스럽지 못했습니다. 하기사, 안타까운 것에 정이 가는 게 사람 마음 아니겠어요? 그래서 <초충도>는 관직과 다산을 기원하는 작품들이 많았나 봅니다. 신사임당의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았던 소망을 화폭 위에 정성스레 담아내지요.


  신사임당의 작품이 400년 이상 된 작품임에도 현대까지 잘 보존되고 이유는 감지라는 종이 덕분입니다. 금(金)지 다음으로 가장 좋은 품질의 종이었다지요? 당시로서 고가의 종이를 선택하고 비싼 염료를 구해 그렸을 신사임당의 간절한 마음이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변하지 않는 가치를 화폭이 담았기 때문일 겁니다.


  세상에 많은 것들이 변하지만 그중에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인내, 순수, 사랑 같은 미덕도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의 '뒷모습'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사람의 마지막은  머릿속에 남습니다. 그래서 조병화 시인은 늘 '헤어지는 연습 하며 사세'라는 시를 남기셨던 것 같아요. 첫인상만큼 중요한 것이 마지막 모습입니다.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목... 서로 다하지 못한 인연이었으나 인생이 그러하거니와,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떠나는 일 이니까요.


  슬프게도 뒷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은 내가 혼자임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정호승 시인은 수선화에게 말합니다. 울지 말라고.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공연히 오지 않을 전화를 기다리지 말아야 하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홀로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지요. 가만 생각해보니, 이제껏 만났던 인연 중에 작별인사를 한 적이 얼마나 되는지도 돌이켜보게 됩니다. 간혹 얼버무릴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감사의 말이라도 전할 걸 그랬습니다. 길었던 짧았든 간에 함께 시간을 보냈던 추억은 소중합니다.


  누구나 자기 소망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입니다. 안정되고 편안한 삶일 수 있고,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일 수도 있지요. 그렇게 희망을 품고 자신만의 감지 위에 그림을 그려나가고 원하는 것들이 하나 둘 모습으로 나타날 때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모두가 붓을 들었다고 그림을 완성시킬  있는  아닌  같아요. 꿈을 꾸는 대로 그림을 완성시켰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꼭 이루어야 하는 꿈만 꾸는 건 아니잖아요? 미완성의 그림일지라도 의미를 그려나가는 시간만큼은 행복했습니다. 


  사람의 느낌이 첫인상으로 결정된다면, 사람의 뒷모습은 평생의 기억으로 남습니다. 그 뒷모습은 평소의 언행일 수도 있고, 작별의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좋은 모습으로 남길 바라고, 상대방도 그렇게 기억되었으면 좋겠어요. 각자 그려나가던 도상이 달랐고 붓질이 서툴더라도 그 안에 담긴 나비와 달개비꽃은 진심이었을 꺼라 믿습니다.


  정호승 님의 <수선화에게>라는 시집에 영감을 받아 글을 쓰며 느끼건데, 시인은 글에 마음을 담아 뒷모습을 완성시키고 화가는 그림에 소망을 담음으로써 변하지 않는 가치를 이룹니다. 우리 삶에서 많은 것들이 변할지라도 진심만큼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 믿어요. 그것이 인생의 <초충도>를 그려내는 일이고 아름다운 뒷모습으로 기억되는 일입니다.


  처음보다는 마지막이 따뜻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뒷모습을 떠올릴 , 웃음으로 가득했던 사람이면 더더욱 좋겠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고 쉽게 변해도 뜨거운 여름, 호랑나비 한 마리와 백일홍이 아름답게 만나 꽃을 틔우는 그림 한 점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그것이 미완성일 지라도 나비는 언제나  자리에 있을 테니.


신사임당 <귀비호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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