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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브리옹 Dec 19. 2020

[18C, 프랑스 낭만주의2] 후회하지 않아요

시몽 제라르 <다프니스와 클로에>

시몽 제라르  <다프니스와 클로에>, <큐피트와 프시케>

 

 프랑스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보통 에펠탑, 세느강, 와인 같은 걸 떠올리지 않을까 합니다. 공통적으로 애정 어린 느낌이지 않나요? 비록, 낭만주의가 개혁이라는 시대적 요구로 탄생하긴 했지만 프랑스인에게 남녀 간의 사랑을 빼놓고 미술작품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겁니다. 낭만주의 시대(Romanticism)에 그려진 그림은 얼마나 로맨틱(Romantic)할까요?


  <다프니스와 클로에>를 그린 시몽 제라르는 신고전주의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당대 최고의 화가이자 신고전주의를 창시한 자크 루이 다비드의 문하생이었던 탓에 그 영향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그의 대표작들을 보면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그림이 많습니다. 비록, 신고전주의 화풍으로 그림을 배웠지만, 애틋한 감정을 화폭에 담아내는 것은 신고전주의 이상의 무엇이라고 봐요. 분명히 시몽 제라르는 로맨티스트였을 겁니다.


  그림의 내용은 소년/소녀였던 다프니스와 클로에가 점차 성장해나가면서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내용입니다. 예전 영화 <블루라군> 스토리와 비슷합니다. 남녀관계에 대해서 지식이 없던 풋풋했던 그들이 어떤 위기를 겪으며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진실한 사랑을 이룬다는 내용이지요. 그래서 다프니스와 클로에를 주제로 다룬 작품들은 홍조가 발그레한 첫사랑 같은 분위기의 작품이 많습니다. 확실히 낭만적이지 않나요?


  프랑스 낭만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샹송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 많은 대중가요가 있지만 샹송은 정말 낭만적인 장르인 것 같아요. 프랑스어 특유의 발음과 잔잔한 멜로디 덕분이겠지요. 그 유래를 따지자면 11세기 중세시대에 교회가 사용하던 선교용 노래라고 하지만, 15세기 이후부터 음유시인과 민중가요로서 역할이 컸습니다. 더 나아가 19세기 문화 황금기였던 벨 에포크 시대에 이르러 완전히 대중가요로 자리 잡습니다.


  

  그중,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는 샹송을 아는 분이라면 분명히 알만한 노래입니다. 설사 모른다 해도, 영화 <인셉션>에서 쓰였던 곡이라면 알까요? 이 노래를 부른 피아프는 프랑스를 대표했던 가수였습니다. 그녀의 삶은 영화 <라비앙 로즈>를 통해서도 잘 나타나지요.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가 프랑스였고, 상징적으로 그녀의 삶과 노래들이 마음으로 다가왔습니다.


  <라비앙 로즈>는 장밋빛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그녀의 대표곡이지요. 어린 시절 그녀는 노래에 소질이 있었는데, 작은 클럽에서 노래를 시작한 게 계기가 되어 가수가 됩니다. 150cm의 작은 몸짓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가 참새를 연상케 하여 같은 뜻의 피아프라는 닉네임도 얻게 되지요. 그 뒤 프랑스 최고의 시인 레이몽 아소를 만나 고된 훈련을 받고 감정까지 담아내는 위대한 가수가 됩니다. 원래 가수는 자기 노래처럼 산다고 하잖아요? 영화에서 보이는 그녀의 삶은 사랑의 처음과 끝. 그 자체인 것 같았습니다. 노래에서 그녀는 말합니다.


“그가 나를 안아줄 때, 그가 매혹스럽게 속삭여요. 이게 바로 장밋빛 인생이지요... 그가 내게 키스를 해줄 때, 천국에 있는 것 같아요. 나는 눈을 감고 장밋빛 인생을 보지요... 나에게 심장과 영혼을 주세요. 그러면 나는 항상 장밋빛 인생일 거예요”


  그녀의 대표 곡들처럼 사랑에도 성공했을까요? 슬프게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이브 몽땅을 만나 사랑에 빠져 <라비앙 로즈>를 작사했지만 이브 몽땅은 그녀를 배신하고 떠나갑니다. 특히 또 다른 대표곡인 <사랑의 찬가>은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권투선수 마르셀을 비행기 사고로 잃고 나서 부른 노래지요.


"나와 당신의 인생이 갈라진다고 해도, 만약 당신이 죽어서 먼 곳에 가 버린다고 해도,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내겐 아무 일도 아니에요. 나 또한 당신과 함께 죽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끝없는 푸르름 속에서 두 사람을 위한 영원함을 가지는 거예요. 아무 문제도 없는 하늘 속에서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사랑에 기쁨만 존재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닐 겁니다. 맵고 쓰고 차디찬... 그러나 달짝한 그 모든 감정이 사랑이지요. 솔직히, 사랑이라는 주제로 선뜻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을 경험하기에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은 다양하니까요. 다만, 제가 느끼는 사랑은 기쁨보다 아픔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미술에 관한 글을 쓰면서도 사랑을 주제로 쓴 적이 별로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우습죠? 그 어떤 영역보다 감성적인 미술에서 가장 좋은 주제를 외면했다는 게.


  불안했던 예감은 틀린 적이 없고, 억지 노력은 늘 허탈함으로 남습니다. 사랑은 늘 그렇듯 한발 늦게 오고, 아픈 이별은 서둘러 찾아오더군요.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생각이 많아지나 봅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이것저것 잰다고 말하지만, 사람을 향한 마음을 일으키기 위한 시간 또한 필요한 걸 어떡하나요.


  이런 게 사랑이구나.... 하고 깨닫고 보니 이제는 혼자인 게 익숙해지더군요. 사랑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피아트의 노래가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사랑할 사람이 없다며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콧대가 높은 사람이라기보다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윌리웜 부게로(좌), 마르크 샤갈(우) <다프니스와 클로에>


  소크라테스는 사랑은 완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그림 속 <다프니스와 클로에>는 각자 고아였고, 외로웠기에 서로에게 의미가 되었습니다. 사랑은 융합이 아니라, 찾음이기 때문이겠지요. 사랑은 충만한 완성이자, 극도의 결핍이기도 합니다. 가장 밑바닥 부족하고 헐벗고 아쉬운 내 마음의 작은 밭에 조그마한 햇살과 물방울이 스며들 때 일어납니다. 출발점은 바로 그곳에 있지요.


  그 한 모금의 물과 따스한 햇살 때문에 우리를 미치게 하고, 배고픔과 갈증에 시달리게 하고, 우리를 흥분시켜 포로로 만들어 버리는 열정! 하지만 그것을 어쩌겠나요?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지 못한 것을 욕망할 뿐인데 어떻게 얻을 수 있나요? 결핍이 지배하는 사랑은 고통이 따르고, 더 이상 결핍을 느끼지 않는 연인은 서글픕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을 아쉬워하는 것이고, 계속 곁에 있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이기적이고 또 순수한 욕망이지요.


  피나는 노력의 피아프는 타고난 재능을 가진 이브 몽땅에게 반할 수밖에 없었고, 고질적 관절염으로 약물까지 중독되었던 피아프는 건장하고 힘이 넘치는 마르셀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의 대상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어요. 이브 몽땅이 떠나갈 때 그의 재능을 축복했고, 유부남이던 마르셀의 가정을 파괴하지 않았지요. 사랑의 시작은 결핍이지만 그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 더 많은 것들을 기꺼이 내려놓음으로써 사랑을 완성시켰습니다. 피아프는 사랑의 순간마다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 같아요.


"나를 더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하나만 더 채우면 나 자체로서 꽉 찰 수 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요. 그 하나 앞에서 망설이게 됩니다. 아흔아홉의 나보다 하나의 당신이 더 크게 빛나고 아흔아홉의 공허함이 하나의 충만함으로 살아남습니다. 하나로서 완전하고자 했던 나는 결국 당신의 한 조각이었던 가요... 나를 그렇게도 사랑하고자 했던 나는 결국 당신이던가요"


  과거의 기억 때문에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한다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자신의 콤플렉스를 마주하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드러낼 때 시작하지요. 상대방의 약한 모습을 이해하고 감싸 안을 때 사랑은 깊어집니다. 사랑을 쌓아간다는 것은 곧 서로의 아픔을 위로해 준다는 것과 같은 말이겠지요. 상대에게 모든 걸 걸었던 사랑에는 후회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약, 후회되는 순간이 오직 하나 있다면 남아 있는 그 사랑을 온전히 전하지 못한 마음이 미련하게 남을 때 일 거예요. 그 사람의 상처를... 그 사람의 아픔까지도 감싸지 못한 후회.


  사랑 없이도 주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주지 않고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떠나는 그 순간까지 마음을 내어준다는 것... 이별을 마주하는 그 순간까지도 그 사람의 마음이 진정이라면 그 사람 생각대로 될 수 있게 소망하는 마음. 내 힘으로 하려 했던 모든 기도 거두시고 그 사람의 뜻대로 되게 기도하는 마음. 그게 바로 장밋빛 인생이고 사랑의 찬가이며 후회하지 않을 사랑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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