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하지 못함이 가장 큰 괴로움이다.

by 하바나

신뢰하지 못함이 가장 큰 괴로움이다. 세상의 불행에는 한계가 없고 그 불행을 막아내는 나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니, 결국 언젠가 불행을 마주해야 하는 운명을 지닌 존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신뢰다. 나의 인생이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 죽음을 넘어선 생명을 살아낼 수 있다는 것,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것을 신뢰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지만, 결코 쉽지 않다. 한계를 지닌 존재가 온전히 보고 듣고 느끼지 못함에도 믿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냥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련의 연단과 경험이 만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죽고 싶다는 것도 결국 못 믿겠다는 말이다. 일종의 저항, 반항이다. 나는 요즘 신에게 따지고 있다. 무엇을 어찌하라는 겁니까?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을 만들어 놓을 작정이었다면 왜 그때 그 일을 주관하신 겁니까? 그러면 신이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싶다. 너가 어떻게 해볼 도리는 없다고. 사실 너가 할 수 있는 일은 믿는 것뿐이라고. 보통은 깨달음을 얻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지거나 속이 시원해지곤 했다. 그러나 어째 이번에는 마음에 거부감이 든다. 고통을 감내하고 수용한다는 것은 벅찬 일이다. 울다가, 화를 내다가, 무기력했다가, 염세주의에 빠졌다가, 간절했다가.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데 에너지가 보통 드는 게 아니다. 그러나 탈진하면 '아... 힘들어' 소리가 절로 나온다. 힘이 든다. 고통은 헛되지 않다고 내가 읽은 책에서 그랬는데 이 고통들이 다 헛되지 않으려면 아주 단단한 보상이 있어야 할 거다. 맘에는 안 들지만 결국 믿어버리는 게 최선이고 그래서 난 좀 삐딱하게 믿음에 발을 걸쳐본다. 언젠가 환호와 감동과 춤이 절로 나는 기쁨으로, 이 고난에 비할바가 안 되는 영광으로 제발 내 삶을 가득 채워주시기를... 그게 죽음 이후라면 죽음 이전에 맛보기라도 보여주셔서 험한 세상 좀 버틸 수 있게 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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