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회피가 후회된다.

by 하바나

나는 한 때는 회피했고 한 때는 직면했다. 그리고 지금 그 결과를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과거는 현재에 늘 영향을 주기에 아쉬움은 항상 남는다. 그리고 아쉬움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진다. 더 잘하고 더 견뎌낸 사람들과 비교하며 이러한 준비 없이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 두려워진다. 그러다 보면 우울해진다. 후회되지만 과거를 바꿀 순 없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뭐 그렇게 크게 달라질까 싶기도 하다.


우리 마음에는 고통을 감내하고 성장하고 싶은 욕구와 고통을 회피하고 싶은 욕구가 공존한다. 만약 회피하고 싶은 욕구가 100%라면 우리는 성장하지 못한다. 아니 퇴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회피하고 싶은 욕구가 0%라면 어떻게 될까? 아마 계속해서 고통에 직면하다가 병에 걸리거나 쓰러지거나 삶에 지장이 가고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다. 이게 회피욕구가 있는 이유이다.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회피는 꼭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나의 회피를 무작정 욕하고 미워하기만 한다면 회피욕구는 좀 억울할 수 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생존하려고 그런 것뿐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 욕구도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구를 수용해야 그 미움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물론 다른 한 편의 성장욕구도 들여다봐주어야 한다. 회피에 대한 아쉬움은 균형을 잡기 위한 욕구의 외침일 수 있다. 그러면 그 소리를 들어주면 된다. 나는 성장하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기를 스스로 누구보다 원하고 있고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감당하겠다고 결단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완벽하게 두 욕구가 조화를 이루는 때가 얼마나 있을까? 늘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사는 게 인생일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회피해 왔던 날이 좀 길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면 그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그만이다. 타인과의 비교는 의미가 없다. 헬스장에서 10킬로 들 수 있는 사람이 50킬로 들 수 있는 사람을 부러워해서 10킬로 드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 얼마나 바보 같은 행동일까? 10킬로라도 열심히 들어서 15킬로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나아가면 그만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