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지 않아요

하지만 해칠 수도 있어요

by 교씨

내가 그녀에게 그랬듯이, 부모님이 나에게 그랬듯이.

내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생명이 생명에게, 생명이 자연에게, 다시 자연이 생명에게.

우린 살아 움직이는 것들과 맞닿으면 다양한 방식으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나의 전부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사람은 해치지 않는 전제로 만나고, 키우고, 기르고, 살리고, 버린다.

하지만 전제라는 건 언제나 뒤집어질 수 있다는 걸 살아내면서 알게 된다.

누군가 무심코 건넨 해[害]를 덜컥 받아버리고는, 그것이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직까지도 고이 잘 간직하며 살아간다.

그러곤 틈틈이 그 못난 보물단지를 열고, 꽉 끌어안은 채 고통 속으로 잠겨간다.

끌어안은 내 가슴속에서는 점점 못나고, 매서운 가시들이 돋아난다.

그러면 나는 또 다른 이에게 복수라도 하 듯, 너무나 쉽게 그 해를 넘겨 버리곤 한다.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 줄 알면서도, 너무나 쉽게.

녀석을 건넨 기억은 도무지 잊히지 않는다. 도리어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 또렷하고, 생생하게 남는다.

그때의 추운 공기, 그 사람의 표정, 떨리는 목소리, 눈물.

상처를 건넨 사람에게는 몹쓸 기억과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뒤섞인 감옥에 갇혀 벌을 받는다.

벌이라 해봐야 그 사람이 받았을 고통에 반이나 될까, 하지만 치사하게 그마저도 감히 괴로워 몸부림친다.

그래서 항상 도망치기 바빴다. 더 이상 괴롭고 싶지 않고, 죄인이 되기 싫어서.

주변에 사람이 많지도 않으면서 친구도, 가족도 멀리했었다.

가까운 존재일수록 녀석을 넘기기는 너무나 수월했고, 조그마한 가시 하나가 곧 염증을 만들고는 무척 아프게 하고 힘들게 했기에.

그게 나도 살리고 상대방도 살리는 길이라 생각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나부터 좀 살고 싶었다.

누구와 있어도 견디기 힘들었고, 티 내지 않으려 감춰둔 가시가 삐죽 튀어나와 당황해하는 내 모습이 싫었다.

사람이 보내는 눈빛, 목소리, 말투, 태도, 사소한 낌새에도 그것들은 점점 몸을 불려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들이 흉기를 든 것도, 욕을 뱉은 것도, 매서운 눈초리로 째려보는 것도 아닌데, 왜 난 그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걸까.

정작 봐야 할 자기 자신의 눈치는 팽개친 채.

연고도 없는 도시로 이사를 와서 혼자 보내는 시간은 늘어만 간다.

혼자 있으면 누구에게도 녀석들을 물려주지도, 물려받지도 않을 수 있게 된다.

그럼 나아질 줄 알았다. 그렇게 사람을 피하고, 그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으면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가끔 혼자 있는 시간과, 늘 혼자 지내는 것은 사뭇 다르다는 걸 알았다.

외로움에 점점 자신이 가여워져 가고, 어딘가 텅 비어 채워지지 않고, 사람에 대한 굶주림은 커져간다.

결국 사람은 사람의 온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나 보다.

녀석이 두려워 피해봤자 내게 남은 흉터가, 네게 생긴 흉터가 사라지진 않는다.

그렇다면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올 녀석을 앞세우기보다, 너와 내가 가진 흉터를 보여주고, 이야기하고, 온기를 나누고, 사랑으로 덮어줘야겠다.

내 마음에 자란 뾰족한 가시도 결코 나 혼자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상대의 가시 또한 누군가가 필요할 것이다.

그럼 우리 서로 사랑의 사포질을 해보는 건 어떨까. 뾰족하고 감추고 싶었던 가시가 조금씩 조금씩 둥글어지지 않을까.

어떤 모습이라도 지금의 나를, 당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치지 않아요, 그런데 해칠 수도 있어요. 미안해요. 그래도 우리 남겨질 아픔보다는, 피어날 사랑에 집중해 보는 게 어떨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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