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

by 교씨

하늘이 먹구름으로 뒤덮인 날이면, 우린 먹구름 아래의 비치는 세상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늘 보고 느끼는 삶은 먹구름 아래에서 보는 세상과 비슷하다.

칙칙한 행복과 불안, 미소, 외로움.

뚜렷한 색깔과 모양 없이, 오롯이 어두컴컴한 회색빛으로 일관된 감정.

순백의 상태로 모든 것을 껴안아보면, 과연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자격지심과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질투, 그리고 냉소와 비겁함, 온통 더러움을 담은 렌즈를 벗어던지고, 깨끗해진 눈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무엇이 눈앞에 펼쳐질까.

내가 깨끗했던 적이 있었나. 척이 아닌 정말 순수한 깨끗함을.

궁금하다. 썩어가는 나의 뇌와 심장에서 풍기는 고약한 악취가 사라졌을 때, 느껴지는 감정들이 어떠할지.

사랑이라는 말이 난무하는, 그 흔해빠진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될까.

나는 사랑을 비장하고 무거운 마음으로만 여겨서 인지 아직까지 낯설고 버겁다.

순백이라는 것은 있긴 한 걸까.

새하얀 것을 보지 못하고, 그 뒤에 어떤 까만 것들을 숨겨 놓은 것은 아닌지 찾아내기 바쁘다.

순백의 상태가 되려면 속세를 떠나, 소로처럼 아무도 없는 숲속으로 들어가 나무로 집을 짓고 살면 되는 것일까.

인간이 아닌 숲속의 생명체들과 이웃으로 지내면서 말이다. 적어도 그들에게서 이면의 모습을 애써 찾으려 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악취를 맡은 숲속의 까마귀들이 나를 산 채로 쪼아 먹을 수도 있다.

나의 뇌로 시작해 탁한 적갈색 심장과 기다란 몸뚱어리를 조금씩 고통스럽게.

그 자리에는 새하얀 뼈들이 숨도 안 쉰 채 누워있겠지.

그럼 비로소 내가 그토록 바라던 순백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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