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 다니는 마음
주행성인 나의 하루는 어김없이 명을 다해가고 있다.
오늘도 평소와 같이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을 한다.
출근해서는 뜨끈한 블랙커피 한 잔을 준비한다.
아침을 시간 내어 먹을 부지런함이 없어 견과류 한봉을 커피와 함께 곁들인다.
갓 내린 뜨거운 커피 한 모금이 기분 좋은 향을 데리고 입안에서 은은한 아침 구보 한 바퀴를 도는 것만 같다.
러닝이 유행인 것을 아는 건지.
그렇게 일을 하다가 중간중간 푸른 잎을 뽐내는 나무들 곁에 있기도 하고 햇빛이 따가워질 때면 그들이 만들어준 그늘 밑으로 숨기도 한다.
잠시나마 의식적인 쉼을 갖는다.
가만히 서있기도, 앉아있기도 한다.
나뭇 잎 사이로 부드럽게 떨어지는 햇볕을 쬐며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
그런 의식마저 없으면 정말이지 머릿속은 항상 바빠서 얼굴 보기가 힘들다.
나도 모르는 어떤 큰 사업을 벌이는 걸까.
이렇게라도 강제로 휴식시간을 주지 않으면 이 친구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나의 저질체력까지 소모시킨다.
그렇게 기다리던 퇴근을 한다.
퇴근을 하면 내가 깨어있는 시간의 반 정도가 남는다.
이 중대한 시간을 나는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매번 고민한다.
무엇을 해야 기다려주던 시간이 서운해하지 않을까.
그래봤자 항상 비슷한 하루가 되어버리곤 하지만.
일하며 흘렸던 땀은 어느새 말라있고 땀이 마르며 남긴 체취가 코 끝에서 약 올리기 시작한다.
자주 나의 숙주가 지시하는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 채 체취와 함께 집을 훑어본다.
사실 훑어보고 정리한다 해도 마음은 편치 않다.
편하기 위해서 한 행위가 아닌 해야만 해서 한 것뿐이니까.
땀이 언제 흘렀는지 모르게 뽀송해진 몸을 씻긴다.
목욕시간을 느긋하게 즐기기보다는 저 멀리 떠나있는 바쁘신 마음을 놓칠 새라 그리 즐기지 못하는 편이다.
마음은 항상 제 자리에 있기보다는 어디론가 도망가기 일쑤였다.
그 마음은 헬스장으로 먼저 향하고 있었다.
노동으로 인한 피로해진 몸을 잠시 쉬고 싶었지만, 할게 산더미인 마음은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머릿속도 마음도 어질러진 상태로 헬스장으로 향한다.
건강하지 못한 완벽주의로 인해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편이다.
운동도 이 혜택을 피할 순 없었다.
퇴근한 몸을 마치 주말에 늦잠을 자고 취할 대로 취해버린 휴식을 방패 삼은 쌩쌩한 몸처럼 완벽히 수행해 내야 한다는 억지.
억지는 결국 지금 하는 운동시간의 집중을 흩트려 놓았다.
마음은 그렇게 또 혼자 바삐 집으로 향하고 있다.
그럼 나도 얼렁뚱땅 타협을 하고선 집으로 향한다.
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찝찝함은 곧 내 뒤를 따르곤 했다.
지금 이 시간들은 마음이 떠나버렸다는 이유로,
지금을 누리지 못한 시간들은 쌓여만 간다.
그 쌓인 시간들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시간들은 쌓여서 소화가 안됐을 텐데, 그에 반해 내 배는 텅 비어 예민해져간다.
보통은 만들기 간편하면서도 영양가가 부족하지 않은 간장 계란밥이나 냉동 닭 가슴살을 삶아 먹는다.
반찬은 김치와 김이면 충분하다. 혼자 사는 나에겐 나름의 최선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노트북을 열고 유튜브를 뒤적거리며 저녁식사를 한다.
음식이 주려는 깊은 맛은 느끼지 못한 채 표면에 맛만 빠르게 느끼며 삼킨다.
마음은 이미 밥을 다 먹고 또 다른 일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제 끼니까지 해결했겠다.
또 어떤 일을 벌이려고 하는 걸까.
침대에 앉아 기댄 채 딱히 울릴 일 없는 휴대폰을 뒤적거리며 일정 시간을 보낸다.
책장에 있는 안 읽은 책들 중에 지금 기분에 맞겠다 싶은 한 권을 골라 읽을 때도 있고,
계속 미루게 되는 영어 공부를 한다거나,
아니면 지금처럼 글을 쓴다.
너무 어둡지 않게, 스탠드에게 은은한 조명을 맡긴다.
턴테이블 스피커에겐 재즈를 맡긴다.
좋아하는 컵에 물을 따라 노트북 옆에 놓는다.
마음이랑 사이좋게 함께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이 시간만큼은 엉덩이가 좀 쑤시지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앉아있다.
그리고 쓴다.
생각하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고뇌하기도 한다.
도저히 글이 막힐 때는 포기하고 싶다가도, 이내 다시 뚫어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이렇게나 한마음 한뜻일 때도 있네 하고 새삼스럽기도 하다.
그렇게 난 마음과 자주 술래잡기를 했다.
언제 네가 술래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