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리

by havefaith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매 해 새롭게
아픔이 깊어지는 줄만 알았는데
이상하게 조금은 평온해졌다
조금 행복한 것도 같다
나에게 이런 게 허락될 수 있었나
미간을 멋쩍게 찡그린다

아픔을 잠옷처럼 입고 다녔다
언제까지 아파야 되는지
그만 아프고 싶다고
구겨진 종이짝 같은 나를 부여잡으며
기도를 했다

나의 삶이란
빌딩 사이를 휘어잡는 추위에 맞서
미세하게 메마른 흙을 밟으며
개미처럼 땀과 눈물로 제비꽃이나 하나 피우면
다행이라 생각했다
제비꽃은 벌 없이도 잘 자라니까

잠결엔 도망치기 참 좋았는데
이제는 잠깐씩 걸어도 되겠다
그 오랜 시간이 지나
기다리던 날이 다가오고 있다
빨래를 하자

잠옷을 훌렁 벗어던진다
따끈한 물줄기에 달라붙지 않도록
오래 입은 잠옷을 헹궈 빨래줄에 건다
힘껏 털어낸 물방울이 뺨 위에 쏟아진다

따뜻한 온기는 코끝을 찡하게 한다
맨살에 내리쬐면 큰 나무가 되어
든든한 땅에 두 발을 단단히 뿌리내릴까보다
제비꽃이 온 데 모여 사방이 푸르게
쓸쓸하지 않다
온몸을 깨우는 감사한 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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