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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화합, 선뜻 믿을 수 없는 이유

by have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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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화합을 중시하겠다는 말. 잘 믿지 않는다. 그런 것은 말로 주장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잘 소통되고 화합되고 있는가는 행동 속에 있다. 그걸 느끼는 개개인의 마음 속에 답이 있다. 나에게도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 어리둥절했다. 이렇게 잘 될 수 있는 것이었나? 오, 얼마나 기대했던가. 그러나 기대한 만큼 실망이 큰 법이다. 그 소통이 일방향적인 소통이며 화합은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강제로 깎아 만든 화합이란 것을 느꼈을 때의 배신감이란. 그 분은 너 같은 애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속으로 말해야 했다. 맞아요, 저도 당신 같은 사람 본 적 없어요.

결과는 참신하고 뻔한 실패였지만 당차게 소통과 화합을 위해 애쓰겠다는 말에 나 역시 함께 잘 해보고 싶었다. 아침이면 빵을 잔뜩 가져왔다. 인사이동을 축하한다고 한 달 내내 거의 매일 케이크가 배달오고 있었는데 매일 아침 빵까지 오다니. 하루 이틀의 일이지, 오래 먹다보니 고역이었다. 빵을 먹지는 않더라도 자리에는 같이 있으려고 했다. 차라도 마시면서. 티타임이라고 하셨으니까. 그러나 듣고야 말았다. 요즘 애들은 뭘 주면 잘 먹지를 않는다며, 예전에 있던 곳에서는 그렇게 좋아라했는데. 아쉬울 수 있는 얘기였다. 이해해주셨으면 했다. 안 먹던 빵을 자주 먹으면 피부에 트러블도 많이 나고, 앉아있는 터라 속도 그리 좋진 않다. 그럼에도 속상하셨을 것이다. 신경이 쓰여 배당량처럼 나뉜 빵을 그래도 조금씩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는 게 드러났다. 빵은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용도였다. 내가 할 수 잇는 선의 활발한 리액션으로는 부족했다. '예전에 있던 곳'과의 비교는 계속되었다. 거기선 아침마다 라떼를 손수 타주고, 손녀가 태어났다고 미역국을 끓여먹으라며 집 앞까지 미역을 사다나르는 아랫사람이 있었다. 빵을 사주면 어머, 최고라며, 짱이라며 황송해하며 받들어 모시던 일상이 있었다. 그녀는 '예전에 있던 곳'이 좋고 여기는 너무나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하나하나를 비교하며 우리는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들이 되었다. 그 곳의 사람들은 모두 자기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의 사람들'이라는 건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 사람의 마음은 수시로 변하는데. 배가 고프지 않은 이에게, 빵을 대단한 선물인 것처럼 하사한다고 칭송이 나올 수 있으랴. 사회생활이 알고보면 연기생활이었다는 걸 알았다면 꽤나 형편없는 발연기를 선보일 나는 좀 더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적당히 바닥을 기고 아부를 잘 하는 게 사회생활의 정석인 줄을 알면서도 선뜻 하지 못했다. 높은 자리에 충성하고, 진심이 아닌 마음으로 사람에 충성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다간, 맹목적인 충성과 칭송이 나의 업무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렇게까지 잘 보이고 싶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 분께 잘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건 존경스러운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연륜과 넓은 인맥은 본받을 만 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차별과 뒷담화, 사소한 이익이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이미 우리는 들을 수 있었다. 세상엔 비밀은 없으니까. 같은 사무실에서도 버릴 사람은 버려졌다. 남은 이들을 회유하기 위해 남는 사소한 선물을 따로 불러주기 시작했다. 자신의 가족을 데려다가 일을 시키면서 필요한 기간보다 한참을 오래 일하게 했다. 그 일이 그정도 오래 할 일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데도 아무말 하지 못했다. '예전에 있던 곳'에서는 회식자리까지 데려갔다니까. 자신과 같이 어딘가를 잠깐 함께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무실에서 불러세워져 갖은 말을 들었다. 내가 이런 대접 받으려고 여기에 온 줄 아냐며, 이 자리에 온 줄 아냐면서 말이다. 대접을 받으려고 한 게 아니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아 알려주는 거라면서 마무리를 했다. 업무가 아니고, 큰 행사도 아니었으며, 무려 먼저 가라고까지 했었던 터라 그런 걸로 혼날 수 있다는 게 좀 신기했다. 괜찮다는 말을 그대로 믿은 게 잘못이었다. 그 결과물로 부모님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 광경을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당사자가 아닌 듯이 말이다. 꾸중을 듣는데도 와닿지 않고 벌겋게 얼굴이 달아올라 씩씩거리다 제 풀에 마무리하고 언제 그랬냐는듯이 바라보는 모습이 신기했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의 불찰이다. 마음이 떠났어도 그런 걸 필요로 하는 사람인데 좀 더 신경을 쓸 걸. 고작 10분 정도의 걸음에서 모든 게 명확해지고 만 것이다. 소통과 화합이 실패했다는 것을. 원하는 반응이 오지 않는 상대방에게 지치고 마음이 떠나버렸단 것을 말이다.

의외로 이별은 빨랐다. '무능력하고 제대로 안 된 애'라는 말을 지겹게 듣고 있다가 갑자기 자리를 이동하게 됐다. 원하던 이동은 아니었다. 하위 부서에 잔뜩 결원이 생겼고, 그 자리를 내가 채우게 됐다. 마지막까지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이미 결정이 다 나고나서야 갑자기 앉아보라더니 자리를 옮긴다고 통보를 받았다. 늘 자기만 믿으면 알아서 해주겠다며 자신감이 넘치던 그 분께서는 자신은 힘이 없다며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나와 같이 통보를 받은 분은 연세가 많았다. 속이 상하고 몸도 좋지 않아 며칠을 쉬었다. 나는 따라 쉴까 고민하다가 나왔다. 다만, 문서화하기 몇 분전에라도 먼저 나에게 이야기해줄 수 없을 만큼 힘이 없었냐고 물었다. 저는 그게 참 속상했다고. 다른 이들에겐 제발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사족에 불과할 테니까. 순서가 거꾸로 되었다. 선 설명 후 통보가 아니라, 선 통보 후 설명이었다. 그게 최선이었다곤 여전히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 때는 그분도 나와 같은 일로 속상했던 날이 있었을까. 너무 먼 일이라 기억이 나지는 않았겠지. 그러고 말았다.

대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맞다. 우리는 정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어떤 소통이고, 어떤 화합인지. 하긴, 말해서 모두 해결될 문제라면 온 세상 사람들이 소통을 그렇게 부르짖을 이유가 있었겠는가. 어떤 마인드로 생활해야할지는 여전히 고민스럽다. 나 역시 티 없이 잘못하지 않았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인사이동을 당하고 가만히 생각을 했다. 아랫사람이니 엄청난 결정으로 그분께 영향을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평소엔 안하던 사소한 결정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릇노릇 맛있는 호박떡을 돌렸다. 처음엔 속상하고 화가 나서였다. 미운 놈 떡 하나 주자는 말이 운동 후 머릿속에 번쩍 눈을 떴기 때문이다. 막상 떡을 돌릴 때는 잘 이별하고 잘 시작하고 싶었다. 좋지 않은 말만 듣고 우울하던 지난 날과 안녕. 그리고 나와 몇 년 함께 한 곳. 완전히 이별한 건 아니지만 이제는 자주 볼 수 없을 이들에게 제대로 인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떡을 보며 그 분의 눈이 커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래도 한 순간 정도는 좋은 기억이 확실하게 있었으면 했다. 내가 여태까지 한 일 중 잘한 일 몇 가지에 들 것 같다. 옛 말씀은 틀린 게 없다.

사람 일은 알 수가 없다. 그 분은 갑자기 발견된 혹 때문에 수술로 휴직을 했다. 지금 발견되지 않았다면 더 큰 문제가 되었을 것이니 다행이다. 어쩌면 그 분 역시 나와 같은 이에게 스트레스를 받은 날을 잠깐 끊고 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에겐 업무와 상관없이 무능력하다는 말을 귀에 박히게 듣던 날들에 비해, 각종 칭찬을 듣는 날도 왔다. 열심히 살았다고, 잘 하고 있다고, 이것저것 사소하게 쌓이는 칭찬. 한동안 어리둥절해야했다. 칭찬에 목말랐던지도 모르겠다. 그 분도 나처럼 조금 정도는 다르지만 칭찬이 많이 필요했던 걸까 생각도 좀 들고. 좀 지나고 최근엔 승진을 했다. 실감은 잘 안나는데 나름 좋은 소식이 많다. 뭐지, 어안이 벙벙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새로 맡은 일은 아예 뒤바뀐 일이라 정신이 없긴 하지만 어쩌면 조금은 마음 속 어깨를 펴고 다녀도 되지 않을까 싶다. 최악은 갱신되고 구관이 명관이라는 소리는 유효하지만 한동안만 나에게 시간을 주었으면 좋겠다. 아직은 좀 회복중이니까.

어제 새 사무실에 온 다른 분에게서 다시 그 말을 들었다. '소통과 화합을 최우선적으로 하겠습니다.' 내 머릿속엔 경보가 잠깐 울렸다. 혹시 이 모든 게 반복되는 건 아닐까? 하지만 혹시 결과가 좋지 않아 또 다시 소통과 화합에 실패하더라도 지켜보며 노력할 생각이다. 그 때보다 소통과 화합에 대한, 나보다 나이 많은 '그 분'들에 대한 연륜이 한 줄 정도는 늘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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