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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간의 강아지

by have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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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강아지에게나 선뜻 다가가기 힘들다. 강아지 입장에선 처음 보는 사람이 머리를 쓰담고 몸을 만지는 것이니 극단적으로 말하면 불편한 추행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몇 번 보지 않은 절간의 강아지는 달랐다. 퇴근하고 한 잔 하러가는 길에 작은 절이 하나 있다. 이런 곳에 절이 있다니 신기하기 짝이 없지만 아파트와 주택가 사이에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원래는 이 곳은 지대가 높은 산이었고 절은 그 때부터 있었다.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왔으니, 이질감이 느껴진다면 아파트 때문이렷다. 절은 절 나름대로 큰 집처럼 높은 쇠 장벽을 세워두었다. 사실은 그 절에 들어가보고 싶었다.


아무 종교가 없지만 불교가 마음이 편해지는 건 어쩌면 편견일지도 모른다. 모든 종교가 규모가 커지면서 본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문제점이 생긴다. 사람과 돈이 모이면 갈등과 부패의 가능성 역시 커진다. 불교 역시 그것을 피해갈 수는 없다. 다른 종교를 접해보지 못했거나 좋지 않은 사람을 만난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좀 더 호감이 가는 건 간단한 이유때문이다. 불교 자체가 좋다는 건 깊이 있게 들어가보지 않았으니 확실히 말할 수 없다. 다만 절은 좋다. 엄연히 다른 얘기다.


일단 절은 산기슭에 있다. 공기좋은 산을 오르다 보면 절이 있고, 운치있는 오래된 나무 건물이 있다. 오래된 성당이나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웅장한 아름다움과 다르지 않다. 복잡한 소리 없이 가끔 풍경이나 목탁소리가 들린다. 절간엔 동물들이 같이 사는 경우가 있다. '절개, 절강아지'가 있고 가끔 새나 다른 식구들도 있다. 어릴 적 절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적 있다. 크는데는 문제가 없었을 것 같다. 다만 생활방식이나 삶의 방향에서는 고민스러웠을 것 같다. 묵언수행, 온갖 가치들을 생각해보면 말 없이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을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세속과 이별할 수 있을지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단발적으로 생각이 난다. 사람이 많지 않고 조용하고, 때로 강아지도 있고, 자연 속이라서 좋아하는 건 확실하다. 곳곳에 있는 불상들이 무섭진 않았고 날뛰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수양한다는 자세 또한 마음에 든다. 그 곳에 있으면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이 모든 고민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기분. 세상의 수많은 것들을 알고 싶지만, 가장 궁금하고 알고 싶은 건 결국 나 자신에 대한 것들이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같은 것들.


내게는 그런 의미를 갖고 있는 절. 어느 이름 모를 절의 이름 모를 강아지를 처음 보고 반했다. 큰 덩치의 백구였다. 아마 두 발로 선다면 나와 키가 비슷할지도 모른다. 쇠 벽 사이로 보이는 자태, 돌돌 말린 꼬리, 틈새로 보이는 눈동자, 촉촉한 콧망울까지. 반가웠다. 나도 모르게 멍멍아! 하면서 쪼르르 달려갔고 덩치가 아주 커 개라고 불러야겠지만 강아지라고 부르고픈 친구는 근처로 와서 코를 들이밀었다. 옆에 있던 선생님은 "원래는 지나가면 컹컹 짖고 그러더니 희한하네"하며 더 설레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에겐 까칠하지만 나에게만 상냥한 강아지라니! 우리 사이엔 뭔가 통한다면서 좋아라 했다. 강아지 가지고 별 얘기를 다 한다. 여튼 좋아하는 데 이유가 없는 건 분명하다. 마음이 가는 것 역시. 조각조각만 보이는 그 강아지에 대해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괜히 마음이 간다.


가끔씩 마음을 털어버리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러 그 골목으로 내려갈때마다 두어번 강아지를 보면 신나서 부른다. 멍멍이 잘 있었어! 하면 열심히 와서 우리는 애틋한 사이처럼 좁은 틈새에서 인사를 했다. 나를 해치지 않을거란 확신이 있었지만 손을 쭉 뻗지는 못했다. 늘 나는 불렀고, 강아지는 내게로 왔다. 어제는 손을 뻗어 머리며 귀를 쓰다듬었다. 더 만지고 싶었다. 생각했던 것처럼 까슬하면서도 부드러운 털이었다. (개털이란 말은 나쁘게 쓰이지만 실제로 개털은 생각보다 보드랍다 대체 개에 대한 표현은 왜이렇게 개에게 그렇게나 야박한건지!) 강아지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등을 내 쪽으로 대주었다. 한번, 두번, 틈새로 강아지의 등을 가만가만 만지다가 생각했다. 강아지 덕분에 행복한 순간이 내게 참 많다고. 가만가만 쓰다듬다보면 마치 내 머리나 등을 누가 쓰다듬어 주는 것 마냥 따숩다. 말하지 않아도 그 친구는 알고 있겠지만, 다음엔 그 친구에게 더 찾아가볼 생각이다. 들어갈 수 있다면 굳게 닫힌 쇠 문을 열고 한번 제대로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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