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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vefaith Jun 02. 2018

이 모든 건 깨어있기 위함, 책 <주머니 속의 조약돌>


  부처님 오신 날에 붓다의 이야기가 얹어진 틱낫한의 <주머니 속의 조약돌>을 덮었다. 괜한 의미부여는 아니고 분위기가 좋았다. 마침 아무도 없고, 스멀거리던 하늘에선 비를 떨구고, 강아지는 비구경을 하고, 나는 노트북을 두드린다. 논리적으로라면 와닿지 않을 이야기였겠지만 나는 그리 논리적인 존재가 아니었기에 깔끔했다. 이 책을 꺼내든 때만 해도 또 다시 몰아치는 생각으로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생각이 잠잠해질 무렵엔 책의 내용을 가만히 곱씹고 따라해보느라 여전히 책장은 빠르게 넘어가지 못했다. 책이 몇 장 남지 않은 시점에서는 갑자기 책을 천천히 읽고 싶어져서 오랜만에 소리 내어 읽었다. 흘리는 발음 없이 오물오물 꼭꼭 씹고 싶은 책이다.

  한치 앞을 모른다. 계획이란 게 무슨 의미가 싶은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이해가 가지 않아도 일은 일어나고 그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있다. 사람을 정리하고 있다. 절교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에게 쏟고 있던 내 마음과 에너지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예전처럼 마음이 가지 않는 이를 내 머리든 마음에든 곁에 두고 있지 않으려 한다. 힘들면 이를 물지 않는다. 나를 쉬게하고, 내가 나를 이해하는 데 쓰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사서 고생할 때가 많았다. 그건 의미있는 고생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내가 그토록 모든 일에 신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해왔던걸까?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라고 기대치를 쌓아뒀을까? 그렇게 부족한 점이 많아서 신경쓰고 있었는데? 어쩌면 다른 이들의 가능성과 능력을 깊이 생각하고 믿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싶을만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세상이 잘 돌아갔다. 생각 외로 편해서 놀랐다. 여기 드러누워야겠다 싶을 만큼. 내가 그렇게까지 신경쓰고 있던 것들은 꼭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언제든지 나는 못하오, 손들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침묵이 무섭지 않게 되었다. 그 사이 다른 이들이 입을 열었고,  먼저 뭘 알아보거나 안내하지 않아도 때맞춰 그걸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상하게 먼저 연락이 오기도 한다. 새삼 느낀다. 내가 수많은 에너지를 남을 위해 쓰고 있었다는 걸.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거르지 않고 말한다. 욕을 하는 건 아니고, 팩트 위주로 한다. 이런 내가 싫다면 멀어져도 상관없을 것 같다. 같이 있는 게 최선은 아닐 수도 있다. 단절되진 않았지만 각자 자리에서 살아도 충분한 사이도 있다. 별로 안 미안한데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하는 것도 꼭 해야할 필요없다. 사이좋게 둥글게 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까 머릿속에 노랫말이 지나갔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책을 읽고 나면 맑은 개울물을 마신 느낌이다.  마지막 이야기 중 구름을 뒤쫓는 강 이야기를 읽고나면 더더욱 머릿속에 그림이 떠오른다. 맑은 개울이 흘러 강으로 바다로 가고, 그 물이 햇빛을 쬐어 올라가 구름에 박힌다. 잔뜩 빗방울로 내려 온 세상 땅을 적시면 흙더미 속에서, 벽돌 사이에서, 모든 것들이 살아숨쉰다. 그 속에 내가, 당신이, 우리가 있다.   숨쉬는 것이 버거울 때 책에서 나온 말을 떠올리곤 했다. 숨을 들이쉬는 이 순간, 내쉬는 숨에 경이롭다. 살아있는 게 경이롭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와닿지 않았다. 나에게 많이 해주고 싶은 말, 그러나 많이 들어보지 못한 말로 바꿔보았다. 들이쉬고 내쉬며 이 순간, 너는 아름다워. 멋져. 이 순간, 널 사랑해. 고마워. 잘생겼단 말이 늘 짜릿하게 느껴진다면, 이 말은 포근하다. 몽글몽글해진다. 답답한 숨이 편해지는데 좋다. 귓가를 시끄럽게 하던 심장 박동이 잠잠해진다.

  짜증이 나면 구구절절 남들보다 길고 많고 깊은 나의 하소연을 나는 듣기로 했다. 아기를 다루듯 하라는 말처럼. 잘잘못도 따지지 말고 그냥 듣고 있으면 결국은 실체가 보인다. 화가 난 게 아니라 속이 상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속좁고 서운한 것 많은 나를 발견하고 나면 어느새 지나가 있다. 그래,  이 쫌팽이야. 안 그런척하고 사느라 힘들지.

  제목처럼 어느 작은 조약돌을 토큰처럼 주머니에 넣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애꿎은 조약돌은 고르지 않으려 한다. 마음 속엔 조약돌 더미가 있으니까 언제든 꺼내기도 충분할 것이다. 아직 삶이 경이로운지 모르겠다. 머리 좀 비워볼 겸 명상을 해보겠다고 하다가 잠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아침 저녁 지하철은 편한 낮잠 스팟이 된지도 오래다. 마구마구 에너지가 샘솟지는 않는다. 하지만 좋을 때가 있다. 따뜻한 햇빛에 맑은 공기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길을 걸을 때. 무척 별 거 아닌거라고 생각했던 게 별 것이 된다. 어쩌면 잘은 모르지만 그게 아마 살아있는 게 참 좋은 거라고 몸이 먼저 아는게 아닌가 싶게. 좀 더 아무 생각 없이 있고 싶다.  비교도 하기 싫고 경쟁도 싸우기도 싫다. 눈을 뜨고도 감은 채로 살고 싶지 않다. 빙 돌아 원점에 돌아온 느낌이지만 걱정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 모든 건 깨어있기 위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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