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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vefaith Jan 09. 2019

[프리뷰]송덕문을 쓴다,뮤지컬<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눈 시원하게 파랑파랑한 포스터

  뮤지컬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제목 때문에 기대한 작품은 아니었다. 누구나 인생의 이야기는 있는법 아닌가. 구구절절 할 말 많은 걸로 치면 너도 나도 이야기가 넘칠 것이다. 공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소재와 형식 때문이었다. 밀집도 있는 2인극이 그리웠고, 사람에 집중하는 이야기가 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는 '송덕문'(Eulogy)이라는 자주 접해보지 않은 표현때문이었다. 그것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죽음을 택한 친구 앨빈 켈비. 어릴 적 그의 송덕문을 쓰기로 약속한 친구 베스트셀러 작가 토마스 위버. 송덕문은 정해진 날짜에 맞춰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지. 간단한 줄거리에 꽤 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두 분이 얼마나 친하신가요

  남아있는 토마스의 입장에서 상상해보자. 우선 친구에 대한 팩트체크가 필요하다. 토마스는 앨빈과 지금도 여전히 가까운 친구일까? 앨빈이 갑자기 크리스마스 때 죽음을 선택하리라고 짐작할 수 있을 만한 사이였을까? 앨빈은 토마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라고 했는데, 영감을 주긴 하지만 마음은 제대로 보지 않았던 건 아닐까? 둘은 30년지기 친구라고 하는데 시간이 꼭 친구를 규정할 수만도 없다. 왕래를 끊지 않고 간간이 지속하는 것을 친구라고 할 것인가 혹은 정말 마음 깊숙한 생각이 통하는 사람을 친구라 할 것인가. 친하다는 것 역시 생각하기 나름이다. 친한 친구라면 토마스는 슬픔에 젖어 있더라도 이내 일필휘지처럼 글을 와르르 쏟아낼 정도로 충분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앨빈을 100% 다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함께한 시간은 그를 알 수 있는 괜찮은 조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순수했지만 현실에 적응한 어른'이 되어 '갑자기' 친구의 죽음을 마주했다면? 게다가 그 친구는 시간이 지나도 순수한데? 섣불리 답을 내리긴 어렵다. 그들의 '진짜' 사이가 어떤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명해지더니 사람이 어떻게 변하냐고? 사람이 변하지 않아도 상황과 자리가 변한다. 그런 와중에 변하지 않는 사람이 대단할 정도로 존경스럽다. 앨빈이 순수함을 지녔다는 건 그만큼 그가 변하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 역시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순수한만큼 훨씬 더 많이 상처받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바라봐야한다는 뜻이다. 현실에 적응하는 것만큼이나 자기 자신만의 순수함을 지키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기본적으로 영원함에 대해 회의적인 편이다. 평생 친구나 영원한 사랑같은 표현은 무척 무겁게 느껴져서 잘 쓰지 않는다. (우리 우정이나 사랑이 영원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중 훨씬 쉽사리 변하는 경우도 꽤 많아서일거다) 시간의 힘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점점 늘어나는 차이의 힘을 무시하지 않을 뿐이다.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공통점이 많다. '친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매일 만나고, 비슷한 고민을 나누던 때에 비해서 점점 너무나 달라진다. 다른 직업, 다른 상황에 놓여있으니 고통이 있어도 무조건 늘어놓을 수는 없다. 친구의 걱정에 도움이 될 수 없어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봐야만 할 때도 있다. 친구란 간절히 바라는 것이면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중 하나다. 오래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언제든지 우리는 서로의 등을 돌릴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이 다르게 변하고, 우리가 선택한 역할이 우리를 제약한다. 떡볶이만 같이 먹어도 신나던 친구와 다른 갖가지 음식들을 맛보고, 술 한 잔도 기울일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대학을 가면 뭘 할까를 고민하던 우리가 직업을 고민하고 결혼을, 가족을 논하다니. 우리에게 자유와 선택이 많이 주어진 만큼 우리 사이의 자유와 선택은 때론 불안한 존재다. 시간을 함께 하는 건 생각보다 당연한 일이 아니다. 작가로서, 앨빈의 친구로서의 토마스가 아니라 토마스라는 사람 자체를 함께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토마스와 앨빈 사이에는 이제 송덕문이 하나 덩그라니 남아있다. 송덕문. 개인적으론 추도문과 비슷하지만 좀 더 밝고 활기찬 느낌이다. 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본 적은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다. 세상을 떠난 이를 기억하는 방식이 조금은 차이가 있구나 싶다. 글을 통해서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건 우리도 종종 하지만 입 밖으로 한 사람이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하는 일은 자주 없으니까. 그 친구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고, 우리는 이렇게 시간을 함께 했었다고 조곤조곤, 한 명 한 명이 갖고 있는 그 사람의 기억이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내 기억 속의 장례식은 대체로 쓸쓸하거나 엄숙했다. 보내고 싶어하지 않는 슬픔과 한이 서린 울음소리가 들릴 때도 많고, 사람들이 하나 둘 빈소를 찾아와 울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간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떠나면 호상이라고 해서 덜 하지만, 젊은 사람의 빈소에서는 웃음이나 따뜻함이란 금기와 같다. 웃음이나 큰 목소리가 마치 그 사람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너무 무겁지 않은 송덕문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체 뭘 써야 한단 말인가(고뇌)

  그 와중에 토마스는 머리를 잔뜩 헝크러뜨리고 있을 것이다. 앨빈의 삶을 살펴보느라, 그들의 과거의 흔적을 찾느라, 지금 책상에 앉아 생각하느라,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가 작가로서 늘 하는 고민, '어떻게 좋은 글을 쓸 것인가' 때문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만큼이나 답이 없고 머리가 아프며 자신이 없어지는 질문이겠다. 글이 술술 써질 때, 혹은 마음에 담아둔 걸 개운하게 풀어놓았을 때는 기분이 좋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나를 위해 쓰는 글일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좋으면 그 뿐이다. 그러나 타인의 눈은 날카롭고 매정하다.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 '글 어때?'라고 물었을 때 '좋아, 재밌어'라는 말이 얼마나 혼란한 말인지. 그 말이 생각보다 훨씬 애매모호한 말이라는 걸. 내가 종이에 혹은 이 하얀 화면에 끄적여 놓은 글자뭉터기가 좋은 글이냐는 생각에 미치면 갑자기 아무 글도 쓸 수 없게 되어버리기도 한다. 자신이 없어진다. 이미 걸출한 베스트셀러 작가이니 글에 대한 두려움은 덜하겠지만 토마스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늘 잘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잘 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직업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더 조심스러울 수도 있다. 앨빈을 칭송하고 부각시킬만한 수식어구는 그에게 너무나 풍족할 것이다. 하지만 수식어구가 붙는다고 이 둘이 만족할 만한 송덕문이 나온다고는 볼 수 없다. 모든 면이 완벽했다고 쓰면 거짓말일테고 과장을 바라는 것도 아닐테니까. 송덕문은 초상화와 같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머리카락 한 올, 눈빛을 고민 끝에 그려냈듯이, 좋은 송덕문은 진솔하면서도 재치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일 것이다.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이라는 표현은 모순적일 수도 있다. 우리는 대체로 언제 죽을지 모르니 불확실함으로 따지면 언제든지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세상이 변화한만큼 죽음의 형태도 다양해졌고 우리의 인생의 주인공은 우리 자신이라고 하기엔 죽음 앞에선 주인공치고는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누군가 나에게 송덕문을 써준다면, 그리고 누군가의 송덕문을 쓰게 된다면 어떨까. 우리가 토마스라면, 혹은 앨빈이라면 어떤 글을 쓰고 어떤 글이 써지길 원할까. 다른 사람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 것이고, 나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고민을 해보고 공연을 보면 훨씬 재미있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지금 예상하는 뮤지컬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가 하고 싶은 말과 맥락이 비슷할 것 같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속 말말말. 틀려도 좋고 맞아도 좋다. 결과는 공연으로 확인하는 걸로!


"당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데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건 없다. 시간 제한이 없으니, 당신이 멈추고 싶을 때 언제든 멈춰라. 당신은 변화하거나 지금 그대로일 수 있다. 정해진 규칙은 없다. 최선을 다할 수도, 최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당신을 놀라게 만들 것들을 접했으면 좋겠다.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당신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만약 지금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면, 당신에게 모든 걸 다시 시작할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

For what it’s worth: it’s never too late or, in my case, too early to be whoever you want to be. There’s no time limit, stop whenever you want. You can change or stay the same, there are no rules to this thing. We can make the best or the worst of it. I hope you make the best of it. And I hope you see things that startle you. I hope you feel things you never felt before. I hope you meet people with a different point of view. I hope you live a life you’re proud of. If you find that you’re not, I hope you have the strength to start all over again. 

-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 이 프리뷰는 문화예술의 소통을 강조하는 아트인사이트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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